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이벤트로 팬심 잡는 세계 4개국

열정과 소비력 면에서 스포츠 팬덤을 능가할 집단은 드물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에 높은 충성도를 가진 스포츠 팬들은 국제 이벤트 관람과 경기장을 향한 로드 트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지출을 한다.
이에 따라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는 지역은 이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스포츠 관광은 이미 전 세계 관광 지출의 약 10%를 차지하며, 2030년에는 그 비중이 17.5%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만 1억 명이 넘는 스포츠 팬들이 전국의 경기장을 찾았고, 약 1140억 달러(약 1552조2400억원)에 달하는 스포츠 관광 지출을 만들어냈다.
대학 축구 팬인 킴벌리 드카레라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 일정을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포츠 경기를 중심에 두면 일정 조정이 훨씬 쉬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RV 차량을 타고 미국 전역에서 열리는 조지아공대 축구팀의 경기를 관람한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위해 아일랜드까지 간 적도 있다.
"원정 경기를 보러 가는 자동차 여행은 새로운 도시와 캠퍼스를 둘러볼 기회가 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도 쌓을 수 있어 홈경기보다 재미있을 때가 많습니다. 여행의 목적을 스포츠가 정해주는 것이죠."
익스피디아 그룹의 '스포츠 관광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스포츠 팬 중 약 44%가 스포츠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난다. 특히 16~34세 연령대에서는 그 비중이 56%까지 늘어난다. 스포츠를 목적으로 한 여행의 일반적인 지출 규모는 1인당 1500달러(약 204만2399원)에 달한다. 그리고 스포츠 팬 다섯 명 중 세 명은 개최 도시 외곽에 숙박하기 때문에, 스포츠 관광은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올림픽, F1 그랑프리, 슈퍼볼, 축구 등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를 즐기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있다. 큰 성과를 기대하며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하고 팬들을 적극적으로 불러모으고 있는 네 나라를 소개한다.
미국
미국은 2026년 FIFA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고, 2028년에는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출입국 관리 강화 조치가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미국이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 해외여행지로서의 매력을 극대화하려 노력 중인 것은 분명하다.

1996년 애틀랜타 이후 32년 만에 미국 땅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로스앤젤레스는 이미 스포츠 이벤트를 위한 인프라를 하나둘씩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LAX/메트로 환승 센터'가 문을 열어 공항과 두 개의 주요 지하철 노선을 셔틀로 연결하고 있다. 2026년에는 자동화된 운송 수단도 도입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는 올림픽 외에도 2025년 US 여자 오픈 골프대회, 2027년 FIFA 월드컵 8경기(미국 남자팀의 개막전 포함), 슈퍼볼 LXI도 개최한다.
라스베이거스도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다. 10년 전만 해도 라스베이거스에는 주요 프로 스포츠 팀이 없었지만, 지금은 내셔널 하키 리그(NHL)와 내셔널 풋볼 리그(NFL) 팀이 이곳을 연고지로 삼고 있다. 향후에는 메이저리그 야구팀도 생길 예정이다. 라스베이거스는 2023년에 F1 그랑프리를 개최했고, 최소 2027년까지 매년 이를 유치할 계획이다. 2024년 F1 그랑프리에는 약 17만5000명의 외지 방문객이 라스베이거스를 찾았으며, 약 9억3400만 달러(약 12조7139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
F1 그랑프리 관광객 중 상당수는 라스베이거스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이었다.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및 관광청 최고 운영 책임자인 브라이언 요스트는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평균적인 라스베이거스 방문객은 한 번의 여행에 1290달러(약 175만6463원)를 지출하지만, 스포츠 관광객은 평균 1,980달러(약 269만5968원)를 지출한다는 분석도 있다. 요스트는 "스포츠 관광객의 지출에는 경기 티켓 구매 외에도 식음료, 엔터테인먼트, 게임, 호텔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동부의 마이애미는 축구에 투자 중이다. '인터 마이애미 CF'는 2023년 리오넬 메시를 영입했고, 2026년 개장을 목표로 2만 5,000석 규모의 '마이애미 프리덤 파크'를 건설 중이다. 이 경기장은 131에이커 규모로, 소매점과 공원, 광장 등을 갖추게 되며, 연간 4000만달러(약 5446억원)의 세수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마이애미는 2026년 월드컵에서 3·4위전을 포함해 총 7경기를 개최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최대 100만 명의 방문객과 10억 달러(약 1조3616억원)의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
스페인
국민의 60% 이상이 스포츠 팬(특히 축구)이라고 말하는 스페인은 세계 최고의 스포츠 시설과 국제적인 인지도 덕분에 스포츠 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여행 전문 매체 '트래블 앤드 투어 월드'에 따르면, 스페인의 올해 스포츠 관광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13% 이상 성장해 6400만달러(약 871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스페인 출신 블로거 베가 로페즈 로메로는 "축구 관광이 얼마나 거대한지 직접 목격했다"며 "나는 경기를 중심에 두고 여행 일정을 짜진 않지만, 많은 여행자들은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엘 클라시코'(연 2회 열리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전)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고, 또 어떤 이들은 '캄프 누'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리는 경기를 중심으로 휴가를 계획합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축구를 도시의 일부로 삼았고, 경기장 투어와 클럽 박물관, 팬 존 등을 통해 축구를 문화 행사처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꼭 경기를 직접 보지 않더라도 그 에너지를 도심 곳곳에서 느낄 수 있죠."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발렌시아는 2019년부터 스포츠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지역 비즈니스 지원을 위해 마케팅 및 교육에 140만 유로 이상을 투자했다.
발렌시아 관광청 대표 폴라 로베트는 "발렌시아는 운동을 즐기는 여행자와 활동적인 방문객에게 많은 관심과 헌신을 보여주고 있어 스포츠 관광 분야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시 차원의 노력 덕분에 발렌시아는 스포츠 팬들의 기대를 이해하고 충족시키는 차별화된 여행지가 되고 있습니다."
발렌시아에는 현재 두 개의 주요 경기장이 건설 중이다. 2025년 말 개장 예정인 '로익 아레나'는 스페인 최대 규모의 농구 경기장이 될 예정이며, '누 메스타야'는 발렌시아 CF를 위한 7만 석 규모의 새 경기장이다. 발렌시아는 2025년 모토 그랑프리, 2026년 LGBTQ+ 스포츠 행사인 게이 게임도 개최할 예정이다.
호주

호주는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 개최국이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호주는 '녹색과 금빛의 10년'이라는 야심찬 캠페인을 시작하며, '스포츠 팬이라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호주정부관광청 지역 총괄 매니저 앤드류 복스올은 "지난 3년간 호주가 최고의 스포츠 관광지이며, 풍부한 볼거리와 문화, 따뜻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이번 달에만 4만 명의 영국 스포츠 팬들이 '영국 & 아일랜드 라이온스 투어'를 위해 호주를 찾았습니다."
호주의 주요 스포츠 이벤트로는 호주와 잉글랜드가 맞붙는 애쉬 크리켓 시리즈, 2027년과 2029년에 열릴 남녀 럭비 월드컵이 있다. 빅토리아주에서는 호주 오픈 테니스, F1 그랑프리가 열리며, 주도 멜버른에서는 올해 호주 최초의 NFL 공식 경기가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에서 개최된다.
빅토리아주정부관광청 대표 브렌단 맥클레멘트는 "로스앤젤레스 램스가 멜버른을 홈팀으로 지정하면서, 이번 NFL 경기는 국제 시리즈 사상 최다 관중 신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포츠는 멜버른과 빅토리아주의 DNA입니다. 지역사회를 하나로 묶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관광을 통한 경제 성장에도 기여합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의 시드니 마라톤은 최근 '애보트 월드 마라톤 메이저 대회'로 격상되어, 뉴욕·런던·도쿄 마라톤과 같은 등급이 되었다. 올해 8월 열릴 대회에는 약 3만5000명의 마라토너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뉴사우스웨일스 관광부 장관 스티브 캠퍼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시드니 하버 브리지를 건너 오페라 하우스 결승선을 통과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온화한 기후, 아름다운 해안선, 풍부한 스포츠 유산을 갖추고 있어 스포츠 관광 부문에서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퓨처 마켓 인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남아공의 스포츠 관광 시장은 약 40억 달러에 달하며, 2034년에는 1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아공에서는 최근 2027년 크리켓 월드컵 개최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대표팀 '프로테아스'가 월드 테스트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이 계기였다. 남아공 전역에는 약 400개의 골프장이 있으며, '네드뱅크 골프 챌린지'와 같은 메이저 대회가 열리는 등 골프도 인기가 높은 종목이다.
남아프리카관광청 CEO 대행 노마손토 은들로부는 최근 한 게시글에서 "남아프리카의 스포츠 문화는 단순히 숫자나 경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스포츠 관광이 사회 변화, 경제 성장, 국제적 단결을 위한 통로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는 경계를 넘어 모든 계층과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