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총선, 보수 야당은 왜 중국 SNS에서 표심 잡기에 나섰나?

호주에서는 오는 3일 총선을 앞두고, 야당 후보들이 지난 총선에서 보수 성향의 '자유당·국민당 연합'에서 이탈한 주요 유권자 집단의 마음을 돌리고자 애쓰고 있다. 바로 중국계 호주인 유권자들이다.
이들의 마음을 얻고자 후보들은 자신들이 속한 당이 한때 국가 안보를 이유로 금지했던 중국계 SNS인 '위챗', '레드노트'에서도 선거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22년 '로위 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계 호주인 10명 중 거의 6명이 하루에 1번 이상 위챗을 사용한다.
좌파 성향의 노동당이 3.2% 차이로 앞서고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 리드 지역구에 자유당 후보로 도전장을 내민 그레인지 정은 위챗에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던 시절 우리 가족을 품어준 나라에 보답하고자" 해군에 입대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영상을 게시했다.
정 후보는 선거 전단을 붙이고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장면 등이 담긴 이 영상에서 "호주는 우리 가족에게 집이 되어주었다 … 내가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고 싶다"고 호소한다.
호주 전체 인구의 5.5%에 불과한 중국계는 지난 2022년 노동당이 '자유당·국민당 연합'의 10년 집권을 깨고 승리를 쟁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계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했으나, 중국계 인구가 많은 몇몇 선거구에서는 자유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 폭이 다른 지역보다 3배 이상 컸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정부가 인종차별적인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이들이 '자유당·국민당 연합'에 등을 돌린 결과라고 말하지만, 자유당 소속 스콧 모리슨 당시 총리의 반중 언사가 문제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승리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자유당 후보들은 중국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는 여러 경합 지역에서 표심을 얻고자 고군분투 중이다.
정 후보는 리드 지역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시드니의 제2의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며, 만다린어와 광둥어가 일상 언어는 물론 상점과 식당 간판에도 널리 쓰이는 버우드 교외 지역의 표심 확보가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민간 항공사 조종사 출신인 정 후보는 올해 2월부터 위챗에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몇 달간 아시아 사업가들과의 인터뷰 내용, 음력 설날 인사말, 유권자 5명 중 1명이 중국계인 이곳 지역사회에 대한 약속 등을 담은 게시물을 부지런히 올렸다. 중국 춘추시대 전략가 손무의 철학을 인용한 게시물도 눈에 띈다.
멜버른 대학교의 팬 양 연구원에 따르면 정 후보는 위챗에서 행보를 넓히고 있는 수많은 자유당 후보 중 하나다. 올해 1월 이후 위챗에 등록된 공식적인 자유당 광고 수는 220여 개이다. 반면 노동당의 광고 수는 35개이다.

'리드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이끄는 헨리 루오는 이번 선거 운동 기간 후보들이 위챗의 인기 계정에 광고를 게시하거나, 중국의 유명 연예인 혹은 인플루언서와 협업하는 등 중국계 호주 유권자들을 "광범위하게 목표"로 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했다.
2008년 직장 때문에 호주로 이민 온 루오는 "이는 중국어권 시민들에게 다가갈수 있는 효과적인 플랫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위챗에서 여러 정치적 이슈에 대해 토론, 토의한다"고 했다.
한편 중국계가 아닌 정치인들 또한 중국의 요리나 축제를 즐기는 영상을 게시하며 이러한 플랫폼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자유당 소속 키스 월로한 하원의원의 위챗 채널에는 그가 자녀들과 함께 '용선 축제'를 축하하는 모습. 아버지와 함께 후난성의 매콤한 음식을 즐기는 영상 등이 올라와 있다.
이번 선거에서 월로한 의원은 접전지로 손꼽히는 자신의 빅토리아주 멘지스 지역구 의석을 지키고자 한다.
한편 멜버른 대학교에서 중국학을 가르치는 치우핑 판 강사는 중국계 플랫폼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고 해서 반드시 득표율을 높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판은 중국계 유권자들은 이제 "정치적으로 더 성숙해졌다"면서 정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아도 되어 자신이 사는 지역 사회를 더 잘 대변할 수 있다고 판단해 무소속 후보에 투표하려는 이들이 많아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총선에서 중국계 유권자들은 자신의 투표가 중요하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판은 "그리고 자신들을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하면, 맞서 싸울 힘이 있음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중국계 지역사회를 "단지 표를 얻고자" 이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시드니 주민인 에린 츄는 "중국계 호주인들은 정치적으로 더 깊은 수준에서 참여하고자 하는데, 우리를 의심스러운 존재로 취급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자유당 소속 제인 흄 상원의원이 무소속 모니크 라이언 하원의원을 돕는 아시아계 자원봉사자들을 "중국 스파이"라며 비난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츄는 "정치인과 언론이 이러한 담론을 일상화한 탓에 현재 호주의 정치 환경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후보자들이 SNS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우려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중국계가 유권자 3명 중 1명 꼴인 뉴사우스웨일스주 베네롱 지역구에 출마한 자유당 소속 스콧 융 후보는 자신의 위챗 게시물에 만다린어 자막 및 음성 번역을 덧입히고 있다.
그리고 이는 더 많은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가정에서 주로 만다린어 또는 광둥어를 사용하는 호주인의 영어 능숙도는 약 25~26%로 낮다.
지난 2022년, 노동당은 70년 만에 2번째로 자유당의 텃밭이었던 이곳 지역구를 빼앗았다. 그리고 현재도 이곳 베네롱 지역구에서 근소한 차이로 앞서가고 있다.
교육 사업가 출신인 융 후보는 최근 게시한 영상을 통해 중국과 호주의 관계가 "매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호주에 중요하고, 호주 기업들에게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호주 빅토리아주 소재 싱크탱크 '퍼 캐피타'의 연구원인 오스몬드 치우는 호주 당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대하는 방식은 중국계 주민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중국계 호주인 지역사회는) 인종 차별 증가, 중국과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중국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우려한다"는 설명이다.
한편 일부 유권자들은 중국계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자유당의 행보가 반이민적 발언과 맞지 않는다고 느낀다. 리드에서 식당종업원으로 일한다는 알렉스 왕은 "(자유당·국민당 연합의 대표인) 피터 더턴은 이민자 및 유학생 수를 대폭 줄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꽤 불안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