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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방글라데시 총리, 유혈 진압 승인 정황…음성파일 유출

9시간 전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학생 주도 시위에 대해, 셰이크 하시나 당시 방글라데시 총리가 유혈 진압을 승인했다는 내용의 전화녹음 파일이 유출됐다
AFP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학생 주도 시위에 대해, 셰이크 하시나 당시 방글라데시 총리가 유혈 진압을 승인했다는 내용의 전화녹음 파일이 유출됐다

지난해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학생 주도 시위에 대해, 셰이크 하시나 당시 방글라데시 총리가 유혈 진압을 승인했다는 내용의 전화녹음 파일이 유출됐다.

유출된 음성 속 하시나 전 총리는 자신의 보안병력에 시위대를 상대로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하라"고 승인했으며, "발견하는 대로 사격하라"고 지시했다.

방글라데시 검찰은 하시나를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했고, 재판에서 해당 녹음 파일을 핵심 증거로 사용할 계획이다. 하시나는 특별재판소에서 불출석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유엔(UN) 조사단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시위로 최대 1400명이 숨졌다. 인도에서 도피 중인 하시나와 그의 소속 정당 아와미연맹(AL)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아와미연맹 대변인은 해당 녹음에 담긴 "불법적 의도"나 "과잉 대응"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유출 음성은 하시나 전 총리가 고위 정부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이다. 지난해 여름 수만 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해당 음성은 하시나 전 총리가 발포를 직접 승인했다는 가장 결정적 증거다.

이 시위는 1971년 독립전쟁 참전자의 친인척에게 공무원 채용 쿼터를 부여하는 정책에 반대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5년간 집권한 하시나를 축출하려는 대규모 운동으로 번졌다. 이 시위는 1971년 독립전쟁 이후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폭력적인 사태로 기록됐다.

이번 사태의 정점은 지난해 8월 5일이었다. 이날 하시나는 군중이 수도 다카의 관저를 습격하기 직전 헬리콥터로 도피했다.

BBC 조사 결과, 당시 다카에서 벌어진 경찰의 시위대 학살과 관련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세부 사항이 확인됐다. 특히 사망자 수가 기존 보도보다 훨씬 많았다.

유출 음성에 대한 정보를 가진 한 소식통은, 해당 파일이 하시나 전 총리가 7월 18일 다카의 관저 가나바반에 머무르던 중 통화한 내용이라고 BBC에 전했다.

당시 시위는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었다. 경찰이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됐고, 보안 당국은 대중의 분노에 대응하고 있었다. BBC가 입수한 경찰 문건에 따르면, 해당 통화 이후 다카 전역에 군용 소총이 배치됐고 실제로 사용됐다.

BBC가 분석한 녹음 파일은 방글라데시 통신감청 기관 국가통신감시센터(NTMC)가 기록한 셰이크 하시나 관련 여러 통화 기록 중 하나다.

유출 시점은 올해 3월 초로, 유출 경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하시나의 다른 통화도 여러 차례 온라인에 등장했지만, 대부분은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7월 18일 통화는 방글라데시 경찰청 산하 범죄수사국(CID)이 하시나의 음성과 대조해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BBC도 음성분석기관 이어샷(Earshot)에 의뢰해 자체적인 독립 검증을 진행했다. 이어샷은 해당 음성이 편집되거나 조작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합성된 음성일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밝혔다.

이어샷은 유출된 파일이 실내에서 스피커 통화 중에 녹음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화 통화 특유의 통신 주파수와 배경 소음이 함께 녹음됐기 때문이다.

이어샷은 녹음 파일 전체에서 전력망 주파수(ENF)가 감지됐다고 밝혔다. 이 주파수는 녹음 장비와 전력 공급 장치 사이의 간섭으로 인해 음성 녹음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소리가 조작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어샷이 셰이크 하시나의 연설에서 리듬, 억양, 호흡음 등을 분석한 결과, 기본 잡음이 일관적으로 나타나고 음성 합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영국 국제 인권 변호사 토비 캐드먼은 "이 녹음 파일들이 하시나의 책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다. 명확하고, 적절히 진위가 확인됐고, 다른 증거와도 부합한다"고 BBC에 밝혔다. 토비 캐드먼은 방글라데시 국제형사재판소(ICT)에서 하시나 및 기타 관계자의 재판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와미연맹 대변인은 "BBC가 언급한 녹음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를 비롯한 당시 정부·경찰 관계자들은 시위대 살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총 203명이 ICT에 기소됐으며, 이 중 73명은 구금 상태다.

BBC Eye 탐사보도팀은 시위 현장에서 36일간의 경찰 폭력 행위가 상세히 기록된 영상과 사진, 문서 수백 건을 분석하고 검증했다.

8월 5일 다카의 번화가 자트라바리에서는 경찰에 의해 최소 52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방글라데시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찰 폭력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됐다.

당시 초기 보도에서는 그날 자트라바리에서 30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BBC 조사 결과, 학살의 전개 과정에 대한 새로운 정황이 드러났다.

BBC는 목격자 영상, CCTV, 드론 영상을 취합했고,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있던 군 병력이 철수하자마자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발포한 사실을 확인했다.

시위대가 골목과 고속도로를 따라 달아나는 동안, 경찰은 30분 넘게 사격을 이어갔다. 이후 경찰은 인근 군 부대로 대피했다. 이에 격분한 시위대가 몇 시간 뒤 자트라바리 경찰서에 방화를 저질렀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도 6명 이상 사망했다.

방글라데시 경찰 대변인은 지난해 7월과 8월 폭력 사태에 연루된 경찰관 60명을 체포했다고 BBC에 밝혔다.

대변인은 "당시 일부 경찰이 과도한 무력 사용에 가담한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재판은 지난달 시작됐다. 하시나 전 총리는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 및 표적형 폭력을 초래하는 명령을 내린 혐의, 선동·공모·학살 방조 등의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됐다.

인도 정부는 방글라데시의 하시나 전 총리 송환 요청에 아직 응하지 않았다. 토비 캐드먼 변호사는 하시나 전 총리가 재판을 위해 귀국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방글라데시 다카 시내에 모인 시위대
AFP
다카 시내의 경찰서가 불에 탄 모습을 지켜 보는 시위대

아와미 연맹은 시위대에 대한 무력 사용에 대해 당 지도부의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 대변인은 "전 총리를 포함한 당내 일부 고위 간부가 군중에 대한 치명적 무력 사용을 지시했거나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단호히 부인하고 거부한다"고 밝혔다.

"당시 고위 관계자가 내린 결정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선의의 판단이었으며, 상황에 비추어 정당한 수준이었습니다."

앞서 유엔 조사단은 하시나 정권의 행위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아와미 연맹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BBC는 방글라데시 육군에 의견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하시나 전 총리 퇴진 이후, 방글라데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이끄는 과도정부가 통치 중이다.

현재 과도정부는 총선을 준비 중이다. 아와미연맹이 이번 선거에 참여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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