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에 갇혔다'...한국 선장이 전하는 현지 상황
"40년 바다 위에서 생활했지만 이렇게 된 적은 처음이에요."
중동 사태 속에서 이란이 세계적인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을 사실상 차단한 가운데, 이 일대에 발이 묶인 한국 선박 26척 가운데 한 척을 책임지고 있는 최웅 선장의 말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과 인근 해역에는 전 세계 약 2만여 명의 선원들이 고립된 것으로 파악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한국인의 경우 외국 선박에 탑승한 경우까지 포함해 186명이 고립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뿐 아니라 다양한 상품을 실은 선박들이 오가는 세계 핵심 해상 통로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5분의 1이 이곳을 통과한다.
하지만 전쟁이 점점 격화되면서 국제 해상업계 노사기구는 앞서 호르무즈 해협과 페르시아만, 오만만 일대 전체를 '전쟁작전구역'으로 지정했다.
13일 새벽, 어렵게 연결된 최 선장은 BBC에 전쟁 상황 때문에 긴장하고는 있었지만 이런 봉쇄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정박한 한국 선박 선장이 언론에 직접 상황을 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이끄는 선박은 지난 2월 27일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항에 입항해 메탄올 선적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3월 4일 메탄올 약 7400톤을 싣고 출항했지만 곧 호르무즈 해협 봉쇄 상황을 맞닥뜨렸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다 보니까 바로 가지 못하고 다른 곳에 임시 투묘를 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장기화될 것 같고 연료도 넉넉하지 않아 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두바이 항으로 이동했지요."
이동 과정도 쉽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GPS 교란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최 선장은 "전쟁이 발발하면서 GPS 문제를 종종 경험했지만 최근 3~4일 동안은 거의 활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배 속도를 기준으로 '이 정도 왔겠지' 하고 짐작하면서 항해할 수밖에 없었다"며 "수심을 확인하면서 배의 위치를 가늠했다"고 설명했다.
'아직 식량 있지만 장기화 우려'
고립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란의 새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이날 국영 TV를 통해 발표한 첫 공식 성명에서 "적(미국·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수단으로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지렛대를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선원들에게는 물과 식량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최 선장의 배에는 약 한 달 정도 버틸 식량이 남아 있지만 식수 문제가 우려된다고 했다.
"선박 안에 정수 시설이 있지만 그걸 사용하려면 항해를 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말 모든 과정에서 최소한으로 물을 아껴 쓰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에 발포할 수 있다고 공표하면서 최근 며칠 사이 걸프 지역에서 선박 공격이 보고되는 사례도 있었다.
최 선장은 "GPS 없이 배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보면 호출을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공격) 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위험 지역에 있지만 고립된 배 안에서 상황을 파악하기는 더욱 어렵다. 인터넷이 제한적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그는 그저 뉴스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걸프 해역에 머물고 있는 선원들 사이에서는 전투기와 드론, 미사일이 목격됐다는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일부 선박은 공격 피해를 입기도 했다. 11일에는 태국·일본·마샬군도 국적 화물선들이 미상의 발사체 공격을 받았다.
지난달 28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 해역에서 피격된 선박은 최소 15척으로 늘어났다. 또 지난 3월 1일에는 팔라우 국적 유조선 '스카이라크(Skylark)'호에서 선원 1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 선장의 배 선원들 역시 긴장을 유지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선원들의 건강 문제다.
"다치다 보면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매일 한국 정부에 4~5번씩 상황을 보고하고 있지만 그는 이 사태가 어떻게 끝날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도, 예측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12일 관련 상황회의를 열고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의 식료품·유류 등 필수 품목 보급 현황과 선원 안전관리 실태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최 선장은 무엇보다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이 무력을 내려놓기를 바란다고 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나라들끼리 싸우는 사이에 결국 갈 곳을 잃는 건 우리 같은 선원들입니다."
이어 그는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영상: 이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