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물과 이를 노리는 절도 사건들

5시간 전

조용한 일요일 아침인 듯했던 지난 19일(현지시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밝은 대낮에 한 무리의 도둑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박물관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침입하여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왕실 보석을 훔쳐 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물들이 박물관 보안의 허점을 뚫고 사라진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영화 같은 강도 사건부터 독일의 왕궁을 노린 치밀한 습격까지, 역사상 가장 대담한 절도 사건을 살펴봤다.

멕시코에서 벌어진 '세기의 절도'

옥으로 만든 녹색 가면
Getty Images
마야 파칼 왕의 이 옥 가면은 멕시코시티 소재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된 고고학적 보물 중 하나이다

1985년 크리스마스 이브, 멕시코인 대부분이 가족과 즐겁게 지내고 있을 그날 밤, 남성 2명이 수도 멕시코시티 소재 국립 인류학 박물관의 환기를 통해 기어들어갔다.

이들은 콜럼버스 이전 시대인 마야와 사포텍 시점의 유물 100여 점을 훔쳤다. 이 중에는 옥으로 만든 마야 파칼 왕의 데스마스크(망자의 얼굴에 본을 떠서 만든 안면상)도 포함되어 있다.

당국은 사건 직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처음에는 미술품 밀매에 정통한 전문적인 조직이 배후에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렇게 48시간 이내 전국적으로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전 세계 암시장에 혹시 도난품이 등장하진 않는지 모니터링했다.

멕시코 국립 인류학 연구소의 펠리페 솔리스는 "그들이 훔쳐 간 것은 우리 역사의 일부이자, 절대 양도할 수 없는 인류학적으로 귀중한 보물"이라고 했다.

당국은 이 사건의 주범이 21세의 대학생인 카를로스 페르체스, 라몬 사르디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두 사람은 범행 전 보안 시스템에 대해 알아내고자 해당 박물관을 50회 이상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이 페르체스의 소지품에서 일부 도난 유물을 발견한 것은 무려 4년이 흐른 뒤인 1989년 6월이었다. 페르체스는 아카풀코의 마약 거물에게 일부 유물을 팔려던 참이었다.

페르체스는 체포되었으나, 공범 사르디나는 지금까지도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이 훔친 유물 대부분은 박물관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 당시 대통령의 주관 하에 기념식까지 치러지며 1989년 6월 대중에 다시 공개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박물관 보안 조치가 대폭 강화되었으며, 경비 인력도 증원되었다.

미국 보스턴의 잃어버린 보물들

기자회견 중인 FBI 관계자들
Getty Images
보스턴에서 발생한 미술품 절도 사건과 관련하여 2013년 3월 15일 열린 FBI의 기자회견

1990년 3월 18일 새벽, 보스턴 경찰관으로 변장한 남성 2명이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의 초인종을 울렸다. 소란 행위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말하는 그들을 젊은 경비원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안으로 들였다. 그렇게 몇 분 만에 박물관은 순식간에 범죄 현장이 되었다.

그들은 경비원들을 결박하고 입을 막아 지하실에 가두었다. 절도범들은 재빠르게 움직였고, 81분 만에 걸작 13점을 손에 넣었다.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등 유럽 미술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바로크 시대의 거장 렘브란트가 그린 유일한 바다 풍경으로 알려진 '갈릴래아 호수의 폭풍' 등 약 5억달러(약 7200억원) 상당의 미술품이 사라졌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제로 남아 있다. 박물관 측이 결정적인 정보 제공자에게 1000만달러를 약속한 가운데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박물관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는 민간 기관이 제시한 사상 최대 규모의 보상금이다.

해당 박물관은 도난 당한 작품이 걸려 있던 자리에 빈 액자를 남겨두었다. 지금껏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의 조용한 증인들인 셈이다.

독일 드레스덴의 사라진 다이아몬드

태양 모양의 눈부신 다이아몬드 장식품
Reuters
드레스덴 '그뤼네 게뵐베 박물관' 절도 사건 이후 회수된 보석 중 하나

2019년 11월 25일, 독일 드레스덴 왕궁 근처에서 새벽 어둠을 가르며 화재가 발생했다. 비상 전력이 깜빡거리며 전력이 끊기자 그 틈을 타 몇몇 그림자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불과 몇 분 만에 절도범들은 창문을 깨고 역사적인 보물로 가득한 그뤼네 게뵐베 전시관에 침입했다. 이곳은 18세기 작센 선제후국의 아우구스투스 3세의 보물 창고로, 귀중한 보석과 다이아몬드 수백 점이 보관되어 있었다.

절도범들은 수제 폭탄으로 화재를 일으켜 주의를 돌린 뒤, 절단기로 창문 철창을 제거했다.

그들이 노린 것은 의식용 검, 다이아몬드가 박힌 견장, 티아라, 단추 등 18~19세기 왕실 보물 21점이었다. 해당 보물에 박힌 보석만 무려 4300개에 달한다.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 범죄 조직은 불과 10분도 채 되지 않아 유물을 훔쳐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침입만큼이나 도주도 계획적이었다. 전시실에 거품 소화기를 뿌려 자신들의 흔적을 지운 뒤 아우디 차량을 타고 달아난 것이다. 해당 차량은 이후 주차장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되었다.

그러던 2023년, 남성 5명이 4~6년 형의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검을 포함한 일부 보석들은 별다른 손상 없이 회수되었다.

그러나 1200만달러 상당의 희귀한 다이아몬드인 '작센의 백색석' 등 여러 보물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현재 그뤼네 게뵐베 박물관은 회수된 보물과 악명높은 범죄 현장을 궁금해하는 방문객들에게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전시 현장
Getty Images
드레스덴 소재 그뤼네 게뵐베 박물관은 회수한 유물 대부분을 전시하며 다시 문을 열었다

혼란 속 이란 옛 왕실의 보물들

전시 중인 왕관 등의 보물들
Getty Images
테헤란 소재 중앙은행에 전시된 이란 샤의 왕관. 보안이 철저한 이곳에는 이란의 국보 수천 점이 있다

테헤란 거리 아래 깊은 곳에는 강철 문과 무장 경비원들이 지키는 이란 국가 보물 보관소가 있다.

이곳에는 사파비드, 아프샤르, 카자르, 팔레비 왕조가 수 세기에 걸쳐 모아온, 값비싼 보석과 왕실 의장품 등이 잠들어 있다.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몇 달간 격화하는 폭력적인 시위 끝에 샤(국왕)가 국외로 도피하자, 권력 이양의 혼란 속에서 왕가의 보물들은 잠시 분실된 것으로 우려되었다.

그러나 그해 2월 호메이니 아야톨라의 귀국 때까지 불확실했으나, 이후 재고 조사를 통해 보물이 고스란히 해당 보관소 안에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방탄 유리로 겹겹이 보관된 보물 중에는 '다리야에 누르', 즉 '빛의 바다'라는 이름의 거대한 분홍 다이아몬드도 있다. 약 182캐럿에 달하는 이 보석은 세상에서 가장 큰 커팅된 분홍 다이아몬드 중 하나로, 인도 무굴 궁전에서 페르시아 왕들의 대관식장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설을 품고 있다.

그 옆에는 고대 사산 왕조의 왕관에서 영감을 받아 1926년에 제작된 '팔레비 왕관'이 있다. 수천 개의 다이아몬드, 진주, 에메랄드로 장식되어 있다.

국가 보물 보관소는 현재 이란 중앙은행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 이 보관소는 박물관이자 국가 재정의 근간이기도 하다. 수 세기에 걸쳐 이란 왕가가 모은 보물들은 1937년 국유화되어 이란의 통화 가치를 뒷받침해왔다.

이곳의 보석 다수가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기에, 전문가들은 진정한 가치는 추산조차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보관실은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으나, 매우 철저히 통제된다. 방문객은 여러 단계의 보안 검사를 통과해야 하며, 가이드 투어만을 통해 관람할 수 있다. 휴대전화, 가방, 카메라 등의 반입은 금지된다.

모나리자를 훔치다

회수된 모나리자 주변의 관계자들
Getty Images
1914년 1월 4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파리로 되돌아왔다

지난주 발생한 사건 외에도 루브르 박물관은 과거에도 도난의 아픔을 겪은 바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지만, 사실 이 작품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100여 년 전 발생한 강도 사건이었다.

1911년 8월 21일 월요일, 빈첸초 페루지아는 폐장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 무단으로 들어가 이 걸작을 훔쳐 들고 나왔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감행한 일이었으나, 그 파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도난 사실이 알려지고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으며, 루브르는 일주일간 휴관했다. 그러나 모나리자는 2년 넘게 행방불명 상태였다.

당시 그림이 걸려 있던 빈 공간을 보고자 수많은 관람객들이 루브르로 몰려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1913년 12월 10일, 페루지아가 이탈리아 피렌체의 골동품 상인인 알프레도 제리에게 이 작품을 건네준 뒤 체포되면서 마침내 모나리자는 회수되었다.

이 절도는 일종의 내부자 범죄였다. 이탈리아 출신 이민 노동자였던 페루지아는 바로 모나리자를 보호하는 유리문 설치 작업을 했던 작업자였다. 그는 루브르 작업자들이 입는 흰색 작업복도 갖고 있었으며, 그림이 액자에 어떻게 고정되어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