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언제부터 인간의 친구였을까? '개 턱뼈'로 밝혀진 새로운 관계
영국 서머싯의 한 동굴 깊은 곳에서 턱뼈 조각이 발견되면서, 개가 언제 어떻게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새롭게 쓰이고 있다.
DNA 분석 결과, 이 턱뼈는 인간에 의해 가장 초기에 길들여진 개 가운데 하나로, 이는 1만5000년 전 오늘날의 영국 지역에서 인간이 개와 밀접하게 살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가축이 길들여지거나 고양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기보다 수천 년 앞선 시기다.
이번 발견은 개가 늑대 조상으로부터 진화한 시기를 5000년가량 더 앞당긴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윌리엄 마시 박사는 이에 대해 초기 개와 석기시대 인간 사이의 우정이 거의 처음부터 존재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미 1만5000년전 전부터 개와 인간은 놀랍도록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였음을 보여줍니다. 언뜻 보기에 별것 아닌 듯한 이 작은 턱뼈 하나가 그 우정의 기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최초의 개는 빙하기 후반 인간 거주지 주변에 머물며 남은 음식물을 기웃거리다 점차 길들여진 회색 늑대의 후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이 동물들을 사냥, 경비, 추적 활동 등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점차 야생의 포식자에서 함께 일하는 동반자로 변화했다.
이후 수백 세대에 걸친 인간의 번식 개입을 통해 주둥이는 짧아지고 이빨은 작아졌으며, 그 결과 오늘날에는 소형 애완견부터 덩치 큰 경비견까지 크기도 모양도 매우 다양하다.
마시 박사는 박사학위 연구 중 우연히 이 사실을 알아내게 됐다. 턱뼈는 1920년대 영국 서머싯주 체더 협곡에 있는 고프 동굴에서 출토된 것으로, 현재는 치즈 저장고로 유명한 곳이다. 이후에는 특별한 점이 없는 표본으로 여겨져 수십 년간 박물관 서랍 속에 보관돼 있었다.
그러나 청년 학자였던 마시는 10년 전에 발표됐으나 주목받지 못했던 한 연구 논문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이 턱뼈가 개의 것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마시는 이 턱뼈의 유전자를 분석했고, 놀랍게도 실제로 개의 것임을 밝혀냈다.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개가 수천 년 앞서 인간과 함께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명확한 증거였다.
마시는 검사 결과를 선뜻 믿기 어려워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독일 뮌헨 대학교의 친구 라치 스카스브룩 박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스카스브룩 박사는 "마시가 내게 '초기 석기시대 개를 찾았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설마, 늑대였을 거야'라고 했지만, 그는 매우 확신에 차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리에게 연구 결과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세상에, 정말로 그렇게 오래된 개를 찾은 것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카스브룩 박사는 친구가 무엇을 발견한 것인지 그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차마 글로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한 표현을 사용했다.
고프 동굴에서 발견된 이 턱뼈가 개의 것임이 확실하게 확인되면서, 그 유전적 특징을 서유럽과 중앙 아나톨리아 반도(오늘날의 튀르키예 영토에 속하는 거대한 반도)에 발견된 비슷한 시기의 표본들을 검사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모든 표본이 개의 것으로 밝혀졌다.
스카스브룩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늑대와 개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DNA를 가진 고대 표본들을 해석하고자 수년간 노력했다"면서 "현대의 '개'가 진정으로 시작된 시점을 알 수 없었기에 모든 것이 미지의 영역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러다 이 작은 턱뼈 하나가 발견됐고, 오랫동안 우리 눈앞에 있던 유럽 전역의 다른 고대 개들을 식별하는 열쇠가 됐다"고 했다.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이 이야기는 추가적인 유전 및 화학 분석과 결합하며 더욱 흥미로워진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셀리나 브레이스 박사에 따르면, 이 고대 개들은 유전적으로 서로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들의 조상이 인간과 함께 유럽 전역을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뿐만 아니라 주인인 인간들과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우리는 이 개들이 튀르키예에서 인간과 함께 생선을 나누어 먹었거나, 고프 동굴에서 고기와 식물을 함께 먹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인간과 개 사이가 이미 놀라울 정도로 가까웠음을 의미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무려 1만5000년 전 이미 오늘날 수준과 유사한 동반자관계를 형성한 것입니다. 개와 인간은 정말 오랫동안 친구였던 거죠."
과거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에서는 후기 빙하기 동굴에서 개와 비슷한 소형 동물의 고고학적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어떤 경우에는 인간과 함께 매장되거나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돼 이 동물들과 사람과의 관계가 밀접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정밀한 DNA 검사를 통해 고프 동굴에서 발견된 이 동물이 실제로 개였으며, 이미 서유럽과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초기 개 집단에 속해 있었다는 점이 최초로 밝혀졌다.
네이처지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집안 소파에 누워 있는 개들은 모두 빙하기 말기에 이미 북반구 곳곳에 퍼져있던 단일 고대 개 집단의 후손이다.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와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안데르스 베르그스트룀 박사와 동료 연구진은 스위스, 스웨덴에서 튀르키예, 아르메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과 근동 여러 지역의 동굴과 유적지에서 발굴된 개와 늑대 유해 200여개의 DNA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DNA 분석을 통해 고프 동굴에서 발견된 개보다 약간 후대의 초기 유럽 개들은 시베리아, 동아시아 등지에서 볼 수 있는 개들과 동일한 계통이었음을 찾아냈다. 이는 유럽에서 독자적으로 개를 길들였고 이후 그 계통은 멸종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여러 지역의 개들이 모두 같은 조상 집단의 후손임을 보여준다.
베르그스트룀 박사는 "개가 어디서 처음 길들여졌든 간에, 적어도 1만4000년 전에는 이미 유럽에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개의 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크릭 연구소 고대 DNA 연구실에서 이전에 수행한 연구는 최초의 개가 아시아 어딘가에서 출현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그리고 베르그스트룀의 동료인 폰투스 스코글룬드 박사는 현재 그 역사적인 시점을 특정하고자 전 세계의 고대 늑대 DNA를 분석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늑대 한 마리 때문이 아니라, 일부 늑대들이 인간 거주지 주변의 삶에 적응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로 진화하면서 일어난 길고 점진적인 변화라고 본다.
스코글룬드 박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놀라운 사건이지 않은가. 고대 누군가는 이 위험한 포식자와 유대감을 형성하기로 선택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만약 우리가 최초의 길들이기가 어디서 언제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떤 인간 집단이 관련된 것인지,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된 고고학적, 생태학적 환경은 어떠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번 발견에 영국 '왕립 개 사육장 클럽'의 문화유산 책임자인 시아라 파렐 또한 놀라움을 표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개가 마치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을 알 것입니다. 인간과 개는 오랜 세월에 걸쳐 관계를 발전시켜나갔으며, 이는 특별한 유대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