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36주 태아 낙태' 의료진과 산모에 유죄 판결
이른바 '36주 태아 낙태' 사건과 관련해 4일 서울중앙지법이 살인 혐의를 인정해 의료진과 산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2024년 당시 임신 36차였던 산모 권 씨는 임신을 중단하고자 했으나, 검찰은 아기가 살아있는 상태로 태어난 뒤 살해당한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낙태 수술을 맡은 병원장과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는 각각 징역 6년과 4년이 선고됐으며, 권 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고 이와 함께 20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이번 사건은 임신중절과 관련해 입법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목을 받았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형법상 낙태죄는 사라졌으나, 임신 몇 주까지 임신중절이 허용되는지 등 명확한 규정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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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 권 씨와 담당 의료진을 상대로 한 이번 재판은 임신 후기에 낙태한 여성과 그 수술에 관여한 의료진에게 살인 혐의가 적용된 첫 사례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은 제왕절개를 통해 아기가 살아있는 채로 태어났으나, 냉동고에 넣어져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20대 여성인 권 씨는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될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앞서 권 씨는 2024년 당시 낙태 수술 과정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해당 영상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재판에서 검찰은 아기가 살아있는 채로 태어났으나, 병원장과 집도의가 아기를 냉동고에 넣어 숨지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병원 직원들이 권씨의 의료 기록을 조작해 사산으로 위장했다고 주장했다.
병원장과 집도의는 재판에서 살인 혐의를 인정했으며, 판결이 선고되자마자 두 사람은 즉시 법정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해당 병원은 500여 명에게 낙태 시술을 해주는 대가로 총 14억원을 받았다. 권씨를 비롯한 산모들은 브로커를 통해 해당 병원을 소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 검찰은 병원장에게는 징역 10년을, 권씨와 집도의에게는 각각 6년을 구형했다.
한편 권 씨 측 변호인은 태아가 자궁에서 꺼내진 뒤 살해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권 씨는 임신 사실을 7개월이 돼서야 알게 됐으며, 안정적인 수입이 없어 중절을 선택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아울러 임신 기간 내내 음주와 흡연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태아가 선천적 이상이 있을 가능성을 우려했다고도 밝혔다.
4일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권 씨가 의료진으로부터 아기가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으며, 초음파로 아기의 심장 소리도 들은 사실도 인정했다. 또한 권 씨가 제왕절개를 통해 아기가 살아있는 채로 태어날 것이라는 점 역시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권 씨의 형량에 한국 사회의 낙태 관련 입법 공백과 혼란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권 씨가 임신후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엄히 처벌해야 마땅한 범죄이지만, 위기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법적 조치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이번에 한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는 오랫동안 유지돼 온 낙태 금지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단을 내리며 국회에 2020년 말까지 관련 법률을 개정하도록 주문했다. 당시 헌재는 임신 22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의 입법을 권고했다.
이후 2020년, 정부는 임신 14주까지 별도의 요건 없이 낙태를 허용하고, 건강상의 이유나 강간으로 인한 임신 등 법에 규정된 예외 경우에는 24주까지 허용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종교적 이유로 보수 진영의 의원들이 반대하고 나섰고, 해당 법안은 국회에서 계류됐다. 그렇게 2021년 1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낙태죄가 사라졌음에도 후속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