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나이를 알 수 있는 일상 활동

우리의 보행 속도에는 두뇌의 노화 속도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다. 예컨대 걸음이 느린 사람은 뇌의 크기가 작고, 주요 구조 역시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우리는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얼마나 빨리 걸을 수 있는지로 육체와 정신의 기능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학계 연구는 상점과 동네 공원, 버스 정류장까지 걷는 속도를 통해 입원과 심장마비, 심지어 사망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의 보행 기록은 인지 기능의 노화 속도를 파악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보행 속도 검사는 우리의 '기능 정도'를 파악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기능 정도란 집안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며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보행 속도 검사는 육체적으로 얼마나 허약한 상태인지도 알려주고, 뇌졸중 후 재활에 얼마나 잘 반응할지도 예측하게 해준다.
나이가 들면서 걷는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걸음이 급격히 느려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크리스티나 디엘리-콘라이트 하버드 의대 교수는 "정상적인 보행 속도가 느려졌을 때 자세히 살펴보면, 그 기저에 건강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만성 질환으로 인해 많이 움직이지 않거나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걸음이 느려졌을 수도 있습니다. 즉 근력과 관절의 가동성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안타깝게도 이러한 상황은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간단한 검사
줄자 등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와 시계만 있으면, 보행 속도를 검사할 수 있다. 일반적인 방법은 두 가지다.
공간이 넓다면, 10m 보행 속도 검사를 해보자. 우선 5m 걷기 속도를 측정한 다음, 10m를 다시 측정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을 쓸 때는 5m를 걸으며 평상시 걷기 속도에 도달한 다음, 그 속도로 다시 10m를 걷는 것이 좋다. 10m를 걷는 데 걸린 시간(초)으로 거리(10m)를 나누면 보행 속도가 나온다.

공간이 제한적이라면, 4m 걷기 속도 검사도 가능하다. 1m를 먼저 걸은 다음, 4m 걷는 시간을 측정하는 검사다. 앞선 방법처럼 1미터를 걸으며 보행 속도를 끌어올린 다음, 그 속도로 4m를 걸으며 시간을 측정한다. 속도는 4미터를 걷는 데 걸린 시간(초)로 나누어 계산한다.
'워크미터', '맵마이워크', '스트라바', '구글 피트니스' 같은 운동 기록 앱으로 보행 속도를 측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앱은 GPS를 사용해 거리와 시간을 추적하고 속도를 계산한다.
연구에 따르면, 보행 속도는 노년층의 기대 수명을 예측하는 중요 요소다. 피츠버그 대학의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연구는 65세 이상 지역 주민 3만4000여 명을 6~21년 동안 추적한 9개의 연구 결과를 종합 분석했다. 그 결과 보행 속도와 수명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75세에 보행 속도가 가장 느린 집단의 남성은 이후 10년간 생존할 확률이 19%였던 반면, 보행 속도가 가장 빠른 집단의 남성은 그 확률이 87%에 달했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은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아진 사람들이 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9년 프랑스에서 실시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확인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건강한 성인 중에도 보행 속도가 느린 참가자는 보행 속도가 빠른 집단에 비해 연구 기간 동안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약 3배 더 높았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듀크대 신경과학과 선임 연구원인 라인 라스무센은 "많은 사람들이 걷는 것을 매우 단순한 일로 여긴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걷는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걷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걷기는 신체의 여러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뼈와 근육은 몸을 지탱하고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눈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심장과 폐는 혈액과 산소를 순환시켜줍니다. 그리고 두뇌와 신경이 이 모든 것을 조정합니다."
라스무센에 따르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체계의 기능이 느려진다. 따라서 보행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이러한 전반적인 기능이 저하됐다는 뜻이다. 동시에 노화의 징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반드시 나이가 든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라스무센 연구팀의 2019년 연구에서는 45세 연령대에서도 보행 속도가 뇌와 신체가 노화 속도를 예측하게 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스무센과 듀크대 연구진은 뉴질랜드 더니든에서 1972년부터 1973년 사이에 태어난 1000명 이상의 삶을 추적한 종단 연구 프로젝트인 '더니든 다학제 건강 및 발달 연구'에 참여한 45세 904명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정기적으로 건강 및 인지 기능을 평가받는 연구 참여 집단이다.
라스무센은 "같은 나이의 사람들도 걷는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45세라면 모두 중간 정도에 속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건강한 20대처럼 빨리 걷는 반면, 어떤 사람은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들처럼 천천히 걸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보행 속도가 느린 45세 집단에서는 "가속 노화"의 징후가 나타났다. 폐와 치아, 면역 체계가 보행 속도가 빠른 이들 대비 더 좋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혈압 상승, 높은 콜레스테롤, 낮은 심폐 체력 등 노화가 빠를 때 관측되는 생체표지자도 확인됐다. 게다가 느리게 걷는 사람들에게서는 악력이 약해지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것이 더 어려워지는 등 다른 신체적 건강 이상 징후도 나타났다.
연구팀은 보행 속도가 느린 사람들에게서 인지 노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 나타나는 징후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이 집단은 전반적으로 IQ 테스트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 기억력, 처리 속도, 추론 및 기타 인지 기능 테스트에서 특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MRI 검사 결과에서도 인지 기능 저하가 관찰되었다. 보행 속도가 느린 사람은 뇌가 더 작고, 사고와 고등 정보 처리를 관장하는 뇌의 가장 바깥쪽 층인 신피질은 더 얇고 상대적으로 백질이 많았다. 흥미롭게도 느리게 걷는 집단은 얼굴도 다른 집단 대비 더 빠르게 노화 현상을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다.
요컨대 학계 연구는 보행 속도가 느린 사람의 신체와 뇌는 빨리 걷는 사람에 비해 더 빠르게 노화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어렸을 때부터 일어난다고 추정할 수 있는 관측자료도 있다. 연구 참가자가 3살 때 실시한 지능, 언어 및 운동 능력 테스트를 바탕으로, 45세가 되었을 때의 보행 속도를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스무센은 "가장 놀라웠던 것은 45세가 되었을 때의 보행 속도와 어린 시절의 인지 능력 사이에 연관성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행 속도는 단순히 노화의 징후가 아니라 전 생애 주기에서 두뇌 건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걷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보행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 많기 때문이다. 디엘리-콘라이트는 항암 치료에서 회복 중인 사람들이 체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운동법을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그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체력 향상을 위해 3~4주마다 걷기 운동의 시간과 강도를 늘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간단한 방법도 있다.
디엘리-콘라이트는 "신체 활동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가능한 모든 기회를 활용해 자주 걷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목적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기,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며 걷기, 애완동물을 데리고 동네 공원 가기 등을 추천했다.
디엘리-콘라이트는 "특히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걷기를 위한 휴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5분만 걷거나, 직장 주변을 5분간 빠르게 걷는 것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앉아있는 시간에 쉼표를 찍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