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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에게 미국과의 무역 전쟁보다 더 시급한 과제

1일 전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의 국내 경기 현황을 보여주는 이미지
BBC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겐 미국과의 무역 전쟁만큼이나 심각한 국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중국의 도매 시장과 무역 박람회장에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이름을 말하면, 희미한 웃음 소리를 듣게 된다.

중국의 많은 무역업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145%의 관세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AI로 만들어진 트럼프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 테크 업계 거물 일론 머스크가 신발이나 아이폰 조립 공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모습을 조롱하는 영상에 더 큰 반응을 보인다.

지금의 중국은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국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 역시 중국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달 "70여 년 동안 중국은 항상 자립과 근면을 통해 발전해 왔다"며 "그 누구의 도움에도 기댄 적이 없으며, 우리는 그 어떤 불합리한 억압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이처럼 자신감을 보일 수 있는 원천 중 하나는 중국의 대미 수출 의존도가 10년 전보다 훨씬 낮아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벼랑 끝 전술과 관세 인상은 이미 내부적 요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 경제에 어느 정도는 압박이 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부동산 위기와 커지는 고용 불안, 고령화로 인해 중국인들은 정부가 원하는 만큼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부흥하는 중국을 꿈꾸며 집권했다. 그런데 그 꿈은 현재 미국의 관세뿐만 아니라 여러 요인으로 인해 도전을 받고 있다. 관건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가 시진핑 주석의 경제적 꿈을 꺾을지, 아니면 시진핑 주석이 지금의 장애물을 기회로 바꿀지 여부다.

시진핑이 직면한 국내 과제

중국 인구는 14억에 달한다. 중국은 이론상으로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경제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황은 무역전쟁이 아니라, 주택 시장 붕괴에서 촉발됐다. 많은 중국 가정이 평생 모은 돈을 주택에 투자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5년간 집값 폭락을 지켜봐야만 했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주택 개발업자들은 계속 주택을 지었다. 심지어 지금은 중국 전체 인구가 들어가도 전국의 빈 아파트를 모두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다.

허 켕 중국 통계국 전 부국장 역시 2년 전 가장 "극단적인 추정치"로 보면 현재 30억 명이 살 수 있는 빈집이 전국에 존재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중국의 고층 아파트를 담은 사진
Getty Images
중국엔 현재 필요 이상으로 많은 주택이 있다

중국에서 지방을 돌아다녀 보면 텅 빈 콘크리트 구조물이 곳곳에 널려 있는 이른 바 "유령 도시"를 볼 수 있다. 반면, 가구와 정원까지 갖추고 창문에 커튼도 설치된 '새집'처럼 보이는 집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집들은 야간에 불이 켜지지 않기 때문에 빈 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정도의 시설을 감당할 만한 구매자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국 정부는 5년 전 부동산 개발자들의 자금 대출을 제한했다. 하지만 주택 가격과 중국 내 소비자 신뢰에 대한 피해가 이미 발생한 뒤였다. 로이터가 지난 2월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시장 분석가들은 올해 주택 가격이 2.5%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소비자 신뢰지수를 나타낸 표
BBC
2022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소비자 신뢰지수가 크게 하락했다

중국 중산층 가정이 우려하는 것은 떨어지는 집값만이 아니다.

앞으로 정부가 연금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중국에서는 현재 50~60세인 약 3억 명이 향후 10년새 노동시장에서 은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영 중국 사회과학원의 2019년 추산에 따르면, 정부 연금을 위한 기금은 2035년쯤에 고갈될 수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 중국에서는 수백만 명의 대학 졸업생이 구직난을 겪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의 가정에서는 아들, 딸, 손주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할까봐 크게 우려하고 있다. 2023년 8월에 발표된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16~24세 연령대 도시 거주민 5명 중 1명 이상이 무직자였다. 다만 이후 중국 정부는 청년 실업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상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것에서 쉽게 내수 시장 판매로 전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니에 후이화 인민대 교수는 "경제의 하방 압력을 고려할 때, 단기간에 국내 지출이 크게 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을 내수로 대체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밍하오 푸단대 미국연구센터 부소장은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와의 대화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며 "내수 부양 등 중국의 국내 시장 정책이 진정한 전쟁터"라고 말했다.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중국 정부는 이미 많은 조치를 취했다. 수십억 달러의 육아 보조금과 임금 인상, 유급 휴가 개선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또한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가전제품과 전기 자동차(EV)와 같은 품목을 할인해주는 410억 달러 규모의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하지만 장쥔 푸단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러한 정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는 "장기적인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야 합니다."

시진핑 주석에게 이는 시급한 문제다. 그가 집권했을 때 내세웠던 번영의 꿈이 13년째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마주한 정치적 시험대

중국에 현 상황에 낙담하며 미래를 우려하는 젊은 세대가 있다는 것을 시진핑 주석도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향후 시위나 정치적 불안 같은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프리덤하우스의 보고서 '중국 반대 시위 모니터'는 지난 몇 달 동안 재정적 불만으로 인한 시위가 급격히 늘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는 모든 시위 정보가 소셜 미디어에서 빠르게 검열되고 차단된다. 때문에 당분간 시위가 시진핑 주석을 실질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은 낮다.

시진핑 주석은 2012년 "국가가 잘 되고 민족이 잘 되어야만 모든 인민이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약속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시절에 나왔다. 하지만 그 약속 실현이 불확실해 보인다.

고심하는듯한 표정의 시진핑 주석
Getty Images
새로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경제적 문제로 인한 정치적 불안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지난 10년간 큰 발전을 이루어낸 분야는 가전제품, 배터리, 전기차, 인공 지능 등이다. 이러한 성과는 중국 산업이 첨단 제조업으로의 전환하는 가운데 나왔다.

특히 지난해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가 된 BYD는 챗봇 딥시크와 함께 미국의 기술 패권을 위협할 정도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중국의 이러한 기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미국은 최근 칩 대기업 엔비디아의 수출을 규제하는 등 주요 칩 제조사의 대중국 판매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는 기술 패권을 향한 시진핑 주석의 야망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은 미국 제조업체들이 중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동일한 규모의 인프라와 숙련된 노동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미 중국 제조업체들이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제조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도전을 기회로 바꾸기

시진핑 주석은 현재의 위기를 더 큰 변화의 촉매제로 삼아 새로운 시장을 찾고자 한다.

장쥔 교수는 "(관세 전쟁으로) 단기적으로 일부 중국 수출업체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수출 국가를 조정하는 데 앞장설 것입니다. 수출 기업들은 새로운 고객을 찾으려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는 중국에게 다른 곳에서 구매자를 찾으라는 신호가 됐다. 당시 중국은 동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전역으로 관계를 확대했다. 일대일로 무역 및 인프라 이니셔티브를 통해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은 이러한 다변화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로위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145개 이상의 국가가 미국보다 중국과 더 많은 무역을 하고 있다.

2001년에는 미국보다 중국을 주요 무역 파트너로 선택한 나라가 30개국에 불과했음을 감안하면, 이는 큰 변화다.

지정학적 이점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동맹국과 적대국 모두를 겨냥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현재의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더욱 뒤흔들고 중국을 안정적이고 대안적인 글로벌 무역 파트너이자 리더로 부상시킬 수 있다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관세 발표 후 첫 해외 순방지로 동남아시아를 선택했다. 이웃 국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불안해한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수출 중 약 4분의 1이 베트남과 캄보디아 같은 다른 국가를 거쳐 제조되거나 배송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미국의 행보를 시진핑 주석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 세계에서 중국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쥔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압적인 관세 정책은 중국 외교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인사하는 시진핑 주석
Getty Images
시진핑 주석은 지난 4월 동남아시아 순방에서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하지만 중국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어떤 국가들은 중국이 미국을 겨냥해 만든 제품이 자국 시장에 넘쳐날까 봐 불안해할 것이다.

2016년의 경우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원래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만들었던 값싼 중국산 제품이 동남아시아로 대거 유입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현지 제조업체가 타격을 입었다.

후이화 교수는 "중국 수출 중 약 20%가 미국으로 가는데, 이러한 수출이 다른 지역 시장이나 국가로 흘러들어가면 덤핑과 악의적인 경쟁으로 이어져 또 다른 무역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별 관세율을 정한 표를 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Getty Images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상품에 최대 145%의 관세를 부과했다

또한 시진핑 주석이 자신을 세계 자유무역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기 어려운 장벽도 있다.

중국은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국가에 무역 제한 조치를 부과한 적이 있다.

2020년, 호주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기원과 조기 대응에 대해 전 세계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이후 중국은 이러한 요구가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책략이라며 호주산 와인과 보리에 관세를 부과했다. 또한 일부 쇠고기와 목재에 생물 보안 조치를 취하는가 하면, 석탄과 면화, 랍스터에 대해서는 수입 금지 조치를 취했다. 이로 인해 일부 호주산 제품은 중국 수출이 거의 막혀 버렸다.

심지어 리처드 말레스 호주 국방 장관은 이달 초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격화되면 자국은 "중국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과거 행동은 시진핑 주석의 현재 글로벌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국가들이 중국과 미국 중에서 한 곳을 택하는 것을 꺼릴 수도 있다.

컨테이너들이 산적해있는 중국의 항만
Getty Images
현재 무역 전쟁의 진정한 전장은 중국의 내수 경제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주석은 이 힘겨루기에서 중국이 미국보다 경제적 고통을 더 오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중국산 제품에 부과해온 세금이 "상당히 낮아질 것이지만 제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관세 완화 가능성을 암시하며 먼저 눈치를 본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관세에 대한 강경한 접근 방식을 약간 완화한 후, 중국 소셜 미디어 플랫폼 '웨이보'에서는 "트럼프가 겁을 먹었다"가 가장 인기 있는 검색어 중 하나로 떠올랐다.

다만 미국과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중국이 하고 있는 게임은 해결에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난 무역 전쟁으로 인해 중국은 수출 시장을 미국에서 다른 시장, 특히 글로벌 사우스로 다변화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 무역 전쟁으로 중국은 자신의 결함을 거울을 보듯 마주하게 됐다. 중국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여부는, 워싱턴이 아닌 베이징의 정책에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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