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인가 실상인가'... 대선 후보의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들
베이지 색의 캐주얼한 니트 차림과 갈색으로 염색한 헤어 스타일.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재명 후보가 공개한 대선 출마선언 영상에서 이 후보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링으로 주목받았다. 칼각이 잡힌 검정색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 까만 흑발 스타일링 대신 다소 '중립적이고 부드러운' 색감을 택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후보를) 퍼스널 브랜딩을 굉장히 잘하고 있는 정치인 중 하나로 꼽습니다. 이미지 컨설팅 교육할 때 예시로 많이 쓰이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국내 1호 이미지 컨설턴트로 불리는 정연아 씨는 이 후보를 "이미지 컨설팅에 있어 내공이 쌓여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이미지 컨설턴트들은 정 씨의 손을 거친 그의 제자들이다. 그만큼 정 씨는 이 업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다양한 정치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 내에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이번 조기 대선 후보들에게는 '유권자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어느때보다 중요하다.
정 씨는 "이미지로 사람을, 특히 대통령 후보를 판단하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이라면 언어적, 비언어적 요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사람은 상대의 외모로 첫 인상을 판단합니다. 눈에 보여지는 것을 진실로 믿고, 그걸 활용해서 선동을 하기도 하죠. 그리고 선동된 이미지가 그 사람을 완전히 둘러싸면서 부정적, 혹은 긍정적 이미지로 각인이 되고요."
'비밀유지각서' 쓰는 이미지 컨설턴트

이미지 컨설팅은 퍼스널 브랜딩, PI (Personal Identity) 컨설팅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크게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로 나뉘어지는 7가지의 PI 요소들을 고려해 한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즉, 말투나 목소리, 화법 등 청각적 요소를 포함해 표정, 헤어스타일, 몸짓, 외모 등 시각적 요소를 모두 관리하는 일이다.
최대한 한 개인의 '긍정적인 부분'을 두드러지게 하고 '부정적인 부분'은 감추는 방향으로 컨설팅이 진행된다.
오랜 기간 이미지 컨설턴트로 근무하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 이회창 전 한나라당 후보 등 다수의 대선 후보들에게 조언해 온 정연아 씨는 "정재계 인사들을 다수 컨설팅했지만 이미 알려진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 또 어떤 분들을 컨설팅했는지 자세히 알려드릴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15년간 이 업계에 몸 담으며 정치인, 기업인, 일반인까지 아우르는 컨설팅을 진행해온 권하연 씨 역시 "이미지 컨설턴트들은 정치인 컨설팅 시작 전 비밀유지각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를 내가 담당했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컨설턴트에 따르면 대선 후보 이미지 컨설팅을 의뢰받은 업체는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정 씨는 "앵커 출신의 스피치 담당자가 후보자의 말투, 언어 습관, 발성 등을 관리하게 된다"며 "그 외에도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후보에게 어울리는 메이크업 스타일을 연구하고, 스타일리스트가 옷이나 액세서리를 담당하는 등 총 3~4명의 팀원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또 컨설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팀원들이 모여 분석 작업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설문조사를 시행하거나 영상 분석을 하기도 한다.
"각 분야의 전문 팀원들이 모여서 후보자를 분석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키워드를 도출하죠. 그래야만 키워드에 맞춰서 이 후보자는 어떤 컬러나 소품을 사용해야 하고, 어떤 제스처를 써야 하고, 연설할 땐 어떤 부분이 보완되어야 하는지 등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계획할 수 있어요."
또한 후보자가 어떤 키워드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한다. 권 씨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싶어 컨설팅을 받고 싶은 건지 아니면 내 컨셉을 더 극대화하고 싶은 건지를 먼저 파악해서 컨설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분석이 끝나면 구체적인 컨설팅이 제공된다.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해 작은 브로치 장식부터 신발까지 세세한 스타일링도 거치게 된다. 또 후보자의 과거사나 유권자들의 기대 사항 등을 고려해 캐치프레이즈를 만들기도 한다.
이미지 메이킹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1960년 9월 미국 대선 TV토론에서 단정한 차림으로 나온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존 F. 케네디 상원의원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공화당 후보 리처드 닉슨 부통령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일화가 있다.
이미지 컨설팅 베스트 vs 워스트 정치인은?

경험이 많고 내공이 쌓인 연로한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조언을 한다는 것은 모든 컨설턴트에겐 난관이다.
정연아 컨설턴트는 "유독 아집이 있는 분들이 있다"며 "육체적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정돈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데, 컨설팅 후에도 자신의 원래 이미지 그대로 돌아가는 케이스를 너무 많이 봤다"며 그럴 때 회의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권하연 컨설턴트는 "각자의 감성과 우리가 추천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맞지 않으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담당했던 후보들의 SNS 계정을 보다가 우리가 컨설팅한대로 잘 해주고 계실 땐 감사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한편 정 씨가 정치인 스타일링에서 가장 큰 비중을 두는 부분은 '넥타이'다. 그는 이를 '넥타이 컨설팅'이라고도 부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컨설팅 할 때 정 씨는 스트라이프(줄무늬) 넥타이를 즐겨 매치했다. 현대건설 회장을 거친 이 전 대통령의 '한 번 하면 한다'식의 강한 리더십을 그대로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또 계속 캐주얼한 점퍼를 입고 다니시더라고요. 현대건설 전 회장으로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으셨나 봐요. 하지만 그걸 계속 입고 다니면 융통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거든요. 대통령다운 이미지도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신 캐주얼 재킷을 입으라고 권유 드리기도 했죠."

정 씨는 이미지 메이킹을 가장 잘한 국내 정치인으로 홍정욱 전 의원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를 꼽았다.
"(홍 전 의원은) 옷을 하나 입을 때도 정확하고 클래식하게, 정석대로 입는 정치인이었죠. 그래서 홍 전 의원의 스타일링을 벤치마킹한다면 품격 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고 늘 말하고 다녀요."
"한동훈 전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에 클래식 정장을 잘 갖춰 입었어요. 선거 운동을 할 때도 상황에 맞게 잘 입는 분이고요. 다만 검사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말의 속도나 말투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지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죠."
권하연 컨설턴트 또한 한동훈 전 대표를 이미지적으로 컨설팅이 잘 된 케이스로 꼽았다.
"다만 제가 한 전 대표를 담당하게 된다면 까맣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바꿔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도 하는데, 눈빛이 많이 가려져서 진솔함이 전달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미지 메이킹을 잘 한 케이스라고 봅니다. 신뢰감을 주고, 젊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상황에 맞게 키워드 컨셉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한 분이죠. 미소 등을 잘 활용해서 본인이 갖고 있는 장점을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워스트 이미지 메이킹 정치인은 누구일까.
정연아 컨설턴트는 조심스럽게 홍준표 전 대구시장을 꼽았다.
"홍 전 시장은 정치적 내공이 굉장한, 대단한 식견을 가진 분이에요. 그렇다 할지라도 패션이나 몸짓 등 마이너스가 될 만한 이미지적 요소를 가졌다고 봅니다. 시민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도 넥타이를 메고 점퍼를 입고 다니시는 모습을 본 적 있는데, 저는 클래식과 캐주얼을 혼합하는 건 정돈되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안철수 의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똑똑하고 의학 전문 지식도 풍부하면서 정치 경험도 있지만 목소리에 특유의 아성이 있어요. 내면의 단단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목소리로 인해 자신의 성숙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미지 컨설턴트가 보는 2025 대선 후보

정연아 씨는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에 대해 "투사적이고 저돌적인 이미지가 강점"이라며 "많이 웃으면서 인상을 여유롭게 하고 폭넓은 제스처를 취하면 김 후보가 가진 긍정적 이미지가 강조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권하연 컨설턴트는 김 후보의 '눈썹'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눈썹은 사람 얼굴에서 지붕의 역할을 하죠. 김 후보의 굉장한 장점은 힘 있고 일관된 모습인데, 눈썹 컬러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면 얼굴과 눈빛에 대한 집중도를 높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 대해 정연아 컨설턴트는 "정치를 오래한 후보인 만큼 수트나 넥타이 등을 적절히 조절해 가며 이미지 변신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이 후보의 베이지색 니트 차림의 대선 출마 영상에 대해 정 씨는 "의도적인 것"이라며 "언론 등을 통해 노출되어 온 자신의 과거나 말투 등으로 거친 이미지가 박혀 있었는데, 이러한 느낌을 희석하기 위해 친근감을 주는 스타일링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권하연 컨설턴트는 "최근 (이 후보가) 특정 디자인의 운동화를 품절시키기도 했다"며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컬러나 복장으로 잘 활용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 대해 정 씨는 "이번 대선 후보로 나오면서 '젊은 케네디'같은 인상을 주는 스타일링"이라며 "이번에 헤어 스타일을 이전보다 자연스러운 2대8 가르마로 하고 나오면서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다만 비호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인 직설적 화법과 말투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화법을 차차 고쳐 나가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 정 씨는 "이미지 메이킹 자체가 이미지를 가공했다는 의미를 가진다"며 "그만큼 허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유권자들은 그것을 실상으로 느끼기 때문에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권하연 컨설턴트는 이미지 컨설팅이 "아예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작업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인 것처럼 쓸 수는 없겠죠. 이미지 컨설팅은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PI 요소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권자들은 결국 후보자의 행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지, 단순히 이미지적 요소 하나로 그 사람을 판단하진 않을 거거든요."
추가취재: 최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