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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은 사라지게 될까?...'인구폭발'에서 '인구위기'의 나라가 되기까지

2024.05.08

2019년 0.92, 2020년 0.84, 2021년 0.81, 2022년 0.78, 2023년 0.72.

최근 5년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다. OECD 평균 출산율(2021년 기준)인 1.63명에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국가가 됐다.

하지만 불과 40여 년 전만 해도, 정부는 '인구가 폭발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포스터를 배포하며 정책적으로 아이를 적게 낳으라고 권했다.

한국의 인구는 대체 어떻게 격변하게 된 것인지, 인구정책 표어와 포스터를 통해 돌아봤다.

1960년대: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1960년대 인구 정책 표어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
보건복지부/인구보건복지협회
1961년 박정희 정부는 대한가족계획협회를 발족하고 인구 증가 억제책을 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당시 조선인들에게 자녀를 많이 낳도록 독려했다.

중국과 태평양에서 전쟁을 하던 일본은 군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봤다. 일본은 '낳아라! 불려라! 길러라!' 이 표어를 내걸고 자녀를 열 명 넘게 낳으면 상을 주었다. 물론 여기에 병력이 될 수 없는 여아는 제외였다.

이 정책은 해방 후 한국 정부가 수립된 뒤 뒤에도 바뀌지 않았다. 한국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자, 이승만 정권 역시 안보 기반 확충을 위해 다산정책을 유지했다.

전쟁 후 베이비 붐으로 출산율(평균 5~6명)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선진 보건의료기술 도입으로 사망률이 감소하면서 인구증가율은 연 3%에 이르렀다. 특히 1958년엔 100만 명 넘게 태어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애를 많이 낳는 것이 조국 근대화의 걸림돌이라고 여겼다. 1961년 박정희 정부는 대한가족계획협회를 발족하고 인구 증가 억제책을 펴기 시작했다.

당시 산아제한의 이론적 근거로 작용했던 건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이다. 그는 여기서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결국 인류는 대기근에 시달리며 퇴보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나온 슬로건과 포스터를 보면 '행복한 가정은 가족계획으로' 등이 적혀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자극적인 메시지도 등장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나란히 시작된 가족계획 사업의 계몽 방식은 다양했다. 우표·극장표·통장·주택복권에는 아이를 적게 낳아야 한다는 구호가 도배됐다. 모든 방송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부는 무조건 아이 둘 이하로 등장해야 했다.

197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70년대 정부는 아이를 적게 낳은 집은 세금을 줄여 주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1970년대 정부는 아이를 적게 낳은 집은 세금을 줄여 주기도 했다

1970년대부터는 자녀 수를 줄이자는 메시지가 더 직접적으로 등장한다.

당시 정부는 사람들이 아이를 여전히 많이 낳는 이유가 남아선호 사상에 있다고 파악했다. 딸을 낳을 때까지 아들을 낳는 가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아들 하나 때문에 ···' 같은 표어와 포스터들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포스터에는 피임약 광고가 같이 붙어있었다.

정부는 1976년 아이를 1~2명 낳은 집은 세금을 줄여 주기도 했다.

20년 넘게 펼쳐진 가족계획 캠페인의 결과로, 1960년대 초에는 한 집당 아이가 평균 6명이었는데 1970년대 후반에는 3.2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인구증가율도 연 3%에서 2%로 줄게 됐다.

1980년대: '둘도 많다'...다둥이 출산은 '부끄러운 일'

1980년대 들어와서는 이제 1명을 낳자는 캠페인이 시작된다. 그만큼 인구 증가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긴박함은 강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1980년대 가족계획 포스터. 인구 증가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긴박함은 강했다

1980년대 들어와서는 이제 아이를 한 명만 낳자는 캠페인이 시작된다. 그만큼 인구 증가에 대한 한국 사회의 긴박함은 컸다. 1980년의 우리나라 인구는 3812만 명으로, 1960년 2501만 명 이후 20년간 50%가 넘는 1310여만 명이 증가한 상태였다.

1980년 합계 출산율은 2.83명까지 낮췄으나 가임여성 증가로 1970년대 중반까지 베이비 붐 현상이 지속되면서 인구 증가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특히 이 시기 표어와 포스터에서는 남아선호 사상에 대한 반대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표현됐다. '하나 낳아 젊게 살고 좁은 땅 넓게 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사랑으로 낳은 자식, 아들딸로 판단 말자' 등이다.

당시 도입된 '경로우대증'도 이런 인구정책의 일환이었다. 정부는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남아 선호 사상을 철폐해야 한다는 데 착안해, 아들이 없어도 노후 대책이 보장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1980년 5월 8일 '어버이날'을 기해 70세 이상의 노인에게 경로우대증이 발급됐다. 경로우대증을 소지하면 철도나 지하철을 포함한 교통 요금과 목욕 요금을 비롯해 사찰 등 문화재 입장 요금의 50%를 할인해 줬다.

1983년에는 출산율이 현 수준의 인구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는 인구 대체율 수준인 2.1명 이하로 떨어졌다.

1980년대 가족계획 캠페인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1980년대 가족계획 캠페인 '셋부터는 부끄럽습니다'

1990년대: 성비 불균형 우려 커져

1990년대는 성비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기였다
인구보건복지협회
1990년대는 성비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기였다

1990년대는 성비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기였다.

임신 초기 태아의 성별을 판별할 수 있게 된 1990년대부터 성비는 불균형한 모습을 보여왔다. 1990년에는 116.5로 뚜렷한 남아선호사상을 드러냈다. 여아 100명이 태어날 때, 남아는 116.5명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특히 둘째 아이나 셋째 아이의 성비가 불균형했다. 1993년 셋째 아이의 성비는 209.7명으로 남아가 여아의 두 배였다. 이는 첫째 아이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낳지만, 둘째 아이나 셋째 아이는 반드시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향후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1994년 정부는 인위적인 태아 성감별을 금지했다.

'아들 바람 부모 세대 짝꿍 없는 우리 세대', '선생님! 착한 일 하면 여자 짝꿍 시켜주나요'라는 문구가 담긴 포스터는 당시 시대 분위기를 보여준다.

2000년대: 출산 장려 캠페인 시작돼

2000년대 나온 출산장려 포스터
보건복지부/인구보건복지협회
2000년대 나온 출산장려 포스터

1.5명 수준에서 머물던 출산율은 2005년 극적으로 떨어져 1.08명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립해 현재까지 인구정책을 총괄해 추진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에 대한 위기의식이 급속하게 고조되면서 출산 장려 정책은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형제입니다' 등 많이 낳아 잘 기르자는 메시지로 전환됐다.

2010년대 이후: '출산 파업'과 '한국 소멸'

2010년대 출산장려 포스터. 저출산 문제를 지적하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시작된다
보건복지부/반크
2010년대 출산장려 포스터. 저출산 문제를 지적하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시작된다

2010년 이후 출산율은 급속하게 떨어진다.

한국은 2013년부터 줄곧 OECD 국가 가운데 합계출산율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는 대표적인 출산 장려 정책으로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육아를 위한 근로 시간 단축, 아동에 대한 의료비 지원, 아동 수당 지원, 고위험 임산부 지원,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등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월, 2023년도 한국 합계출산율이 0.72명이라는 수치가 발표됐다. 이제 저출산을 넘어 '한국 소멸' 위기감까지 나오고 있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북극곰보다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만들어 지구온난화로 빙하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북극곰처럼 '인구 소멸 한국'의 상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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