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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또 언급한 '한국 방위비', 그 역사와 이유는?

2025.04.09
주한미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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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권한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전화 통화를 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한 여러 외교 사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양국 정상 간 전화 통화를 했다. 그중 단연 주목받은 사안은 '방위비 분담금'.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액화천연가스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제공하는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비용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은 내 첫 임기 때 수십억 달러의 군사적 비용 지불을 시작했지만, '졸린 조 바이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며 "그것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증액 규모를 두고 한미가 팽팽한 협상을 이어가다 2021년 미국 정권이 교체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했던 대규모 증액은 채택되지 못했다.

한미는 지난해 10월, 2026년부터 적용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전년도 대비 8.3% 인상한 1조5192억원으로 정했다.

또한 2030년까지 매년 분담금을 올릴 때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을 반영하기로 하는 내용의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타결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부르며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최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동맹국에 대한 방위비 증액 압박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새로운 지침을 내부적으로 공유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도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의 포괄적인 기여 수준이나 규모 등을 근거로 삼아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미국 측이 협상을 요구할 경우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년 역사의 분담금

평택 미군기지 주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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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91년부터 미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지원했으며 현재는 그 규모가 연간 1조원이 넘는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 일부를 한국 정부가 나눠 내는 돈이다. 주로 주한미군 내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 등으로 사용된다.

방위비 분담금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무역 및 재정적자가 심각하던 1980년대 후반 미국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방위비 분담을 압박했고, 이에 1988년 6월 제 20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으로 정액 지원을 하기로 결정하고 1989년 4500만 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국방 예산 삭감을 이유로 기존 지원 분야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인건비와 군사건설비 등의 지원까지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1년 주한미군지위협정 5조 1항인 '시설과 구역을 제외한 주한미군 유지 경비를 모두 미국이 부담하도록 한다'는 규정을 우회해 한국이 인건비와 군사건설비까지 지원할 수 있는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이 체결됐다. 그해 한국은 미국에 1억 50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최근 10년 간 한국의 분담금을 살펴보면 매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현재 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부담하는 내역은 방위비분담특별협정에서 나아가 카투사와 경찰 지원, 부동산 지원, 한국군 훈련장 사용 지원을 포함해 주한미군지위협정에 따른 주한미군의 세금 면제, 공과금 혜택 등 연간 1조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방위비, 국민 여론은?

방위비분담협정 폐기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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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다수의 국민이 방위비분담협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미국 여론조사 전문 싱크탱크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한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국민 대다수가 한미동맹을 지지하지만 94%가 분담금 확대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을 가졌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첫 방위비 분담 관련 여론조사다.

국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같은 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민 501명 중 약 68%가 '주한미군이 감축되어도 미국의 대폭 인상 요구를 수용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일어나는 시민단체들의 집회도 종종 볼 수 있다.

분담금 증액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이다. 결국 매해 늘어나는 방위비 분담금이 '국민 혈세'라는 것이다.

지난해 12차 협정 타결을 앞두고 지난 7월 200개 가량의 시민사회단체가 거리에 나와 '방위비분담금 인상 반대'를 외쳤다.

당시 민주노총 함재규 통일위원장은 "세금이 아깝다. 언제까지 미국에 퍼주기만 할 것인가. 방위비 분담금 대폭 삭감하라"고 규탄했다.

주한미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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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문가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안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협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더해 방위비 증액이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확실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전체 주한미군 운용비 대비 한국의 부담 비율이 30%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체 주한미군 경비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 또한 분담금을 늘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미국이 받아 갔지만 쓰지 않아 계속 쌓여있는 미집행금 문제도 있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대부분 군사건설분야 분담금"이라고 밝혔다.

8차 협정 이후 한국은 설계·감리 항목은 현금으로, 그 외 군사건설 항목은 현물을 지원하고 있다.

현물지원 원칙을 마련했음에도 계속해서 미집행금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한편 분담금을 '금액'의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양욱 연구위원은 BBC 코리아에 "돈의 문제도 일부 있긴 하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분담금 증액을 주장하는 논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병력 자체가 북한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면 미국 입장에선 쓸모가 없겠죠. 대신 이 병력을 유연성 있게, 예를 들어 대만, 중국 등 동북아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이 돈을 지불하라는 논리거든요."

즉, 동북아의 안보 보전에 있어 한국이 미국과 얼마나 협력할 수 있는지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대중 견제에 한국이 기여하고 주한미군을 그 역할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미국의) 목표인 겁니다."

트럼프 2기 분담금, 어떻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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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전문가들이 트럼프 2기가 한국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태형 교수 또한 "기존의 상식이나 규범을 철저히 뛰어넘는, 예측 불가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트럼프 2기가 재협상을 위해 한국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각국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게도 관세 협상을 활용해 미국에 유리하게끔 방위비를 증액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그래도 지난번 협상에 비해서 조금 나은 상황인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첨단기술산업 등의 분야에서 미국이 한국에 원할 만한 부분들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과 미국의 주요 해군 방산 회사가 MOU를 맺는 등의 활동은 한국 입장에선 굉장한 자산이고, 레버리지가 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잘 활용한다면 분담금 증액은 조금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한국의 '리더십 공백' 상태는 협상의 한계점으로 꼽힌다.

김 교수는 "다음 행정부로 누가 등장할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협상이 동력을 받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타당한 근거를 활용해서 트럼프 정부의 무리한 요구안을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 정서도 보듬어야 하고 카운터파트와의 협의점을 찾아야겠죠."

합리적인 분담금 설정을 위해 양욱 연구위원은 "현물 대금의 비중을 높여 통제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고, 또 현금을 전달하더라도 해당 금액에 대한 상세 사용 내역이나 영수증 등을 요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훈련 비용 전체를 한국이 부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다만 국내에서 일부 비용이 발생하는 부분은 한국이 어느 정도 부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양 연구위원은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인지를 해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협력을 하고, 비용 분담 측면에서도 합당하게 내야될 것은 되려 한국이 선제안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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