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백악관 연회장 건설 비용은 누가 부담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2억5000만달러(약 3600억원) 규모의 백악관 연회장 건설 공사가 시작된 가운데, 이를 후원하는 부유한 개인과 기업들의 정체를 둘러싼 의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작업자들이 이스트윙(동쪽 별관) 철거에 착수하며 9만 제곱피트(약 8360㎡) 면적의 화려한 연회장 건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공사 비용의 상당 부분을 본인이 직접 부담할 것이며, 아직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몇몇 후원자들이 공사 완료를 위해 약 2000만 달러를 기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자금 조달 방식에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개인이나 기업이 미 행정부에 다가가기 위한 금전적 대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05~2007년 백악관 수석 윤리 변호사였던 리처드 페인터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거대한 무도회장은(건설 기부금 모집은) 윤리적 악몽"이라고 평가했다.
"백악관에 접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모으는 것이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말한 그는 "이러한 기업들은 모두 정부로부터 원하는 게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5일 백악관에서 열린 잠재적 기부자 대상 만찬에는 블랙스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코인베이스, 팔란티어, 록히드 마틴, 아마존, 구글 등 미국의 주요 대기업의 고위 임원들이 참석했다.
뉴욕 제츠팀의 구단주인 우디 존슨, 샤리와 에드워드 글레이저(탬파베이 버커니어스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을 소유한 가문)도 참석했다.
BBC의 미국 파트너사인 CBS 뉴스가 확인한 서약서에 따르면, 기부자들은 기여에 대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해진 바는 없으나, 이러한 인정은 건물에 기부자의 이름을 새기는 방식 등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당초 백악관 측은 6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라고 밝혔으나, 이번 주 트럼프 대통령은 999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금까지 신원이 공개된 기부자는 단 한 명뿐이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사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을 정지했던 유튜브 측은 이와 관련하여 트럼프 대통령 측이 제기한 소송의 합의금의 일환으로 이번 건설 프로젝트에 2200만달러를 기부할 예정이다.
하지만 만찬 참석자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부를 약속했는지, 또 이들의 기부금 액수 등은 아직 불분명하다. 공식적인 명단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백악관 관계자는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CBS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프로젝트 기부금은 '내셔널 몰 트러스트'라는 비영리 단체가 관리할 예정이다. 국립공원관리청과 협력하여 내셔널 몰(워싱턴 DC의 공원)과 이번 백악관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비영리단체다.
잠재적 기부자 대상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자 대부분이 "무척 관대했다"면서, 2500만달러 정도면 적절한지 물어보는 이들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나는 그 돈을 받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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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측은 기부금 모집과 관련해 부적절한 점은 없었으며, 새 연회장은 미래 행정부들이 이어서 사용할 장소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공사비에는 미국 납세자들의 돈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역대 7개 행정부에서 일했던 마틴 몬지엘로 전 백악관 총주방장 및 캠프 데이비드 총지배인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건설 비용에 대해 "결국 본전을 뽑고 비용을 절약하는 셈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설치되는 야외 텐트는 "팔꿈치가 서로 닿을 정도로 좁고 "민망한"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부수적인 비용을 제외하고도 100만달러씩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인터 변호사는 이번 일은 "돈을 내고 영향력을 얻는" 방식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당을 막론하고 과거 행정부에서도 문제로 지적됐던 사안이다.
일례로 1990년대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대선 운동 자금 기부금을 대가로 링컨 침실(백악관의 객실 중 하나)의 숙박권을 판매했다는 의혹으로 조사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4월 백악관 부활절 달걀 굴리기 행사에 기업 후원자를 모집했는데, 이에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한 기업들의 홍보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관계자들은 새로운 연회장 건설은 국빈 만찬 등의 대규모 행사를 개최할 기존 시설이 부족하기에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백악관에서는 종종 남쪽 마당에 텐트를 설치하여 외국 정상들을 접대하거나 국빈만찬 초대 인원수를 늘리곤 했다.
그러나 페인터 변호사는 새 연회장의 규모로 볼 때 정치적인 기금 모금 행사 등에 사용되는 "거대한 유혹"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당을 막론하고 과거 대통령들도 지지자들을 행사에 초대한 적은 있었으나, 이토록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공간 크기가 제한적이기에 모든 사람이 백악관에 초청받을 수 있었던 건 아니"라는 그는 "나는 이게 좋다고 본다 … (현재의) 크기로는 적어도 백악관 내 '영향력을 돈 주고 사기'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불법 행위를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페인터 변호사 또한 "대가 관계를 입증하긴 힘들다"면서 "다만 트럼프 행정부는 어디까지 가능한지 한계를 시험해보고 있는 듯하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