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푸틴-시진핑 만남 앞두고 러 파병군 참상 공개한 이유

북한이 러시아 파병 병사들의 참상을 스스로 공개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는 지난달 31일 공개한 '북한군 전투 영상 기록물'에서 파병 부상병들의 자폭 사실 언급하며 '영웅적 희생정신'이라고 치켜세웠다.
포로로 잡히거나 부상 당했을 경우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서로 부둥켜안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으며, 언급된 이들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앳된 군인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상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방중길에 오르기 직전 공개됐다는 사실이다.
김 위원장은 '중국인민 항일전쟁 및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전승 8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위해 지난 1일 전용기차에 탑승했으며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만났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국 정상이 공식 석상에서 한자리에 모인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다.
즉, 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을 앞두고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어떠한 희생을 치렀고 또 지금도 치르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공개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은 지난해 8월 28일 파병을 공식 결정했으며 실제 파병은 두 달 뒤인10월 말에 이뤄졌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병사 1만 5000여명을 파병했으며 약 650만 발의 포탄과 600여 대의 무기 시스템을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현재까지 러시아에 2만 8000개의 컨테이너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포탄 1200만여 발 이상의 규모다.
이후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가 올해 3번이나 급하게 당일치기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이상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북한은 왜 지금 이 시점에 자국군의 희생을 강조하는 영상을 공개했을까. 또 이 영상을 통해 러시아에 무엇을 어필하고자 했을까. 그렇다면 전쟁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가운데 북러 파병 문제는 어떻게 될까.
공개된 영상… 어떻길래?
가미카제(일본 자살특공대)를 방불케 하는 자폭 전술이 다가 아니었다. 북한은 자국 병사들이 '인간 방패'로 소모된 사실도 가감없이 드러냈다.
"청년동맹원 림홍남(20)은 통로개척 임무를 받고 지뢰해제 전투를 벌리던 중 습격 개시 시간이 박두하자 지뢰원구역을 달리며 육탄으로 통로를 개척하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노동당원 함정현(31)은 습격전투 과정에서 적 자폭 무인기를 한몸으로 막아 15명의 전투원들을 구원하고 장렬하게 전사했다."
또한 이런 전사자들의 이름 수백 개를 자막으로 띄우며 "그렇게 바쳐진 청춘은 아까운 생의 내일은 끝이 아닌 빛나는 영생의 시작이었다"고 칭송했다.
게다가 북한은 사망자가 속출하는 전선에서도 지속해서 사상교육를 지속적으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파병군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사기 진작을 독려했다는 것.
"만리이역에서 조국의 명령에 충직하려 앞다투어 용감하다 희생된 장한 우리 군관 병사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빌겠소."
"시신을 정히 수습했다가 승리한 후 반드시 꼭 나에게 데려와야 하겠소."
"동무들이 간고한 전투 포화 속을 헤치며 피를 바쳐 조국의 번영과 명예를 지켜주고 있기에 나라의 발전 환경은 굳게 지켜지고 있으니 제발 모두가 무사하라."
한편 한국 국가정보원은 2일 "우크라이나 파병 북한군 사망자를 2000여명으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김정은이 푸틴에 바라는 것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직전 파병 군인 영상을 공개한 것은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한 용도'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은 BBC에 "작정하고 영상을 공개한 것 자체가 러시아에 대한 레버리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압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군 파병 문제가 종전 협상과도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에 반대 급부가 시원찮다 하더라도 당장 북한이 발을 빼기는 또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는 동맹국 간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밀당"이라고 설명했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북한이 러시아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 줬는데 그 반대 급부로 와야 될 것이 충분히 않다는 북한의 의사 표시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 입장에선 이제 평화 협정으로 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밑어붙이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고 북한의 도움이 더 필요할 수 있는 만큼 북한이 무언의 압박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눈물로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방부 차관을 지낸 신범철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장은 "북한이 처한 상황에서 북러 관계 강화를 위해 병사들을 파병했고 그들의 애국으로 북한 체제가 이렇게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다자무대에 등장하는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보다 진솔하게 다가서면서 '눈물'도 보여주고 그들의 자녀까지도 국가 차원에서 보살피겠다는 내부 주민용 메시지로, 쉽게 말해 다자무대에 서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기 위해 이러한 영상을 공개를 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러시아 파병, 앞으로 어떻게 되나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주내 만난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9월 2일자로 푸틴 대통령이 양자회담 개최 합의 의사를 표명한 지 딱 2주가 됐다. 러시아는 오히려 우크라이나 공습을 다시 강화하는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대적인 미사일, 드론 공격을 가해 어린이 4명 포함 최소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가 타격한 건물 중에는 키이우 유럽연합(EU) 대표부와 영국 문화원도 있다.
이렇듯 전쟁이 지속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북한의 추가 파병도 시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정보원 출신의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휴전을 앞두고는 협상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방이 더 치열해지기 마련"이라며 북한의 탄약과 군수품 지원, 병력 추가 파병 문제 등을 놓고 북한과 러시아가 지금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의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휴전은 시간 문제일뿐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라며 "그 이후 병력의 전환 문제, 전후 복구 사업 등을 놓고 병력의 질과 양이 좀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투 병력이 휴전 이후에는 전후 복구 인력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범철 센터장도 관련해 "김정은과 푸틴의 관계는 계속 좋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추가 파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외화벌이를 위한 노동자 파견"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종식되면 전후 복구를 위한 북한 노동자 추가 파견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한편 방중 이후 김 위원장의 러시아 연계 방문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이번 행보는 북중러 3각 협력 구도 강화와 맞물려 주목을 끌고 있는 상황.
두진호 센터장은 "북러 관계가 일정한 궤도에 올랐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풀이될 수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북러 정상 간 교류 및 군사-경제 분야 협력 논의가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와의 관계 진전을 과시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필요도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는데 특히 "전쟁 장기화 속에 권위주의 진영을 결집시켜 대외적 고립을 돌파할 동력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한 북러 연계 행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북한 입장에서도 전쟁 종식 가능성 등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북중 관계를 한층 강화할 계기를 마련하려는 전략적 계산이 엿보인다"면서 "김 위원장의 방중 및 러시아 연계 방문 가능성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를 넘어 북중러 협력 구도의 획기적 전기를 열 수 있다"고 두 센터장은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