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 이면의 '무너진 우정'
역사적으로 캄보디아와 태국은 종종 충돌하곤 했다.
두 나라는 숲으로 뒤덮인 긴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 지역은 양국이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 가끔 심각한 교전 상황으로 번지기도 했는데, 2008년과 2011년 발생한 유사한 규모의 무력 충돌로 약 40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상황은 비교적 빠르게 진정되었다.
캄보디아 군인 1명이 사망한 직후인 올해 5월까지만 하더라도 양국은 무력 충돌로의 확대를 막고자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양국 군지휘관들은 함께 만나 긴장 완화를 논의했다.
하지만 지난 24일, 결국 갈등이 폭발하고 만다.
태국 당국에 따르면 양국 간 국경 분쟁지역 내 충돌로 민간인 11명을 포함해 총 12명이 숨졌다. 캄보디아 측은 아직 자국의 사상자 발생 여부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23일 지뢰 폭발로 태국 군인 5명이 부상당하며 촉발된 이번 국경 분쟁은 왜 유독 이렇게 대규모로 악화했을까.
양국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한 시기는 캄보디아의 실세인 훈 센 전 총리가 패통탄 친나왓 현 태국 총리와의 국경 분쟁 관련 통화 내용을 유출한 지난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로 인해 친나왓 총리는 큰 곤경에 처했다.
통화에서 친나왓 총리는 훈 센 전 총리를 '삼촌'이라 부르고, 자국군 사령관을 비난하며 태국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후 친나왓 총리는 직무 정지되었으며, 현재 태국 헌법재판소에서 총리 해임 청원을 검토 중이다.
훈 센 전 총리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두 가문의 우정을 무너뜨리는 이러한 결정을 왜 내렸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친나왓 총리는 유출된 통화에서 보여준 태도로 지탄받고 있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인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와 훈 센 전 총리와의 우정을 내세워 양국 간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한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두 나라 총리 간 우정은 과거 탁신의 반대파들에 의해 그가 조국인 태국보다 캄보디아의 이익을 더 우선시했다고 비난하는 근거로 언급되기도 했다.
2014년,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자 훈 센은 탁신 지지자들이 캄보디아로 피신하도록 허용했다.
아울러 양국은 더 은밀한 분야에서도 협력해 왔다.
지난해 11월 태국 정부는 자국에 있던 캄보디아 반체제 인사 6명과 어린아이 1명을 캄보디아로 돌려보냈다. 모두 UN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던 이들은 귀국 즉시 구금되었다.
2020년에는 캄보디아로 도망친 태국 출신 청년 정치운동가 완찰름 삿삭싯이 납치되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태국 정보요원들이 그 배후로 짐작된다.
올해 1월에는 태국 수도 방콕 도심 대낮에 캄보디아 야권 인사가 피격되었는데, 정치운동가들은 해당 사건 역시 양국 정보기관이 공조한 결과로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통탄 총리와 훈 센 전 총리 간 통화 내용 유출로 친나왓 일가는 허를 찔린 모양새다.
탁신 전 총리와 패통탄 총리의 반응에서는 배신감이 묻어나오며, 양국 간 언쟁 수위는 점점 더 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말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태국 경찰은 도박 및 사기 조직과의 연계 의혹에 휩싸인 캄보디아 출신 유력 재계 인사들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양국 간 무역도 멈췄다.
국경 지역에서는 양국 군 사이 더 심각한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훈 센 전 총리는 물러서기는커녕 이를 태국, 특히 친나왓 일가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일 기회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그는 탁신 전 총리가 태국 왕실을 모욕했다는 증거가 담긴 비밀 문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왕실 모독죄는 태국에서 중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다.
이에 태국 정부가 지난 23일 캄보디아 대사를 추방하는 한편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양국 간 긴장은 더 고조되고 있다.

현재로선 양측 모두 한발 물러설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실 양국 모두 이번 대치 상황을 진정시킬 힘과 자신감을 갖춘 지도력이 부족한 상태다.
캄보디아의 현 총리인 훈 마넷은 훈 센의 아들로, 경험도 부족하며 아직 자신만의 권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다. 그의 아버지인 훈 센 전 총리에게서는 자신의 민족주의적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이번 갈등을 더 부추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태국 측에서는 탁신 전 총리가 이끄는 당을 중심으로 한 불안정한 연립정부가 집권한 상태로, 경기 침체와 미국발 관세 위협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캄보디아와의 이번 갈등에서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상황이다.
캄보디아 역시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며, 경제의 주요 축인 관광 산업의 경우 납치 및 강제 노동이 두려워 중국 관광객들이 발길을 끊으며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발 관세 위협이 경제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국가 모두 훈 센과 탁신 같은 경험 많은 정치인들이 있다. 이들은 양측 모두 준비가 되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아세안)'의 다른 회원국들이 나서 양국을 설득해 긴장 완화를 유도할지 여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아세안의 주요 설립 취지가 회원국 간 분쟁 방지로, 현재 일부 회원국들은 두 나라 간 갈등 해결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훈 센 전 총리가 왜 이 우정을 깨고 갈등을 격화시키기로 했는지는 미스터리다.
아마도 올해 사기 조직에 압박을 가하기로 한 태국 정부의 결정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캄보디아의 수익성 높은 카지노 산업을 위협할 수 있는 탁신의 도박 합법화 추진 행보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더 단순한 이유일 수도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노련한 정치적 생존자 중 한 명인 훈 센이 태국 내에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동맹자 탁신을 버리고 자신은 캄보디아 국민 앞에서 민족주의적 이미지를 강화하고자 마키아벨리식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