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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조기 대선 앞두고 청와대로 몰린 사람들

1일 전
청와대 본관에서 역대 대통령들의 초상화를 감상하고 있는 청와대 관람객
BBC/김효정
취재진이 만난 관람객 대다수는 윤 전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을 방문 계기로 꼽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청와대 관람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차기 정부가 청와대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풀린 데다, 청와대 내부를 곧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도 관람 열기를 더했다.

23일 오후 1시 반경, 정문 앞 도로에는 관광버스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날이었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입구에는 내부로 들어가려는 관람객들이 100m 가까이 줄을 서 있었다. 청와대 관람은 예약 후 바코드를 찍고 입장할 수 있다. 청와대재단 관계자는 "주말에는 아예 담장까지 넘어서 긴 줄이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본관 건물도 북적였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이 전시된 공간과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관람객이나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찾은 십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23일 낮 청와대 관람 입장을 위해 정문 앞으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BBC/김효정
23일 낮 청와대 관람 입장을 위해 정문 앞으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청와대재단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누적 관람객 수는 708만 명이 넘었다. 관람객 추이를 보면 개방 초기였던 2022년 5월에는 하루 평균 1만 5000명이 방문했다.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린 첫 주말에는 1만6000여 명을 기록했다.

이는 파면 직전 주말인 3월 29~30일 관람객 수 1만780여 명보다 약 48.7% 증가한 수치다. 청와대 재단측은 3월 말까지 이어졌던 꽃샘추위가 누그러지면서 관람객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취재진이 만난 관람객 대다수는 윤 전 대통령 파면과 조기 대선을 방문 계기로 꼽았다.

천안에서 오전부터 올라왔다는 60대 이상무 씨는 부인과 딸과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 그는 "어릴 때는 아무나 올 수 없는 장소였고, 차기 대통령이 이곳으로 돌아오면 다시는 못 올 수도 있어서 그전에 청와대 구경 한번 하러 왔다"고 말했다.

30대 후반 디자이너 고민정 씨도 "다시 대통령이 들어올 수도 있고, 언제 닫힐지 모르니까 이번 기회에 둘러보고 싶어서 왔다"며 "평일이라 예약할 때는 한산할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놀랐다"라고 했다.

결혼기념일에 맞춰 아내와 동시에 휴가를 내고 청와대 관람을 선택한 서울 시민 강태훈 씨(왼쪽)
BBC/이선욱
결혼기념일에 맞춰 아내와 동시에 휴가를 내고 청와대 관람을 선택한 서울 시민 강태훈 씨(왼쪽)

관람객들은 정치 지형의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 청와대를 찾으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지를 선택할 때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 투표했다는 목포 성신고등학교 2학년 유창민 군은 "다음에 기회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청와대가 있는 서울을 선택해서 왔는데, 넓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태어나서 대통령 탄핵을 두 번이나 겪었지만, 여전히 현실감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실감이 난다"라고 했다.

결혼기념일에 맞춰 휴가를 내고 청와대 관람을 선택한 서울 시민 강태훈 씨는 "관저에서 조선 궁과 광화문까지 보이던데, 역대 대통령들이 고민했던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조금 느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잘 마무리되고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사랑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다시 대통령 집무실 될까?

베일에 싸여 있던 청와대는 지난 2022년 5월 10일 처음으로 국민에게 개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는 "청와대는 제왕적 권력의 상징"이고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며 청와대를 단 하루도 사용하지 않고, 용산 옛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옮겼다.

당시 용산으로의 이전에 대해 윤 전 대통령 측은 부서 간 소통과 접근성이 나아졌다고 평가했지만, 시민 불편과 보안 문제는 계속해서 지적됐다.

개방 이후 청와대 활용 방식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있었다. 2022년 한 유명 패션 잡지가 문화재청과 함께 청와대에서 화보 촬영을 하자, 인근 쓰레기 문제와 관리 소홀 등의 비판이 제기되던 상황에서 영리 목적의 장소 대여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결국 문화재청은 사과했다.

조기 대선이 6월 3일로 예정되면서, 대통령 집무실 위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청와대의 운명도 바뀔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실성과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현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계속 사용할지, 청와대로 재이전할지, 또는 세종으로 옮길지에 대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 나선 김동연 후보는 세종시 즉시 이전을 공약했고, 이재명 후보는 용산 대통령실을 임시로 사용하되, 장기적으로는 청와대 보수 및 세종 집무실 완공을 구상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홍준표, 안철수 후보가 청와대 복귀를 주장했다. 또한 한동훈 후보와 김문수 후보는 우선 용산으로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24일 토론회에서 밝혔다.

청와대를 여러 번 관람했다는 서정빈 씨
BBC/이선욱
청와대를 여러 번 관람했다는 서정빈 씨는 요즘들어 관람객이 많아진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대통령 집무실의 청와대 복귀 가능성에 대해 관람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고등학생 이정헌 군은 "아무리 학생이라도 사회를 직접 바라봤을 때, 지방이 노후화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행정수도를 아래로 내리는 것이 세종의 발전은 물론 지방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40대 강사 서정빈 씨는 "청와대는 이미 지어진 공간이고 역대 대통령들이 사용해 온 만큼, 그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희정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BBC코리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의미와 역할이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위상과 이미지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그는 "예전에는 안보 등의 가치가 중요했지만 요즘 시대는 자유롭고, 신뢰할 수 있고 투명한 이미지가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며 "차기 대통령이 지향하는 철학, 소통, 통치 방식 등 이런 것들이 투영된 공간으로서 대통령 집무실이 선택되고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한 "지도자가 중요한 인물들을 접견하고 또 의사결정을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시선에서 봤을 때 공간의 가치와 품격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추가 보도: 이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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