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가 동행한 요르단으로 향하는 가자 지구 아동 환자들의 여정
우리가 탄 헬기는 저물어가는 따뜻한 태양 빛을 가르며 날았다. 지상 위 크고 작은 마을과 도시에서는 하나둘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계속 올려 보지 않고 걷거나 운전하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요르단 암만 교외 상공을 지날 무렵 사파 살하는 자신이 쓴 메시지를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가자 지구에서 아이를 데리고 피난 온 사파는 '신이시여, 요르단은 정말 아름답다'고 적었다.
이들 피난민은 육로로 요르단 국경까지 왔다. 나는 그 지점에서 합류해 헬기로 암만까지 가는 마지막 구간을 동행했다.
사파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헬기의 소음도 워낙 심해 제대로 된 대화가 불가능했다.
사파는 휴대전화를 건네며 또 다른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매일 이 (헬기를)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폭탄을 떨어뜨리고 우리를 죽이려고 오는 헬기였죠. 그러나 오늘은 정말 다르게 느껴집니다.'
사파의 옆에는 아들 유세프(16)가 앉아 있다. 유세프는 마지막 수술로 얻은 머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유세프는 미소를 지으며 가자 지구가 아닌 평범한 것들, 즉 헬기를 타게 되어 얼마나 흥분되는지, 자신이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 소년은 내게 자신은 매우 행복하다고 말하며 주먹 인사를 했다.
그 옆에는 겁먹은 표정의 9세 소녀 사마 아와드가 어머니 이스라의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사마는 뇌종양 환자로, 암만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헬기가 착륙하고 엔진 소음이 사그라들자 이스라는 "딸이 이곳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이미 여러 사진을 통해 수없이 답을 들었던 질문이지만, 나는 방금 그곳을 떠난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건넸다.
'현재 가자 지구의 상황은 어떤가요?'
이스라는 "끔찍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여러모로 참담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어린이 환자 4명은 부모 빛 보호자 12명과 함께 요르단으로 대피했다. 이들은 지난 14일 구급차를 타고 가자 지구에서 출발해 이스라엘을 경유해 국경 검문소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이동했다.
이번 아동 대피 계획은 올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 간 회담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요르단 측은 어린이 환자 총 2000명을 자국으로 데려와 치료받게 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요르단에 대피한 아동은 33명뿐이며, 모두 부모 또는 보호자와 함께 이동했다.
요르단 소식통은 이스라엘이 대피를 지연시키고 각종 제약을 가했으며, 전쟁까지 재개하며 대피 작업이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가자 지구 내 환자 중에는 이스라엘을 통해 다른 국가로 대피한 이들도 있다.
BBC는 요르단의 이 같은 우려를 이스라엘의 담당 정부 기관인 COGAT(이스라엘 국방부의 팔레스타인 업무 조직)에 전달했다. COGAT 측은 BBC에 "올해 초부터, 특히 몇 주간 해외에서 치료를 받고자 이스라엘을 통해 대피한 가자 지구 주민 수가 많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COGAT에 따르면 환자와 보호자 수천 명이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미국 등 여러 국가로 이동했다. 다만 "가자 지구 내 진행 중인 적대 행위로 인해 이러한 대피 작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3월,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거점이라면서 여러 목표물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며 마지막 휴전을 파기했다.
가자 지구는 주민들이 여전히 굶주림과 죽음에 시달리는 폐쇄된 지역으로 남아 있다. 치료 목적으로 국외 대피하는 사람들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UN에 따르면 가자 지구 주민 중 210만 명이 기아 위험에 직면해 있다.
톰 플레처 UN 인도주의 사무차장은 가자 지구에서의 "대량 학살(genocide)을 막기 위한"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조치를 촉구했다. 영국 외교관으로서 냉철한 훈련을 받았으며, 정부 고문으로 활동해 온 그가 이토록 강한 어조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필수적인 구호물자가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폭격까지 이어지면서 이스라 아부 제임은 가자 지구에 대해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장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편 올해 1월부터 우리는 하비바 알-아스카리의 상황을 살펴왔다. 앞서 소녀 하비바는 어머니 라나와 함께 괴사 감염된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살릴 수 있을지 희망을 품고 요르단에 왔다.
그러나 희귀 피부 질환으로 인해 감염이 심각해진 탓에 결국 두 팔과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이번 주에 하비바와 라나 모녀를 다시 만났다. 이 작은 소녀는 남아 있는 발가락을 이용해 어머니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기도 하고, 남아 있는 팔을 이용해 내게 입맞춤을 날리기도 했다. 5개월 전 헬기로 이동하던 당시 두려움에 떨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라나는 "하비바는 강하다"고 했다. 소녀는 이후 의족을 착용하게 될 예정이다. 이미 어머니에게 자신이 뛸 수 있도록 겨드랑이를 잡아달라고 하는 등 걸으려는 의지를 보였다.
라나는 언젠가 하비바를 데리고 가자 지구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암만에서는 보살핌도 받고 안전하지만, 다른 가족들과 이웃은 여전히 폐허 속에 남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은 어린 딸의 건강 때문에 곧바로 돌아갈 생각은 선뜻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집이 없습니다. 돌아가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하나요? 모래로 가득 찬 텐트로 돌아가야 할 테죠… (하지만) 전 진심으로 가자 지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자 지구는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제게 가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소중한 곳입니다."
하비바 모녀는 언젠가 가자 지구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향한 곳에는 전쟁 혹은 평화 중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누구도 답을 모른다.
추가 보도: 앨리스 도야드, 수하 카와르, 니크 밀라드. 말라크 카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