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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손상을 입은 아기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뇌파 측정 장치

6시간 전
태어난 지 3주 된 아기가 파란색 병원용 아기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다. 침대는 투명한 측면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아이는 공룡 그림이 그려진 노란색 아기 옷을 입고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린 채 평온한 모습이다. 아기의 머리에는 새로운 형태의 휴대용 모니터링 캡이 씌워져 있다. 이 캡은 작은 검은색 수영모나 럭비 스타일의 모자처럼 생겼으며, 표면에는 센서가 내장된 돌기들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턱 아래에서 단단히 고정된 이 캡의 윗부분에서는 흰색 케이블이 뻗어 나와 컴퓨터와 연결된 기술 장비로 이어진다.
BBC
연구진은 빛과 초음파를 활용해 신생아의 뇌를 모니터링하는 일명 "수영모자"를 개발했으며, 이는 세계 최초의 기술이라고 밝혔다

빛과 초음파를 이용해 신생아의 뇌를 모니터링하는 뇌파 측정 장치가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고 연구진들이 밝혔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아이들의 뇌성마비, 뇌전증, 학습장애 등을 조기에 진단하고 이를 통해 치료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영국 동부 케임브리지의 로지 산부인과 병원 영상 검사실. 생후 3주 된 테오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신기술 시험을 돕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플로라 포르 박사는 잠든 테오에게 수영모나 럭비 경기에서 전방 공격수가 착용하는 것과 비슷한 검은색 모자를 부드럽게 씌웠다. 그 모자는 뇌의 작동 방식을 모니터링하는 기술이 담긴 육각형 돌기로 덮여 있었다.

포르 박사는 "빛과 초음파를 함께 사용해 뇌의 상태를 이렇게 세밀하게 보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출생 4주 이내의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기능적 초음파–광학 영상 융합 연구(Fusion)'에 참여 중이다.

인간의 뇌는 세상에 나오는 시점 전후 몇 주 동안 거의 매일 변화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생한 신생아의 뇌 손상은 평생 지속되는 장애를 남길 수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현재 전국적으로 출산 시 뇌 손상을 줄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뇌가 손상되면 뇌와 신체 간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그 결과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이나 운동·조정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뇌성마비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보통 신생아의 뇌 손상은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나는 조산아에게서 더 흔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산소 결핍, 출혈, 감염, 또는 분만 중 외상 등도 뇌 손상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스타니 게오르기예바는 병원 내 영상 진단실의 의자에 앉아 아기 테오를 품에 안고 있다. 테오는 노란색 잠옷을 입고 파란색 담요에 싸여 있다. 플로라 포르 박사는 센서 캡을 막 장착한 뒤 테오를 향해 몸을 숙이고 있다.
BBC
플로라 포르 박사가 아기 테오와 엄마 스타니 게오르기예바와 함께 실험을 진행 중이다

영국의 경우 신생아 1000명 중 약 5명에게서 뇌 손상이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는 뇌 손상을 입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저산소성-허혈성 뇌병증(HIE)은 전 세계적으로 만삭아(임신 40주에 태어나는 아기)의 사망 및 장애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이다. 매년 약 300만 명의 영아가 HIE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IE는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에 뇌로 충분한 산소나 혈류가 공급되지 못할 때 발생할 수 있다.

'HIE를 위한 희망(Hope for HIE, 피해 가족 연대체)'의 통계에 따르면, 출생 시 뇌 손상은 전 세계적으로 출생 4주 이하 신생아 사망 원인의 약 23%를 차지한다. 미국, 유럽, 캐나다 등 고소득 국가에서도 출생아 1000명당 1~3명꼴로 HIE가 발생한다.

HIE는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에서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신생아 1000명당 4건에서 많게는 26~30건까지 발생한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태아·신생아의 뇌 손상 발생률이 1000명당 약 15건 이상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보다 거의 10배가량 높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할 가능성이 있는 이번 뇌파 측정 장치에 대해 포르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빛 센서는 '고밀도 확산 광학 단층 촬영'(high-density diffuse optical tomography)이라고 알려진 기술로, 뇌 표면 주변의 산소 변화를 모니터링합니다. 그리고 기능적 초음파는 뇌 깊숙한 곳의 미세혈관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장치는 휴대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차별화된다. 아기가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는 상태에서도 정기적으로 뇌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신경외과 전문의 알렉시스 조아니데스 박사는 이 기술이 현재 사용 중인 MRI(자기공명영상)나 CUS(두부 초음파)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가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MRI의 한계로 비용 문제와 많은 환자가 장비를 사용하려 할 때 발생하는 정체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

그는 "또 다른 한계는 아기를 시끄러운 스캐너로 데려가 스캔을 위해 20분 정도 기다린 뒤 다시 데려와야 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 연속적인 뇌 스캔을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생후 초기 몇 주 동안 뇌는 거의 매일 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복 검사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2018년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연구진이 주도한 연구에서는, MRI와 CUS도 15분 추가 촬영을 통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도 뇌의 구조와 기능 간 복잡한 관계로 인해 장애의 본질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기 테오는 병원용 아기 침대에 누워 잠든 상태다. 그의 머리에는 작은 검은색 센서 캡이 씌워져 있으며, 흰색 케이블을 통해 인근의 기계들과 연결되어 있다. 연결된 모니터에서는 테오의 뇌를 촬영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다.
BBC
이 장치는 아기 침대 바로 옆으로도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아기의 편안함을 높이는 동시에 반복적으로 뇌 스캔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학계가 영아를 정기적으로 검사하면 문제를 훨씬 더 일찍 발견하고, 치료 및 개입을 조기에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국의 뇌성마비 지원 단체인 '액션 세레브럴 팔시(Action Cerebral Palsy)'도 이 연구를 환영하고 있다.

이 단체의 설립자 아만다 리처드슨은 "뇌성마비를 가진 많은 아이들에게 진단까지의 길은 험난하다"며 "가족들은 자녀가 발달 문제의 '위험군'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수년을 보내야 하고, 진단을 받아도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술이 실용화된다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미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치료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토푼 오스틴 교수는 케임브리지 대학병원 에블린 영아 영상센터 소장이자 신생아 전문의다. 그는 현재 생애의 양극단인 유년기와 노년기에 초점을 맞춘 뇌 치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신생아의 뇌 활동을 침대 옆에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것이 이번 연구의 목표이며, 이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연구팀은 건강한 신생아와 조산아를 대상으로 12개월간 개념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이제 뇌 손상 위험이 높은 신생아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신 40주에 태어나는 아기와 조산아의 뇌 활동 패턴을 모두 이해하면, 손상에 가장 취약한 아이들을 조기에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스타니 게오르기예바는 아기 테오를 품에 안은 채 서 있다. 그의 파트너 토마스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으며,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 테오는 노란색 잠옷을 입고 다리 위에는 파란색 담요가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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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예바와 그의 파트너 토마스 스타른스는 "테오가 자라면서 의학의 다양한 발전으로 혜택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아들 테오가 의학 연구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만삭아로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 테오는 이번 임상시험에 참여 중인 아기 중 한 명이다. 그의 어머니 스타니 게오르기예바는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테오의 아빠와 나는 둘 다 과학자이고 테오가 자라면 연구를 통해 이루어진 발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아이가 이 연구의 작은 일부가 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아니데스 박사는 케임브리지에 있는 NIHR 뇌손상 헬스테크 연구센터의 공동 소장이기도 하다. 이 센터는 뇌손상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신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며, 이번 연구를 위해 연구원을 지원했다. 연구가 성공적으로 입증될 경우, NHS 전역에 해당 장치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전문적 자문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는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3~5년 안에 더 폭넓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을 확보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용만 허락된다면, 이 장치는 이미 문제가 확인된 아기를 모니터링할 뿐 아니라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아기를 조기에 찾아내는 선별 도구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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