노란봉투법이 뭐길래...국회본회의 상정 앞두고 '노동권' VS '재산권' 논란 확대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오는 21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앞서 21대, 22대 국회에서 각각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입법이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 다시 본회의를 통과하면 세 번째 시도다.
이번 개정안은 기존보다 노동쟁의 범위가 확대되고, 손해배상 청구 제한 요건이 보다 구체화됐다. 책임비율을 따지는 기준과 면책조항도 추가되며 법의 실효성을 높였다.
이에 따라 법안 통과를 둘러싼 노사 간 여론전도 거세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시작
월급을 현금으로 받던 시절, 회사에서 주는 '노란봉투'는 월급의 상징이었다. 이 노란봉투는 지난 2014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을 통해 재조명됐다.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앞서 2009년 벌인 77일간의 파업에 대해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2013년 법원으로부터 약 47억원(사측에 약 33억원, 경찰에 약 1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보도를 본 한 독자가 시사주간지 편집국에 4만7000원을 보내며, '이렇게 10만 명만 모아도 노조원들을 도울 수 있다'고 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을 돕기 위한 시민사회의 '노란봉투 캠페인'이 시작됐다.
노란봉투 캠페인은 이후 시민사회와 진보 정당들을 중심으로 일명 '노란봉투법' 추진 운동으로 이어졌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업의 손배소와 가압류가 노동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노동쟁의 과정에서 일어난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손해를 제외한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이나 가압류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은 2015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됐고, 이후 여러 차례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별다른 진전없이 폐기됐다.
그러다 21대 국회에서 개정안들이 새롭게 발의됐다.
하지만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계 우려를 이유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국민의힘은 해당 법이 "민노총 구제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 대립
경영계와 보수 정당들은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기본권인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불법 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경영계의 반발을 두고 "과도한 공포마케팅"이라며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용자 개념과 노동쟁의 범위의 확대가 기업 경영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달 28일,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노사 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할 사안이며, 사용자 범위와 쟁의 개념을 확대하는 내용은 제조업 현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럼에도 법안이 노동계 입장만 반영된 채 통과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경제 단체들도 관련 입장을 내놨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성명을 통해 "기업인들이 형사적 책임에 직면할 수 있는 구조는 경영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노조의 교섭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교섭 거부가 형사처벌로 이어질 경우, 일부 외국 기업들이 시장 리스크를 이유로 한국 철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언급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도 "노동 환경의 변화가 한국의 투자 매력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유연한 고용환경은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 비즈니스 허브로 기능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평가했다.
이어 "올해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안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어떤 시그널을 줄 수 있을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노동계는 경영계의 우려에 대해 과도한 해석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더라도 일각에서 우려하는 '파업공화국'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은 하청이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사용자의 불법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오히려 갈등과 충돌을 줄이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법이 통과되더라도 사용자 측이 여전히 교섭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외면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형 로펌의 자문을 받아 법망을 피할 방법을 고민하기보다는, 노동자들과 성실하게 마주 앉아 대화하고 협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공감대 부족
앞서 정치평론가 장안대 박창환 교수는 BBC 코리아에 노란봉투법 개정안 통과 추진 자체의 문제보다 하청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노동자들의 파업과 이로 인한 기업과의 갈등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1980년대 경제 호황기 때와 현재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갈등의 전개 양상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 경제 호황기 때는 업체와 사업자들이 장사가 잘되니까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 기본급으로 올려주는 것이 아니라 수당 (지급) 등 편법적인 방식으로 들어줬다"면서 당시 "경제호황기와 민주노조 운동이 같이 결합되면서 노조라는 것이 굉장히 보편화되고 사람들의 인식에 자리 잡았는데 문제는 이제 불황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나 전국금속노동조합 등 기존 거대 노조들은 이미 일정 정도의 노동조건을 확보했지만, 한국이 IMF 사태를 겪으면서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하청의 재하청 구조가 만들어지는 등 노동 구조가 변화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의 하청 노조, 소형 노조, 비정규직 같은 경우에는 불황기 때 탄생했고 노조의 역사도 짧다"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못 만든 상태에서 비정규직 노조 문제까지, 거기에 위법 문제까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