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대부에서 보수의 중심으로… 국힘 대선후보 김문수는 누구인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3일 대선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김 후보는 이날 진행된 최종 경선에서 합산 득표율 56.53%로 43.47%를 기록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누르고 경선 1위를 달성하며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가 됐다.
노동운동가에서 강성 보수 중심이 된 김문수 국힘 후보의 정치 인생을 정리했다.
청년 노동운동가
195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문수 후보는 판잣집 단칸방에 살며 생활고를 겪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젊은 시절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점철돼 있다.
서울 경북고 3학년 때는 3선 개헌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으며, 1971년 전국 학생시위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두 차례 제적돼 졸업까지 24년이 걸렸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공장에 위장취업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위장취업 노동운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청년 시절 서울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 보조공으로 일했고, 이후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총 2년 6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김 후보를 '아들'이라 부르기도 했고, 그는 20대 노동운동가들에게 전설 같은 인물로 회자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이재오 전 의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 등과 함께 재야 세력과 노동운동 세력을 규합해 민중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노선 변경 그 후
누구보다 진보의 길을 걸어왔던 김 후보의 삶이 전환점을 맞은 건 1992년 제14대 총선 이후였다.
민중당은 이 선거에서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해산됐다.
당시 김 후보는 "마흔 살 이전에는 혁명의 길을 가다 죽을 각오도 했지만, 과거의 생각과 노선이 많은 실패를 낳았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 점에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고, 변절자라는 비판도 다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1년간 택시운전을 하며 현실 정치의 방향을 고민했다.
그러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국민의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보수 정치인으로 전향했다. 이 시기를 두고 '변절자'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는 신한국당 소속으로 경기 부천 소사에서 15대부터 내리 3선을 지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며 당내 개혁 인사로도 이름을 알렸다.
2006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뒤, 2010년 유시민 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지금은 강성 보수로 분류되지만,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개혁적 보수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2004년 박근혜 전 대표가 당권을 쥐며 당이 강경 보수로 기우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수도권 교통 시스템 재편...직접 택시 운전도
경기도지사로서 주요 성과는 수도권 대중교통 통합 요금제 도입이다.
2004년 서울시의 대중교통 체계 개편 이후 2년 넘게 지연되던 환승 할인 제도를 2006년 7월 지사 취임 후 재협상을 통해 2007년 7월부터 시행되게 했다.
교통 정책에 관심이 많은 그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의 최초 기획자이기도 하다. 김 후보는 대통령이 된다면 GTX를 전국 5대 광역권으로 확장하겠다는 철도망 계획을 공약하기도 했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직접 택시 운전을 하며 민생 행보를 드러내며 주목 받았다.
김 후보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좀 더 강성 보수로 기울었다. 탄핵 국면에선 탄핵 반대 집회에 적극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전광훈 목사와 손을 잡기도 했다.
김 장관은 최근까지도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노동개혁 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 "과연 올바른 판결이었나, 박 전 대통령이 무슨 큰 잘못을 했나"라며 "헌재가 직선제로 뽑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사랑과 충성을 너무 가볍게 본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0년대에는 낙선을 몇 번 맛봤다. 2016년 총선에서는 대구 수성갑에서 낙선했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에 도전했다가 패배했다.
탄핵 반대 속 대선 후보로 부상
윤석열 정부에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러다 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서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세력의 지지로 보수 주자 지지율 1위까지 올랐다.
청렴한 이미지가 있고 사법 리스크 문제는 없지만 역사관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김 후보는 과거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일제강점기 선조 국적은 일본'이라는 주장을 공개석상에서 되풀이하며 논란을 샀다.
이번에 국민의힘 2차 대선 경선 마지막 토론회에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이를 문제 삼자, 김 후보는 "일본이 강제로 국적을 빼앗아갔다는 뜻"이라고 항변한 바 있다.
김문수 후보는 정통 강성 보수 지지층 기반 속에 노동운동 경험을 살려 약자와 중도 확장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지점이 오히려 비일관성으로 비춰져 약점으로도 지적된다.
그는 지난 8일 조기 대선 출마를 위해 고용노동부 장관 자리에서 내려왔고, 3차례에 걸친 경선 끝에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