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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 200번 물린' 남성 항체로 만든 뱀독 해독제

3일 전
맹독을 가진 뱀의 모습
Getty Images
뱀에 200번 물린 남성의 항체로 만든 '전례 없는' 뱀독 해독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한 연구진이 뱀 독을 스스로 몸에 주사해온 미국 남성의 피를 이용해 놀라운 효과를 가진 해독제를 개발했다.

팀 프리데라는 이 남성의 혈액에서 발견된 항체는 동물 실험에서 여러 종류의 치명적인 뱀 독으로부터 생명을 구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뱀의 종마다 독의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해독제는 정확히 어떤 종의 독인지에 맞춰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프리데라는 남성이 18년에 걸쳐 수행한 이 실험은, 매년 약 14,000명이 사망하고 그 세 배 이상이 절단이나 평생 장애에 시달리도록 만드는 뱀 물림 사고 해독제 개발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뱀들로 꼽히는 맘바, 코브라, 타이판, 크레이트 등에서 추출한 독을 700회 이상 몸에 주사했고, 실제로 200회 넘게 물렸다.

프리데는 처음엔 단순히 스스로가 뱀 독에 대한 면역을 얻기 위해 이 실험을 시작했다. 유튜브에 실험 과정을 꾸준히 공개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초기엔 완전히 망했다"고 고백했다. 코브라 두 마리에게 연달아 물린 후 혼수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죽고 싶지도 않았고, 손가락을 잃고 싶지도 않았고, 일을 쉬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가 이 위험한 실험을 멈추지 않은 이유는 인류 전체를 위한 더 나은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이젠 그게 제 삶의 일부가 돼버렸고, 계속해서 밀어붙이게 됐죠. 저와 8,000마일 떨어진 곳에서 뱀에 물려 죽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당신의 피를 얻고 싶은데요'

현재 뱀독 해독제는 주로 말에게 소량의 뱀 독을 주사한 후 말의 면역 반응으로 생성된 항체를 추출해 만든다. 하지만 뱀 독은 종마다, 심지어 같은 종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성분이 달라, 이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인도산 뱀으로 만든 해독제는 스리랑카에 사는 같은 종의 뱀에게는 잘 듣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한 연구팀은 '광범위 중화 항체'를 찾기 시작했다. 독마다 고유한 부분이 아닌, 독 전체 그룹에 공통된 부분을 겨냥하는 항체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팀 프리데였다. 생명공학 회사 센티백스의 CEO 제이컵 글랜빌 박사는 "이런 항체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바로 저 사람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연락다"고 말했다.

"첫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죠.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당신 피 좀 얻고 싶은데요.'"

프리데는 동의했고, 연구는 그에게 독을 추가로 주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윤리적 승인을 받았다.

연구진은 엘라피드라 불리는 독사 계열, 즉 코랄 스네이크, 맘바, 코브라, 타이판, 크레이트 등에 집중했다. 이들은 대부분 신경독을 쓰는데, 호흡을 위해 필요한 근육을 마비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다.

세계보건기구가 '가장 치명적인 뱀'으로 분류한 19종의 엘라피드를 선정해, 프리데의 혈액 속 항체를 분석했다.

그 결과는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됐다. 연구진은 두 가지 종류의 광범위 중화 항체를 발견했으며, 각각 신경독 계열 두 종류를 겨냥한다. 여기에 세 번째 계열을 막는 약제를 추가해 '해독 칵테일'을 완성했다.

이 해독제는 생쥐 실험에서 19종 중 13종의 치명적 독에 완전한 방어 효과를 보였고, 나머지 6종에 대해서도 부분적인 방어 효과를 보였다.

글랜빌 박사는 "이 정도 폭넓은 방어 효과는 전례가 없다"며, "현재 해독제가 존재하지 않는 엘라피드 뱀들에 대해서도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항체를 더 정제하고, 네 번째 성분을 추가하면 모든 엘라피드 독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확인하고 있다.

다른 뱀 계열인 바이퍼는 주로 혈액을 공격하는 혈독을 사용한다. 여기에 세포를 직접 죽이는 세포독까지 더해, 뱀 독에는 대략 12개 계열의 독소가 존재한다.

컬럼비아대의 피터 콴 교수는 "앞으로 10~15년 안에 이 각각의 독소 계열에 효과적인 해독제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연구진은 여전히 프리데 씨의 혈액 샘플 속을 파고들고 있다.

콴 교수는 "팀의 항체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는 자신의 면역체계를 스스로 훈련시켜 아주 넓은 인식 범위를 갖게 했죠."라고 말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두 가지다. 모든 독을 한 번에 무력화할 수 있는 단일 해독제를 개발하거나, 엘라피드와 바이퍼용 해독제를 각각 하나씩 개발하는 것이다.

리버풀 열대의학대학의 독사 연구센터장 닉 케이스웰 교수는 이 해독제가 "확실히 새롭고 폭넓은 보호 효과를 보여줬다"며 "이 접근법이 현실적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고 평가했다.
다만 "갈 길이 멀다"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용 전까지는 아직 많은 시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리데 씨는 지금 이 단계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뿌듯하다고 했다.
"내가 인류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정말 중요했어요. 자랑스럽습니다. 꽤 멋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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