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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우는 부모가 일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는 방법

2024.05.12
바닷가에서 찍은 가족사진
Laerke Thorndal

‘트래블링 빌리지’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사는 19가족이 4개월간 해외를 돌며 공동체 생활과 여행을 하는 새롭고도 야심찬 실험이다.

니콜라이 아스트루프와 그의 아내 미셸 뢰드가드-예센은 덴마크 출신 창업가다. 이들은 자녀를 낳기 전 6년간 중국과 프랑스, 스페인, 네팔,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았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은 후에도 자유롭게 떠도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이 함께 프랑스와 멕시코로 6개월간 떠났던 첫 여행은 예상과 달랐다.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떠도는 과정에서 지역 사회로부터 소속감이나 지원을 얻는 일은 몹시 어려웠다.

아스트루프는 당시 경험에 대해 “핵가족에서 자녀가 생기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우리 가족끼리만 살아보려 하니 뭔가 크고 작은 걸림돌이 많았다”고 했다.

커뮤니티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스트루프와 뢰드가드-예센은 비슷한 바람을 가진 가족들을 모아 실험을 시작했다. 디지털 노마드 삶을 추구하는 가족들이 아시아의 3개 지역에서 함께 살아보는 트래블링 빌리지다.

이 프로젝트의 주안점은 ‘일하는 부모’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커뮤니티 방식의 주거와 단체 활동, 공동체의 업무를 해결하기 위한 실무 모임, 공동 육아 등을 제공한다. 참여 가족들은 각 지역마다 5주씩 머무르며, 커뮤니티 기반의 규칙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한 지역의 삶을 마치고 다른 곳으로 옮길 때는 전환의 부담을 덜기 위한 과도기도 갖는다. 프로젝트는 이런 식으로 디지털 노마드가 겪는 전통적인 문제, ‘도와줄 네트워크가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 실험은 2024년 1월 15일에 시작됐다. 4개월에 걸쳐 베트남 호이안과 태국 코란타에서 진행됐고, 일본 교토에서 5월 14일에 종료될 예정이다. 실험에 참가한 19가족은 덴마크와 미국, 인도, 아일랜드, 이탈리아, 네덜란드에서 왔다. 총 인원은 70명(1세부터 14세까지의 어린이 34명 포함)으로 82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됐다. 모두가 일과 여행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공통 바람을 갖고 있다.

대화하는 가족들
Leheng Sarac
이 실험에선 커뮤니티 식사 같은 기존 코하우징에서 모범적 사례로 꼽혔던 것들도 진행한다

“저희는 집을 갖고 있지 않아요. 여행을 다니며 사는데, 어려운 점들 중 하나가 바로 의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죠.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국가에 있을 때는 이 문제가 더욱 힘들게 느껴지죠.” 미네소타에서 온 참가자 앤디 코터의 말이다. 그의 가족은 2019년부터 ‘느린 여행(여러 곳을 방문하거나 다양한 활동을 하기보다, 여행지를 천천히 음미하고 경험하는 여행)’을 하고 있고, 이 프로그램을 함께 만든 4가족 중 하나다.

아스트루프와 뢰드가드-예센이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했던 일도 커뮤니티의 역동성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아스트루프는 이전에 창업가들을 위한 휴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회사를 경영했다. 뢰드가드-예센은 프리랜서의 창업 또는 사업 확장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부부는 1970년대부터 이어진 덴마크의 코하우징 프로젝트, 즉 ‘보펠레스카베르(생활 공동체)’에서 이 프로젝트를 위한 영감을 얻었다. 아스트루프는 코하우징 모범 사례를 연구해 얻은 일부를 실험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그 중 하나가 가족의 수를 20가족 내외로 유지하는 것이다.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다. 그래서 두 사람은 1년 간 고심해 참가자를 선정했다. 아스트루프는 참가자 선정 과정에서 가치관이 다를 수 있는 가족들과 함께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등 “잠재된 단점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코하우징에서 영감을 얻은 또 다른 관행은 “근접”이다. 가족들은 서로 반경 1~1.5마일 이내에 숙소를 정한다. 이 방식은 도보 이동성을 높이는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위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준다. 아스트루프는 “사생활 보호가 필요해 철수하는 가족이 있더라도, 참여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 근처(호이안), 중심지 호텔(코란타), 흩어져 있는 숙소(교토) 등 지역별 커뮤니티의 입지는 공동체 생활과 개별 가족에게 필요한 것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들은 모두 매주 두 번 열리는 커뮤니티 식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두가 만나는 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실험에 참여한 부모들은 대부분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다. 육아 및 홈스쿨링을 하고, 밤에 일하는 경우가 많다. 아스트루프는 "약 절반의 가정이 하루에 몇 시간씩 홈스쿨링을 하고 있으며, 일부는 여행 경험을 커리큘럼의 연장선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이 실험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갖고도 있어요. 참가자 대부분은 이 경험을 통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지 알고 있죠.”

문화 체험에 참여한 가족들
Leheng Sarac
베트남 현지 수채화 작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는 등 문화 체험에 참여한 가족들

커뮤니티는 활기찬 사회 활동을 장려한다. 때문에 커뮤니티 일정에는 매일 2~5개씩 이벤트가 채워져 있다. 함께 달리기와 축구 경기부터 사색적인 코워킹 세션, 요가 워크숍, 풍성한 문화 체험 등 이벤트의 내용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는 가족들이 현지 수채화 작가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태국에서는 환경 보호 활동을 하는 현지 어린이 단체와 협력해 맹그로브를 심고 지역 환경에 대해 배웠다. 일본에서는 교토의 놀이 센터 주인과 협력해 아이들이 놀이, 공예, 다도를 통해 현지 아이들과 교류하고 서로 배울 수 있는 활동을 주최했다.

아스트루프에 따르면, 부모들은 교대로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 모두가 다양한 여행과 체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는 아이들이 다른 어른들과 얼마나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는 “나이가 좀 많은 아이들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꽤 흔하다”고 말했다. 참가자이자 싱글맘인 아샤 니더만은 다른 부모들이 자신의 두 살배기 아들을 너무 잘 돌봐줘서, 태국에서 어미니들을 위한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 아들은 이제 몇몇 가족과는 특히 친해져서, 제가 일할 때 그들에게 맡겨도 매우 잘 지냅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17개의 실무 모임을 통해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함께 만들어 간다. 커뮤니티 식사와 단체 활동, 재정, 소통 관리를 포함한 생활 기반 마련에 필요한 일을 각각 다루는 모임이다. 예컨대 숙소 마련과 같은 여행 준비 업무에 집중하는 모임이 있는가 하면, 커뮤니티 식사와 재정 같은 여행 중에 필요한 업무들을 맡고 있는 모임이 있다.

코터는 “보통 단체 여행이라고 하면 책임자가 있는 하향식으로 여행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 여행에선) 문제가 생기면 불만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상향식입니다. 우리 모두가 책임자이며 함께 일해야 합니다." 그는 “자녀 양육이나 돈을 관리하는 방식에 대한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19가족이 함께 일하는 방식에 내재된 어려움을 지적했다. 아스트루프는 이런 차이 때문에 모든 구성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실무 모임과 의사결정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집단의 공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선 견해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큰 규모 지출을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합의를 거치는 투표 시스템을 만들었다. 실험에 참여한 가족은 가족 규모에 따라 미화 3000달러 정도를 커뮤니티 보증금을 낸다. 이 돈은 커뮤니티 식사와 어린이 활동 및 특별 행사 등에 사용된다. 항공료와 식비, 주거비 등 기타 모든 비용은 가족들이 개별적으로 부담한다.

실험 과정에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베트남 호이안에서 다섯 가족이 함께 지낼 숙소는 도착해보니 곰팡이가 무성하게 피어 있었다. 이들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함께 지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유일한 대체 숙소는 더 비싸고 다른 가족들이 지내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실무 모임을 통해 모든 참가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 생활
Nikolaj Astrup
실무 모임을 통해 모든 참가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일상 생활

또 어떤 가족들은 몇 주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업무와 사회적 활동은 물론, 기저귀는 어디에서 사야하는지나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지 등 가정을 관리하기 위한 일에 다소 애를 먹었던 것이다. 코터는 "세상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루하루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화나 활동에 참여하다 보면, 그날 해야할 것들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면 코터의 아내인 아이린 제넬린은 커뮤니티 덕에 부모들이 다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딸이 활동에 참여하기 싫다고 하면 우리 중 한 명은 혼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이제는 커뮤니티의 다른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죠. 덕분에 남편과 저는 때로는 함께 또 때로는 자유롭게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즐기고 있어요."

다만 제넬린은 베트남에서 주변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5주 이상 한 곳에 머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주지, 식료품 구입처 등 주변 환경을 파악하려면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며 “나는 막 카페 주인, 노점상 등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 지역에서 머무는 기간을 최소 두 달 이상으로 조정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니더만 역시 느린 여행과 한 지역을 보다 깊게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바라고 있다. 그는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국가를 선택해 그 안에 있는 매우 이질적인 도시 3곳을 방문하는 식으로 보다 더 오래 머무는 것을 원한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더 커서 낮잠을 재우거나 이른 저녁에 재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면, 이 같은 실험에 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실험이 거의 끝나가는 터라, 아스트루프와 뢰드가드-예센은 다음 단계를 구상중이다. 은퇴한 사람이나 대학생 등 다양한 계층으로 참가자를 확대하고, 지역 사회 이니셔티브와 협력해 보다 영향력 있는 변화를 만드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 아스트루프는 제넬린과 코터 가족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족이 다른 실험에 참여할 의향이 있지만, 아마도 시기와 장소 및 업무에 따라 참여 가능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두 창업가가 구축한 기반은 현대 사회에는 상호 연결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뢰드가드-예센은 "이렇게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함께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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