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1000일...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 난민 학교
우크라이나에 살던 소녀 율리아나(14)의 오래전 꿈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 고향에서 수백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그의 꿈은 러시아 점령지가 되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빅토리아(16) 또한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매일 폭격이 이어지는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두 소녀 모두 현재 폴란드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고 했다.
난민 문제와 더불어 학교 교육의 중단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면전의 가장 심각한 영향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거의 100만 명에 달하는 아동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원격으로 공부해야만 했다.
학교 수천 채가 파괴되거나 크게 손상됐으며, 여전히 포격의 위협이 있어 직접 등교하는 건 불가능하거나 너무 위험하다.
율리아나와 빅토리아 모두 폴란드에 살고 있어 목숨은 구했지만, 이들에게 맞는 학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안전한 곳을 찾아 긴 피난길에 오르다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 1000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UN은 우크라이나 내부 실향민이 되거나 해외 난민이 된 이들이 약 1000만 명(대부분 여성과 아동)일 것으로 추산한다.
그중 100만 명이 이웃국인 폴란드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초기, 폴란드의 여러 비정부기구가 모여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중등학교를 설립했다.
현재 이곳의 학생 수는 300명, 교사 수는 27명으로, 학생과 교직원 대부분이 난민이다.
일부는 러시아 점령을 피해 수백 km에 달하는 피난길을 거쳤다. 최전선에서 가까운데 살다가 도망친 이들도 있다. 마을 전체가 심각하게 파괴돼 정상적인 학교 교육은 물론 생활도 불가능했다고 한다.
국제 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이 우크라이나 아동 10명 중 9명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응답한 아동의 73%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고 두렵다고 답했으며, 64%는 학습에 흥미를 잃었다고 답했다.
율리아나의 삶 또한 지난 2022년 봄, 살던 마을이 러시아 군에 포위되면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처음 며칠은 가족들과 지하실에서 머물렀다. 그러다 도시가 점령당했고, 가족은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통제하는 지역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 길은 끔찍했다.
율리아나의 어머니는 “정말 무서웠다. 딸은 지하실을 나서기 두려워했다. 우리는 피난길에 불에 탄 차, 시신을 봤다… 수많은 러시아 검문소를 통과해야만 했다”고 회상했다.
가족이 살던 집도 이미 다 파괴됐다고 한다.
한편 율리아나와 마찬가지로 이곳 난민 학교에 다니는 빅토리아는 엄마와 여동생, 반려묘와 함께 우크라이나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인 하르키우를 탈출했다.
빅토리아의 어머니는 “우리는 3일 안에 다시 하르키우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악화하기만 했다. 떠나올 때 딸들은 남겨둔 친구들 생각에 힘들어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저는 딸들에게 ‘나는 너희 목숨을 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학교의 교사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화학 교사는 몇 주간 러시아가 끊임없이 포탄을 퍼부었던 우크라이나 동부 포크로우스크 출신이다. 한때 6만 명이 살던 이곳은 이제 폐허로 변했다.
영어 교사는 하르키우 출신이다. 이번 전쟁으로 학교 90%가 전면 혹은 대부분 파괴된 곳이다.
한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민간 시설 혹은 민가를 공격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한다.
종소리가 울리지 않는 학교
언뜻 보기에 이곳 우크라이나 난민 학교는 분주하게 돌아가는 교실, 쉬는 시간에 뛰어다니는 학생들,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 노래와 웃음소리 등 전 세계 어느 학교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곳에는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없다. 이곳 학생 대부분이 공습 사이렌, 폭격 등을 겪었다. 교직원들이 갑작스러운 큰 소리를 내지 않길 원했기 때문이다. 성폭행, 구타, 탱크에 사람이 치이는 모습 등 여러 극심한 폭력을 목격한 학생들도 많다.
교장 옥사나 콜레스닉은 “러시아 점령을 피해 러시아, 벨라루스, 발트해 연안 국가를 건너 폴란드에 도착한 이들이다. 이들이 마침내 안전한 곳에 오기까지 어떤 일을 겪어야 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고 했다.
학생 중에는 여전히 러시아 점령지에 친척이 남아 있는 이들도 있다. 아버지가 여전히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학생들도 많으며, 아버지가 전쟁 포로로 끌려간 이들도 있다. 아울러 부모와 헤어져 다른 보호자와 함께 폴란드에 살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이 학교의 심리학자인 나탈리야 카라파타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회상하며 일부 학생들은 두려움에 장갑과 모자를 쓰고 있었고, 쉬는 시간에는 배낭을 등에 메고 언제든 폭탄 대피소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카라파타는 “이곳 학생들은 슬픔에 잠겨 있다.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자신들의 집을, 친척을, 반려동물을 그리원한다”면서 “일부는 점령지에 조부모가 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멀리 떨어져 지낸다는 것은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고 덧붙였다.
'자금 지원 없이 학교가 지속되긴 힘듭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폴란드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한 단기 프로젝트로 출발한 이 학교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꼭 있어야 할 존재다.
교직원들은 폴란드어와 우크라이나어로 수업을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덕분에 학생들은 폴란드에 남아 공부를 이어갈지, 우크라이나로 돌아갈지 선택할 수 있다.
빅토리아는 “우리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두 곳의 교육 시스템을 다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졸업 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졸업장을 다 인정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학교를 후원하는 단체 중 한 곳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세이브더칠드런’ 폴란드 지부의 부즈르 혹샤 담당자는 “이러한 학교는 그저 안전한 공간을 넘어 아이들이 사회적 안정을 구축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고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최대 규모의 난민이 유입된 상황이기에 (이러한 학교에 대한) 수요도 엄청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이 이어지고 있고,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매일 국경에서 피난길에 오르는 가족들이 있음에도 이번 전쟁은 잊히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가운데 이 학교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학교를 운영하는 데 연간 약 190만달러(약 26억원)가 필요하기에 교장 콜레스닉의 걱정도 깊어지고 있다.
콜레스닉은 “우리 학교는 재정적 지원 없이는 이어갈 수 없다. 이는 매우 고통스러운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를 재건하고 싶다'
이렇듯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수많은 학생들은 언젠가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야나(16)는 “폴란드에서의 삶이 좋다. 멋진 나라다”면서 “그렇지만 집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미 폴란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서도 완전히 집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두 국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지만 돌아가고 싶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재건하고 싶습니다. 조국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일부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