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게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BBC 특파원들이 살펴본 중국 열병식
3일 중국 베이징 한복판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을 앞두고 시진핑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서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승리한 지 80주년이 된 날을 기념하며 열린 이번 행사에서, 중국 당국은 신형 핵 대륙간탄도미사일부터 초음속무기 운반용 신형 지상 발사 미사일, 신형 레이저 무기, 심지어 '로봇 개' 드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최신 무기를 선보였다.
이번 열병식은 단순히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서가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가 전 세계의 경치 및 정치 질서를 뒤흔드는 가운데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중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보여주려는 시 주석의 의도와 맞물려 치러졌다.
BBC 특파원 4명은 이번 열병식의 중요성에 대해 분석했다. 이번 행사는 무엇을 의미하며, 왜 중요하고, 또 이번에 펼쳐진 장관이 "새로운 세계 질서"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중국, 그리고 전 세계에 오래 기억될 모습
로라 비커(중국 특파원)
첫 포성이 울리기 전부터 이번 열병식에서 가장 오래 기억될 장면이 펼쳐졌다.
김 위원장과 오랫동안 악수를 한 시 주석이 이어 푸틴 대통령을 환영했고, 곧 세 정상이 열병식을 지켜보러 함께 나란히 서서 이동하는 장면은 순전히 정치적인 연출이었다.
세 지도자가 공개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 시점 또한 절묘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끈 것도 중국이 선보인 무기나 병력이 아닌 이 만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을 통해 시 주석이 다른 정상들과 함께 미국을 겨냥해 공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이번 연설에서 중국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그야말로 정밀함, 힘, 애국심이 어우러져 철저하게 연출된 행사였다.
합창단조차 자로 잰 듯 일렬로 나란히 서서 "공산당 없이는 현대 중국도 없다"고 노래했다.
군인들은 일제히 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들며 행진했다. 이들이 땅을 내딛는 소리는 5만 명이 운집한 천안문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어 대형 무기들이 등장하자 군중들은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날 중국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레이저 무기, 심지어 로봇 개까지 선보였다.
관중의 열렬한 환호 속 편대 비행이 펼쳐지고, 비둘기 수천 마리와 풍선이 베이징 상공으로 날아오르며 열병식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이번 행사는 단순히 중국의 현 모습이나 발전상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중국이 이날 보여준 것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었다. 시 주석은 전 세계에서 가장 철저히 제재받는 두 정상과 나란히 할 준비가 된 글로벌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그의 발밑에는 서방과 맞서고자 구축된 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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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떠나며 생긴 공백을 채우는 중국...서방 세계에 의미하는 바는?
제임스 란델(외교 특파원)
사실 서방 지도자들은 이번 주 중국의 지정학적 및 군사적 영향력 과시에 크게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시 주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되어 현재 붕괴 직전의 세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국제 질서의 중심에 서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서방 외교관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할 2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 미국이 국제 규범과 기구에서 물러나면서 생긴 공백을 중국은 빠르게 메우고 있다.
영토 보전이나 인권보다 순수한 힘과 경제 발전을 더 중시하는 중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많은 서방 국가들은 불편할 수 있다.
둘째, 미국의 가혹한 관세로 인해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가 세계 최대 전제 정치 국가인 중국의 품으로 이토록 빨리 기울고 있는 점 또한 우려될 만하다.
한편 서방의 작은 위안거리를 꼽자면, 베이징에서 드러난 이른바 '격변의 축'은 하나로 결집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열병식에는 참여하지 않은 인도는 여전히 영토 분쟁 등으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결국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경제 민족주의와 분열을 조장하는 외교 행보는 중국에 막대한 외교적 기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 주석은 정상회담과 열병식을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
스티브 로젠버그(러시아 에디터)
이번 주 중국에서 펼쳐진 모든 외교 행사(그리고 시각적 연출)에는 트럼프 행정부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우리도 미국 주도의 질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겠다.
이는 지난달 31일부터 1일까지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중국, 러시아, 인도 정상들이 나란히 미소 지은 이유이자,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을 "진정한 친구"라고 칭한 이유이자, 이번 주 초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을 "오랜 친구"라고 부른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시진핑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열병식에서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다양한 세력들이 미국의 지정학적 패권에 맞서 균형추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국가와 지도자의 생각이 일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방향성은 분명하다.
이번 주 러시아 매체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의 헤드라인은 러시아, 중국, 인도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다."
서방의 불안감을 높이는 무기들
프랭크 가드너(안보 특파원)
대형 수중 어뢰부터 드론도 격추 가능한 최첨단 레이저 무기에 이르기까지, 이번 열병식에서 중국이 공개한 각종 최신 무기에 대해 미 국방부는 물론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에 들어갈 것이다.
광범위한 군사 현대화를 추진해 온 중국군은 이미 일부 분야에서는 미국을 추월한 모습이다.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비행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중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영역 중 하나다.
런던 소재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속 유명 미사일 전문가인 시다르트 카우샬 박사는 그중에서도 극초음속 활공체인 'YJ-17'과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인 'YJ-19'에 주목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인공지능(AI) 및 자율 무기에도 막대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길이 18m에 달하는, 핵무기 탑재도 가능한 초대형 무인잠수정 'AJX002'이다.
중국의 핵 보유량은 수백 기 수준으로, 수천 기에 달하는 러시아와 미국에 비해 여전히 뒤처져 있으나, 중국은 빠르게 확충해나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탄두를 운반할 혁신적 수단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