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카이치 내각 출범...앞으로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은?

일본 자민당의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재가 제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됐다. 앞으로 한일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21일 다카이치 총재는 일본 중의원(하원) 본회의에서 진행된 총리 지명선거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하며 총리로 선출됐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택하고 있어 다수당 총재가 의원 투표를 거쳐 총리로 지명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자민당 총재로 선출됐다.
이후 중도보수 성향 정당인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립정권(연정)에서 이탈하면서 다카이치 총재의 선출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전날 강경보수 성향 정당인 유신회가 자민당과 새로운 연정을 수립하기로 전격 합의하면서 취임이 거의 확실시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카이치 신임 총리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 노선을 상당 부분 계승하는 강경보수 인사인 만큼 한일 관계 경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한일 관계는 아베 신조 정권과 문재인 정권 들어 최악으로 치달았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한국에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이 일본과 처음으로 맺은 군사협정인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도 이 시기에 중단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가 1995년 담화를 통해 일본의 식민 지배 및 침략 사실을 반성하자 이를 공개 비판했다. 또 2006년 자신의 홈페이지에 독도에 시설물을 설치하고 현지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베 전 총리와 다카이치 신임 총리를 둘러싼 환경이 매우 다르다며, 새로운 총리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과 별개로 한일 관계를 관리할 것으로 봤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BBC 코리아에 "(다카이치 총리 취임 이후) 한일 관계는 아마 크게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이 현재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 속에 갇혀 있는 만큼 공동 보조를 취해야 될 부분이 많이 있다"라고 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무역 전쟁으로 자국이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보고 중국과 러시아, 북한 간 삼자 협력이 강화돼 안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인 한국과 일본의 협력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강경한 대일 정책 기조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던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초기부터 '실용 외교'를 강조하며 일본과의 협력을 강조해왔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의원 시절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꾸준히 참배했다. 하지만 이달 총재 취임 후 야스쿠니 신사 가을 예대제(제사) 기간에 신사를 참배하지 않고 "적절히 판단하겠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한일관계 전문가인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총리가) 누가 됐든 한일 관계를 잘 가져가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다카이치 정권에서도 한일 역사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최 위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같은 경우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제기되는 이슈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큰 만큼 당장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라면서도 "역사 교과서나 영토 문제 등 내부적으로 큰 반발 없이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강경하게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일본이 보수 우경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여겨지고, 그게 당장 한국에 대한 직접적인 자극으로 나타나진 않더라도 한일 관계 진전에는 어려운 부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한 국제안보 전문가는 "다카이치 내각의 불확실성은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은 안보와 무역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카이치 총리와 이재명 대통령 둘 다 과거 수정주의적 민족주의 성향의 지지 기반을 가져왔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역사와 영토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있어서는 견해차로 인한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봤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다카이치 신임 총리 선출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일본의 새 내각과도 긴밀히 소통하며 한일관계의 긍정적 흐름을 이어나가기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한일 양국은 격변하는 지정학적 환경과 무역 질서 속에서 유사한 입장을 가진 이웃이자 글로벌 협력 파트너인 만큼 앞으로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양국이 함께 노력해 나가길 기대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