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방송 중단: 대북 라디오 방송은 정말 북한에 대한 '체제 전복 시도'일까

한국 국가정보원이 송출하는 대북 방송들이 이달 초 전면 중단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6월 25일 이종석 국정원장이 취임한 지 약 열흘만의 조처로, 정권에 관계없이 이어져오던 국정원의 대북방송은 50여년 만에 그 맥이 끊기게 됐다.
이는 남북관계 복원을 최우선 대북 정책으로 내세운 이재명 정부의 유화책 중 하나로 해석된다. 현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6월 4일) 일주일 만인 지난달 11일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바 있다.
미국 연방 정부 산하 VOA(Voice of America)와 RFA(Radio Free Asia)가 트럼프 정부의 예산 삭감 정책에 따라 올해 상반기 사실상 해체된 데 이어 국정원의 대북방송 마저 중단되면서 일각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부 정부 유입은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
국정원은 '인민의 소리', '희망의 메아리', 'K-뉴스', '자유 코리아 방송' 등 다수의 대북 라디오와 TV 방송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국정원은 이를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의 대북방송 역사는 50년이 넘는다. 특히 라디오 방송은 6·25 때 미국 정부 주도로 미군이 1972년까지 송출했으며 1973년 한국 중앙정보부가 이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운용했다고 한다. TV 방송은 1980년대 말 무렵 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소식통은 BBC에 "현직에 있을 당시 미국에서 물려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국정원이 대북 방송을 해온 것은 맞다"고 밝혔다.
특히 "폐쇄형 독재국가에서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가 막혀있기 때문에 국정원의 대북 방송의 역할은 상당했다"며 "이 방송을 듣고 탈북한 이들도 꽤 된다"고 했다.
실제 국정원이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은 북한 전역에 송출되며, TV 방송은 신의주에서 강원도 원산 권역까지 닿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북한이 독재 유지를 위해 외부 정보를 차단하고 있고 관련 법까지 만들어 주민들을 단속하고 있는데 이젠 외부 소식을 전해주는 창구들이 줄줄이 막히게 됐으니 북한 주민들은 다시 암흑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우려했다.
조한범 한국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냉전 시기 남북 방송 대결은 사실 체제 경쟁"이었다며 "90년대 공산권 붕괴 이후 체제 경쟁은 사실상 끝났고 그간 국정원과 군 당국, 민간 등의 대북방송은 북한 주민에 대한 외부 정보 전달이 더 큰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방송 중단으로 인해 남북 긴장 완화 또는 관계 개선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헌법상 한국 국민인 북한 주민에 대한 알 권리, 인권 개선 등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한국 외에 북한 주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정보 유입 차원에서 대북 라디오 방송을 지속해온 나라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바로 VOA와 RFA의 한국어 방송이다.
특히 VOA는 일제 강점기인 1942년 한국어 방송을 시작했는데 당시 미국 워싱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VOA 한국어 단파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립'과 '해방'을 주장했다는 일화는 꽤나 유명하다.
하지만 현재 VOA 한국어 서비스 홈페이지에는 넉달째 "방송국 사정으로 현재 한국어서비스 방송과 웹/소셜미디어 업데이트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있다. 메인 뉴스가 업데이트된 날짜는 2025년 3월 16일이 마지막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대북 라디오 방송이란?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정말 대북 라디오 방송을 들을까? 듣는다면 왜 들을까?
북한에도 TV와 신문, 라디오 방송이 있다. 하지만 모두 북한 당국이 내보내는 소식만 전달된다. 스마트폰이 있기는 하지만 인터넷이 차단되어 있기에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손쉽게 누구나 손에 쥘 수 있는 라디오다. 고정되어 있는 주파수를 몰래 조작해 외부 소식을 듣는 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현인애 한반도미래여성연구소장은 "그 안에 있는 주민들은 바깥 세상을 너무 모르니까 첫째는 궁금해서 듣고 둘째로는 세상 소식을 알고 싶어서 듣는다"고 했다.
외부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걸리면 '간첩'으로 몰릴 줄 뻔히 알면서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뻥 뚫리기 때문에 한번 듣기 시작하면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듣다보면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너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보기에는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북한 주민들도 중국에 와서 TV를 보고 소식을 듣기 시작하면 한결같이 느끼는 것이 '우리가 그동안 바보처럼 속고 살았구나' 이거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그냥 사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양반과 노비가 존재했던 당시에는 모두가 그것을 당연시 여겼듯이 지금 북한 주민들도 그저 그들의 삶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것.
현 소장은 "속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국에 반감을 갖기 때문에 북한 정부는 무조건 외부 정보 유입을 싫어하고 비난하는 것"이라며 "북한 정권이 존재하는 이유는 주민들이 바깥 세상을 모르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을 뻔히 다 아는 국정원이 나서서 대북 방송을 중단했다는 소식에 너무 가슴이 아프고 속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이 중국 사람들만큼만 세상 소식을 들어도 북한은 망할 텐데, 왜 한국 정부가 스스로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결과적으로 한국과 미국이 나서서 '김정은의 기쁨조'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북한에 있을 당시 외부 라디오를 몰래 들었다는 서울거주 탈북민은 "저녁에 아궁이에 불을 떼면서 여기저기 주파수에 맞춰 라디오를 즐겨 들었는데, 처음에는 다 거짓이라고 생각했지만 북한 내부 소식을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점점 신뢰하게 됐다"고 했다.
한편 이광백 국민통일방송 대표는 북한 주민들의 대북 라디오 청취와 관련해 "2~3년에 한 번 여러 기관에서 북한 내 청취율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약 10% 가량의 북한 주민들이 한국이나 국제사회에서 보내는 라디오를 들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그는 "외부 사회가 철저하게 차단된 북한 사회에서 10명 중 1명이 바깥 세상의 라디오를 듣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대북 라디오 방송량 80% 급감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대북 라디오 방송량이 급감한 것은 당연하다.
미국 스팀슨 센터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올해 초 대북 라디오 방송량과 현재의 방송량을 비교해보니 방송 시간이 하루 415시간에서 89시간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초, 밤 11시에 방송되던 대북 라디오는 11곳에 달했지만 현재는 5개만 남았다고 한다. 주파수 개수 역시 25개에서 6개로 줄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북한이 대북 방송 유입을 차단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북한 당국은 대북 방송의 유입을 막기 위해 방해 전파를 쏘고 있다.
38노스는 "현재 남아있는 대북 방송 매체 가운데 대부분의 방송량은 KBS 한민족 방송과 한국 국방부가 운영하는 '자유의 소리'가 담당하고 있다"며 "이 두 곳의 방송 중단까지 결정될 경우 대북 방송은 영국 BBC의 한국어 방송과 대북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자유북한방송, 북한개혁방송, 국민통일방송 등 4곳만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북민간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방송들은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NED)과 미국 국무부 산하 민주주의·권리·노동국에서 지원받는데 양쪽 모두 트럼프 행정부가 폐쇄를 추진하고 있어 이들의 운명도 점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38노스는 그러면서 "북한 노동당은 수십년간 검열되지 않은 정보 유입과 싸워왔는데 자신들의 행운(대북방송 중단)을 믿기 어려울 것"이라며 "한반도 상황이 악화하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 주민과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잃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광백 국민통일방송 대표는 "한국이 스스로 대북 방송을 중단한 것은 북한 주민의 정보 자유, 인권 상황 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조치"라며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 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문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쩌면 한반도 평화의 굉장히 중요한 지름길일 수 있는데, 한국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북 정책을 펼치는 것이 그 지름길을 스스로 폐기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만약 미국의 기금 지원마저 중단된다면 민간의 활동도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면서 "지난 20년 간 해온 북한 주민의 정보 자유를 위한 라디오 방송이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