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가자지구 돌파구는 마련했지만, 우크라 전쟁은 그러지 못하는 이유

곧 미국과 러시아 간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보도는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약 2주 내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날 계획이라고 언급한 지 며칠 만에, 해당 정상회담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양국 고위 외교관 간 예비 회동 또한 취소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오후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시간 낭비인 회담은 하고 싶지 않다"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에 상황을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열린다고 했다가 또 취소된 이번 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새로운 전개일 뿐이다.
최근 가자지구에서의 휴전 및 인질 석방 합의를 이루어낸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우크라이나 문제에 다시 한번 집중하고 있다.
지난주 가자지구 휴전을 기념하고자 이집트로 날아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수석 외교 협상가인 스티브 위트코프에게 "이젠 러시아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며 새로운 요청을 전달했다.
하지만 위트코프와 미국 협상팀이 가자지구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던 동일한 조건이 현재 거의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서는 마련되지 않을 수 있다.
비교적 제한적인 영향력
위트코프 특사에 따르면 카타르에서 하마스 협상단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번 휴전 합의를 이끌어낸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에 미국의 아랍 동맹국들은 분노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압박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고,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에 대한 미국 당국의 기존 입장도 뒤집는 등 1기 행정부부터 줄곧 보여온 친이스라엘적인 행보도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이란 내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지지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보다도 지지율이 더 높기에 이를 바탕으로 매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주요 아랍 인사들과 개인적으로 정치적, 사업적으로 맺어 온 관계까지 더해지며 이번 가자 합의를 유도할 강력한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이 훨씬 제한적이다.
지난 9개월 동안 푸틴과 젤렌스키 대통령을 번갈아가며 강압적으로 설득하려고 했으나,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러시아를 향해 에너지 수출에 추가적인 제재를 가하고,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긴 하였으나, 동시에 이로 인해 세계 경제가 불안정해지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 석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질책하는 한편 일시적으로 우크라이나와의 정보 공유 및 무기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 붕괴가 지역 전체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자 물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은 직접 만나 협상을 이끌어내는데 탁월하다고 자랑하나, 푸틴이나 젤렌스키와 대면 회담을 벌여도 전쟁 해결에는 별로 다가서지 못한 듯하다.

푸틴 대통령은 직접 만나서 해결하고자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에 대한 열망을 오히려 영향력 행사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례로 지난 7월 상원 공화당의 지지를 받은 대러 제재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할 가능성이 커지자, 푸틴 대통령은 알래스카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후 해당 법안 통과 건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지난주, 백악관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패트리어트' 지대공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퍼지자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곧이어 부다페스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으나, 꽤 긴장감이 감돌았던 것으로 알려진 해당 회의는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푸틴 대통령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들 알다시피, 나는 평생 내로라하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했지만 결국엔 늘 잘 헤처나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후 사건의 흐름을 지적했다. "장거리 미사일 (지원) 이야기가 조금 식는 순간 러시아는 거의 자동적으로 외교로 (전쟁을 해결할 일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단 며칠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사일 지원 가능성을 검토하다가, 부다페스트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날 계획을 세우는 쪽으로 옮겨갔다. 또 개인적으로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등 러시아가 아직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동부 영토까지 모두 내어주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압박했다.
결국에는 현재의 휴전선을 고정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으나, 러시아는 이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대선 운동 중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몇 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이번 전쟁을 끝내는 일이 예상보다 쉽지 않다고 인정하며 이 약속을 취소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에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 드문 순간이었으며, 양측 모두 싸움을 멈출 의지도,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평화를 위한 틀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