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의원 퇴출 국민 투표를 앞두고 분열되는 대만

대만에 사는 덩 푸는 평생 자신을 시민운동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덩은 대만 입법원(의회) 의원들의 행태가 비민주적이며, 의회에 드리운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공공연하다고 생각해 화를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수천 명의 다른 시민들과 함께 거리 시위에 나섰다.
그리고 두 달 전에는 관련 시민단체에 가입하기까지 했다.
생애 처음 이러한 일에 나서본다는 올해 나이 39세의 이 사진작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예전 사회운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날 화나게 한 건 처음"이라면서 "우리는 시민이다 … 그리고 시민이라면 사회가 민주주의 체제와 정신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분노는 전환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오는 26일(현지시간) 대만에서는 이른바 '대 소환' 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중국과 지나치게 가깝다는 의혹을 받는 입법위원(의원) 20여 명을 파면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전례 없는 투표는 대만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 분열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양측 모두가 대만의 신성한 민주주의 수호자임을 자처한다.
이 모든 일은 올해 1월 치러진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만 유권자들은 민주진보당(민진당) 소속 라이칭더를 총통으로 선택했으나, 입법원에서는 야당이 과반을 차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몇 달간 주요 야당인 국민당은 군소정당인 대만민중당 및 무소속 의원들과 함께 집권 민진당 측 법안 처리는 차단하는 한편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법안은 통과시켰다. 헌법재판소 권한 축소, 정부 예산 삭감, 소환 투표 기준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이에 일부 대만인들은 크게 분노했다. 민진당 정부를 방해하는 한편 야당의 입법원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계략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해 5월 수천 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으니, 이른바 '파랑새 운동'이다.

파랑새 운동 참가자 중 다수는 상대적으로 친중적인 국민당이 주도하는 야권이 중국 본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이들이 대만 입법원 내에서 중국이 선호하는 의제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고 믿는다.
국민당 측은 이를 부인했으나, 지난해 국민당 소속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공산당 고위 간부인 왕 후닝로부터 환대를 받으면서 의혹은 더 커졌다.
파랑새 운동에 참여한 시민 단체들은 국민당 의원들에 대한 소환 투표를 열어달라는 청원을 시작했고, 국민당 지지자들은 민진당 의원들에 대한 맞청원을 요구하며 대응에 나섰다.
현재까지 의원 총 31명에 대한 소환 청원이 1차 요건을 충족했다. 전원 국민당 소속이다.
만약 실제로 국민당 소속 의원들이 소환 투표를 통해 퇴출될 경우 집권 민진당이의회 다수당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대만 역사상 소환 투표가 처음은 아니나, 이처럼 짧은 기간에 이토록 많은 소환 투표가 진행된 적도 없다.
오는 26일, 선거구 24곳의 주민들은 의원 퇴출에 동의하는지 혹은 반대하는지 묻는 간단한 찬반 투표에 참여하게 된다. 나머지 지역의 소환 투표는 다음 달에 진행될 예정이다.
각 지역구에서 투표율이 등록 유권자의 25%를 초과한 상태에서 찬성표가 반대표보다 많으면 해당 의석은 공석이 되고, 3개월 이내에 보궐선거가 실시된다.
이 때문에 이번 대 소환에서는 투표율이 중요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렇기에 시민단체들은 SNS와 길거리 등에서 투표 참여를 열렬히 독려하고 있다.
한편 덩은 최근 주중에도 같은 시민 단체 회원 몇 명과 함께 타이베이 지하철 밖에서 함께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한편 행인들에게 '다 함께 투표하자', '소환에 찬성하자' 등의 문구가 적힌 부채와 휴지를 나누어주었다.
일부 소환 투표는 국민당 텃밭 지역에서 진행된다. 그렇기에 덩 또한 설령 파면에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국민당 소속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대 소환 투표는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주장이다. "우리 민주주의를 바로잡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덩은 결과가 어찌 되든 이는 "모든 정당에 대만인들의 요구를 존중해야 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덩은 이번 파랑새 운동에 참여하는 다수가 민진당 지지자임은 인정하면서도, 현재 야당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관련 시민단체들이 민진당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는 의혹은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우리는 보궐선거에서의 민진당 성공 여부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더 시급한 과제는 바로 정상적인 의회를 되찾는 것입니다. 중국과 중국공산당과 밀착하지 않는 의회입니다."
덩은 민진당 의원들의 대응도 소극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소환 청원부터 지금까지 시민단체들은 민진당을 향해 시민들이 여기 있고, 우리는 다수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 민진당이 우리와 함께 연대하길 강력히 촉구합니다."

사실 민진당도 처음에는 대 소환 운동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은 지지의사를 표했다. 라이 총통은 민진당이 "시민들의 힘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한편, 당 내부 인사들에게 소환 투표 찬성 단체를 지원해 "국가를 보호"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야당은 민진당이 은밀히 대 소환 및 파랑새 운동을 기획했다는 의혹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번 일로 가장 큰 정치적 이익을 얻을 세력은 민진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민진당이 의회에서 영구적으로 과반을 차지하게 될 기회를 잡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보궐선거에서 국민당이 승리한다고 할지라도 민진당은 그사이 몇 주간 과반 지위를 활용해 핵심 법안들을 통과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한편 국민당을 비롯한 야당이 주도하는 소환 투표 반대 시위에도 수천 명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주 신베이시 반차오구에서 열린 반대 시위에서는 지지자들이 팔로 'X' 자를 그리며 '소환 반대'를 외쳤다. 그리고 여러 연사가 무대에 올라 대 소환 투표를 비난하는 한편 라이 총통은 대만의 민주주의를 배신한 권위주의적인 독재자이자 파시스트라고 규탄했다.
시위 현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라이 총통이 마치 아돌프 히틀러처럼 보이도록 꾸민 영상이 재생되며 '독재자 라이', '녹색 공포'라는 문구가 계속 등장했다. 민진당의 상징색이 녹색으로, 국민당 집권 시절의 독재와 정치 탄압을 상징하는 용어인 '백색 공포'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다.
한편 이러한 수사는 멀리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중국의 논조와도 닮아 있다.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인 '대만사무판공실'은 라이 총통이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 정치를 펼치며 "반대파들을 탄압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소환 반대 시위에 참여한 무 지리(68)는 "이번에 소환 대상이 된 의원들은 각 지역구에서 유권자들의 표를 받아 선출된 이들이다. 만약 이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낙선시키면 될 일"이라면서 "왜 우리는 이토록 악랄한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몰아내려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야간 근로자라는 무는 이 의원들이 국민당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표적이 되고 있으며, 파랑새 운동에 참여한 시민운동가들은 모두 민진당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는 "한 정당이 다른 정당의 의원들을 단 한번의 대규모 소환으로 몰아내는 행위는 민주적이지 않다"면서 "나는 파란색 편"이라고 덧붙였다. 파란색은 국민당의 상징색이다.
"그러나 녹색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국민당을 지지해서 여기 온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대만에는 중립을 지키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
근처에서 시위를 지켜본 반차오구 주민 페기 린(43)은 BBC가 만나본 다른 행인들과 마찬가지로 '대 소환'을 두고 불거진 혼란에 당황스러워했다.
보육교사인 린은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이번 논쟁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도 않았다 … 그래서 딱히 의견이 없다"고 했다.
"좀 더 알아본 뒤 그날 제 느낌에 따라 투표할 예정입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대 소환 투표에 대해 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분열된 대만 사회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적 갈등은 때로 상당히 뜨거워지기도 한다. 정치적 교착 상태 속 의원들은 의회에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으며, 시민운동가들은 개인정보 유출이나 괴롭힘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덩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외부에서 활동을 벌이던 중 투표에 반대하는 주민들로부터 폭행이나 밀치기를 당한 적 있다고 털어놓았다.
또한 이번 투표 과정에도 잡음이 불거졌다. 민진당과 국민당 의원들에 대한 소환 청원서에 이미 사망한 이의 이름이 들어가는 등 서명이 위조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호주 국립대학교에서 대만에 대해 연구하는 정치학자 웬-티 성 박사는 이번 투표는 "4년이라는 (대만 의원의) 임기는 당연한 것이 아닌, 의원들의 성과에 따라 조건부로 부여되는 기간으로, 의원들은 정기적인 평가를 받는 존재라는 인식이 굳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분열은 좋아지기보다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성 박사는 그러면서도 이번 대 소환 투표가 특히 민진당 지지자들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활동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고 덧붙이며, 이는 대만 시민 사회의 회복력에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카네기 차이나'의 비상주 연구원인 이안 총 박사는 만약 이번 투표로 다수의 의원이 퇴출당한다면 "이는 대만 정치인들에게 대중 감정을 상대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조심해야 한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했다. "너무 멀리 가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가 따른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총 박사는 "그러나 실패한다면 오히려 정치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게 되면 분열은 더 심화될 것이며 … 정치인들은 이번 대 소환 투표는 결국 특정 사람들에만 국한된, 충분한 동력을 얻지 못한 그저 그런 시민 사회 운동으로 치부할 것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치열했으나 결정적이지 않은 결과가 도출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총 박사는 그렇게 되면 "국민당과 민진당이 결국 타협하고 협력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결국 "대만에는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