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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은 아직도 일하다 죽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묻다

3시간 전

19일 경북 청도에서 선로 점검을 하던 노동자 7명이 달려오던 무궁화호에 치였다. 2명은 목숨을 잃었고, 5명은 크게 다쳤다. 사망자는 모두 30대의 청년들이었다.

이 철도사고는 BBC 취재진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기 불과 몇 시간 전 벌어진 것이었다.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자 문화·기술 강국으로 불리지만, 일터만큼은 여전히 '죽음의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OECD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 사망률, 최장 근로시간이 이를 보여준다.

'직을 걸고서라도 산재를 없애겠다'는 고용노동부 장관. 그는 죽음으로 얼룩진 한국의 일터를 어떻게 고치겠다는 것일까.

연일 산업재해...죽음의 공화국

"솔직히 저는 오전 내내 어떻게 업무를 처리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산업안전감독관'이라고 적힌 남색 점퍼를 입고 취재진을 만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청도 철도사고에 대해 "정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최초의 현직 철도 기관사 출신인 김 장관은 지난달 임명과 동시에 산업재해 줄이기에 매진해 오던 터였다.

그는 "사고 조사는 국토부 항공철도조사위에서 면밀하게 조사하겠지만 그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 사건의 재구성 정도를 대통령에게 급히 보고를 드렸다"면서도 "사고 원인은 생각하는 것은 있지만 자세한 내용은 현장을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바로 청도로 가야 한다는 그는 첫 인사부터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경찰과 소방, 코레일 등 관계자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는 가운데 우측으로 열차가 서행하고 있다
News1
19일 경부선 철로에서 마산으로 향하던 무궁화 열차가 선로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7명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현장에 도착한 김 장관은 "안전한 일터를 위해 노력했지만 어제 철도 사고를 막지 못해 국민께 송구하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고 이틀 뒤에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청도 열차 사고의 희생자들은 당초 코레일과 맺은 계약 업무 외에 추가로 내려진 지시를 수행하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청업체는 계획에도 없던 작업을 갑작스럽게 떠맡으면서, 제대로 된 안전 대책 없이 노동자들을 현장에 투입했던 것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9일 오후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무궁화호 열차 사고 현장 인근에 마련된 상황실을 찾아 희생자 유가족과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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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9일 오후 열차 사고 현장을 찾아 희생자 유가족과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 사고, 경기 의정부 아파트 추락사에 이어 이번 청도 철도사고까지. 모두 불과 한 달 사이에 발생한 일이다.

김 장관은 취임 이후 매주 산업현장을 찾고 있다. 첫 행보로 남양주시 건설공사 현장을 사전 예고 없이 방문해 안전 실태를 점검했다. 불시 점검 기준은 '재해가 잦았거나, 발생이 예상되는 곳'이다.

그는 "산재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추락 사고"라며 "예방하려면 안전 난간이 필수적이지만, 영세업체에서는 안전비용을 줄이려는 생각이 있고, 원청이 발주할 때 안전비용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문 이후 남양주시에서 안전 난간 설치 비용을 지원해 전면 설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작은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이 직접 다녀간 포스코이앤씨는 사망사고 이후 "안전점검을 확실히 하고, 안전이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단하겠다"는 담화문을 냈다. 그러나 작업 재개 첫날이었던 지난 4일, 미얀마 국적 노동자가 감전 사고를 당했다.

장관의 현장 방문이 "보여주기식 아니냐"는 실효성 논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김 장관은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한 달 다닌다고 사고가 줄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반박했다.

"산재는 아주 중첩돼 있는 문제입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이 있기 때문이라도 더 열심히 불시 점검을 하고, 반드시 변곡점을 만들어내겠습니다. 단기적 처방은 병을 더 키웁니다. 아프더라도 환부를 도려내야 합니다."

'일터 민주주의 확장 필요해'

인터뷰하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BBC/최유진
김영훈 장관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아직 일터로 확장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왜 여전히 OECD 산재 사망률 최상위국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취재진의 지적에 김 장관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비용이 줄어드는 만큼 안전조치가 무너지고, 그 결과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이 문제를 손보지 않으면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또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뒷전으로 미뤄온 산업화 시대의 문화, 분단국가로서 더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 등이 겹쳐 한국 사회를 '죽음 가까운 사회'로 만들었다"며 "이제는 경제 성과만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선진국의 조건이라는 걸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나아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아직 일터로 확장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광장에서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나라지만, 그 에너지가 산업 현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터의 민주주의란 노사 간 교섭하고,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거버넌스가 원활히 작동해야 하고, 이는 기업에도 유리합니다. 일터 민주주의까지 이뤄낸다면 한국은 진정한 민주주의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반복되는 중대재해 문제도 민주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사고 당사자가 대부분 하청 노동자임에도 원청과 직접 소통할 수 없는 구조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권한과 책임이 분산돼 책임져야 할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원청의 최고 책임자와도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터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산업재해를 줄이는 것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습니다."

이를 위한 계획이 있는지 묻자 김 장관은 구체적인 목표를 내놨다.

"한국 산재 사망률은 10만 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0.29명)을 크게 웃돕니다. 1차 목표는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노란봉투법은 진짜 성장법'...재계 비판도

그는 목표를 이루는 장치 중 하나로 현재 노동계와 재계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노란봉투법'을 예로 들었다. 거대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빠른 시일 내로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이 법을 처리하려고 구상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으로, 간접·하청 노동자도 원청 기업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합법적 파업에 대해서는 기업이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이나 가압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는 이 법이야말로 일터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라고 주장한다.

김 장관은 노란봉투법을 단순한 노사 문제를 넘는 '진짜 성장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OECD도 한국 경제 저성장의 위기는 양극화에서 비롯된다고 했다"며 "임금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문제를 줄이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어렵다"며 법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노란봉투법이 원·하청 간 교섭을 촉진해 기업 내 격차를 줄여 나간다면 저성장에 빠진 한국 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 "물론 이 법 하나로 모든 격차가 사라지지는 않는다"면서도 "원청이 하청과 안전 문제를 놓고 협의한다면 중대재도 줄일 수 있다. 격차를 해소하고 산재를 줄이는 것, 그것이 진짜 성장"이라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7월 1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에서 '7·19 민주노총 총파업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News1

그러나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란봉투법이 자칫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노사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청 노조가 무분별하게 생겨나면 교섭이 과도하게 늘고, 결국 '파업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그런 걱정을 많이 듣는다"면서도 "지나친 기우"라고 일축했다. 그는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13% 수준이고, 그마저도 대기업·공공 부문에 집중돼 있다. 하청 노조 조직률은 특히 미비하다"며 "노조가 있어야 교섭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1년 내내 파업이 벌어진다는 건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기자가 "숫자가 적어도 한 건의 파업이 산업 전체를 멈출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그 불안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구조에서는 오히려 원청과 직접 대화하지 못해 파업이 촉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청이 권한을 쥐고 있으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니, 하청 노조는 요구를 들어줄 통로 자체가 없는 겁니다. 통로를 열어주면 파업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이어 그는 "많은 노조들은 자연스럽게 힘을 합쳐 창구를 단일화하려 할 것"이라며 "오히려 교섭의 효율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BBC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김영훈 장관
BBC/최유진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영훈 장관은 노란봉투법을 단순한 노사 문제를 넘는 '진짜 성장법'이라고 규정했다

4.5일제...'반드시 가야할 길'

한국은 단순히 일터에서의 사고뿐 아니라 과로로 인한 사망도 잦은 나라다.

2021년 기준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 노동자 중 과로로 인해 509명이 사망했으며, 공무원과 어업 종사자 등을 포함하면 총 565명에 달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노동기구(ILO)가 2021년에 공동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주 55시간 이상 근무하는 장시간 노동자는 뇌졸중 위험이 35%,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이 17% 더 높고, 이로 인해 매년 전 세계적으로 74만여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구조적 위험은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에서도 드러난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연간 근무 시간은 1901시간으로, 미국(약 1810시간), 일본(1607시간)보다 훨씬 길다.

이는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주당 52시간의 제한조차 지키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김 장관은 "주 4.5일제는 반드시 가야 될 길"이라면서도 현실을 고려한 조건과 방식을 더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입니다. 소득 양극화뿐 아니라 노동시간 양극화를 줄여야 합니다. 좋은 직장은 짧게 일하고 고소득을 올리지만, 저소득층은 노동시간은 길고 임금은 낮습니다. 이 격차를 더 심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어 "4.5일제는 생산성 향상과 연동해 갈 때, 특히 AI로 인해서 생산성이 높아질 때 가능한 사업장들부터 도입할 수 있다"며 단계적 접근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 4.5일제 시범 사업은 내년부터 실시합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도 시범 사업에 들어갔습니다. 시범 사업들에 대한 예산도 이번에 반영해가지고, 좋은 사례를 발굴할 겁니다. 내년에는 그런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고, 본격적인 사회적 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다만 전면 시행 시기에 대해서는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시범사업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축적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동인지 감수성

김 장관은 어두운 그림자로 드리운 한국의 일터가 바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문화적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꺼냈다.

과거에는 성인지 감수성, 성평등 같은 것이 "낯설고 새로운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당연한 필수 교과목이 된 것처럼, 앞으로는 '노동인지 감수성'도 공직자를 비롯해 일터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기준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뒷전으로 미뤄온 산업화 시대의 문화, 더 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이 한국 사회를 '죽음에 가까운 사회'로 만들어 왔습니다."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영상: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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