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중국 열병식서 다자외교 '성공적' 데뷔?...푸틴과 정상회담도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통해 처음으로 다자외교 무대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3일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오찬 후 김 위원장과 2시간30분가량의 별도 회담을 통해 "동맹 관계'를 과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 참전 사실을 언급하며 "러시아 국민을 대신해 신나치즘(neo-Nazism)에 맞선 북한의 역할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라며 "북한군은 용감하고 영웅적으로 싸웠다. 우리는 군인들과 이들 가족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이러한 언급에 감사를 표하며 러시아를 돕는 것은 "형제의 의무"라고 말했다.
또 2024년 6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체결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에 대해 언급하며, 최근 북러 관계가 모든 면에서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에 이어 김 위원장이 방중 기간 동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양자회담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 많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
양복 입고, 시진핑과 나란히
앞서 현지시간 오전 9시쯤, 김 위원장은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마련된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주년' 행사장에 도착했다.
검은색 차량에서 내린 김 위원장은 자주 입는 인민복 대신 검은 정장에 하얀 셔츠, 밝은 금색 넥타이를 차려 입고 혼자 행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날 26개국 정상 및 고위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시 주석이 가장 신경을 쓴 듯한 손님은 단연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었다. 이동할 때와 열병식 관람을 위해 망루(성루)에 올랐을 때 등 시 주석의 오른쪽에는 푸틴 대통령이, 왼쪽에는 김 위원장이 있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지도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은 66년 전 김정은의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마오쩌둥 시기 중국 건국 10주년 열병식에 니키타 흐루쇼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과 참석했을 때도 연출되지 않은 그림이다.
한국 측 우원식 국회의장은 김 위원장과 멀리 떨어져 앉았으나, 열병식 참관 전 악수를 나눴다고 의장실은 전했다.
중국은 이날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부터 극초음속 무기, 인공지능(AI) 드론 등 다양한 첨단 무기를 공개했다.
'정치적 승리'
김 위원장은 이번 열병식에서 푸틴 대통령 다음으로 중요한 대우를 받고, 별도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도 참석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다자외교 무대 데뷔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BBC에 이는 "김정은의 정치적 승리"라고 말했다.
"나머지 23개국 정상들이 뒤에 있고 (김정은과 푸틴, 시진핑) 셋이 앞서 걸어가는 장면, 그거 하나로 김정은의 국내외 정치적 승리를 충분히 선포할 수 있다고 봅니다…김정은 입장에서는 선대 수령도 못한 것을 해낸 거거든요."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도 이번 열병식이 "북중러 간의 협력관계가 이전의 북중, 북러, 중러 양자 관계를 넘어선 전략적 다자 협력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이번 열병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북한 지도자들은 일대일 정상 외교를 선호해왔기 때문이다. 다자외교에 참여하는 건 김일성 전 주석 이후 66년 만이다.
정 부소장은 오는 10월 북한의 당창건 80주년 행사와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제9차 당대회 등 굵직한 행사를 앞두고 "중국의 경제 지원을 이끌어내 쌀 가격 폭등 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참석을 결정하게 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우크라이나 종전 논의가 진행됨에 따라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소원해졌던 북중 관계 회복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원장은 북한과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간 관계가 나쁘지 않다며, 이번 열병식 참여국 등을 중심으로 북한이 다자외교에 지속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