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후보 토론회, 유권자 선택에 도움 됐을까

21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주요 후보자들의 TV 토론이 마무리됐다.
촉박한 일정 속에 치러지는 조기 대선인 만큼, 토론회는 유권자의 선택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정작 정책 대결보다는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이나 자극적인 발언으로 화제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7년 15대 대선 때 처음 도입된 후보자 TV 토론은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그들이 합리적으로 투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이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로 TV 토론을 3차례 이상 개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18일 경제 분야를 시작으로 23일 사회, 27일 정치 분야 후보자 초청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재명(더불어민주당), 김문수(국민의힘), 이준석(개혁신당), 그리고 권영국(민주노동당) 후보가 참여했다.
각 토론회는 큰 주제 아래 세 개 주제로 구성됐으며, 각자 주어진 시간 6분 30초를 써서 토론에 참여하는 시간 총량제 방식과 주도권을 가진 후보가 상대 후보를 지명해 질문과 답변을 이어가는 주도권 토론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도권 토론의 경우 주도권을 가진 후보에게는 6분 30초가 주어지고 다른 후보들의 답변 시간으로는 최소 30초가 보장됐다.
어떤 내용이 오갔나
첫날 경제 분야 토론회에서는 '저성장 극복과 민생 경제 활성화 방안', '트럼프 시대의 통상 전략', '국가 경쟁력 강화 방안'이 세부 주제로 제시됐다.
권영국 후보는 성장보다는 '불평등 극복'을 강조했고 이준석 후보는 '교육과 생산성 향상을 통한 성장'을, 이재명 후보는 '추경을 통한 경기 회복과 신산업 육성'을, 김문수 후보는 '소상공인 보호와 기업 지원, 그리고 R&D(연구개발)'을 강조했다.
권영국 후보는 윤석열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을 맡았던 김문수 후보에게 "윤석열 씨가 12월 3일 내란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토론의 문을 열면서 김 후보의 후보 자격을 따져 물었다.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에게 비용이나 구체적으로 경쟁력을 어떻게 갖출 것인지에 대해 따져 물었다. 특히 이재명 후보의 '호텔 예약금을 결제했다가 취소해도 돈은 돈다'는 취지의 발언, 이른바 '호텔 경제학'을 문제 삼으면서 토론 후에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외에도 노란봉투법, 반도체특별법,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현안이 언급됐다.
사회 분야를 주제로 한 두 번째 토론에서는 첫 번째 주제인 '사회 통합' 주제가 무색하게 상대 후보의 과거 행적과 정책에 대한 비방이 더욱 강화한 모습을 보였다.
김문수 후보는 시작 발언에서부터 이재명 후보를 저격해 "거짓말을 이렇게 계속하고 총각 사칭, 검사 사칭까지 하면서 어떻게 정말 진짜 대한민국을 말할 수 있나"라며 비방 수위를 높였다. 이준석 후보도 시작 발언에서 이재명 후보의 '호텔 경제학'을 또다시 저격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와 관련해 진행 중인 재판과 혐의, 가족 문제 등이 여러 차례 언급됐다. 이 후보는 김문수 후보에 대해 극우 세력과의 연결고리로 맞받아쳤다.
후보들은 나머지 질문인 '연금·의료 개혁'과 '기후 위기 극복 방안'과 관련해서도 의견차를 드러냈다.
마지막 세 번째 정치 분야 토론은 '정치 양극화 해소 방안', '정치 개혁과 개헌', '외교·안보 정책' 주제로 진행됐다.
이번 토론에서도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와 계엄 및 내란 행위로 인한 민주주의 위기 등이 자주 언급됐다. 이재명 후보는 "(의혹에 대한) 근거가 없다"라는 입장을, 김문수 후보는 "계엄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면서도 형사재판 판결 전에 이를 "내란"으로 규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한편, 이준석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가족 문제를 언급하던 중, 한때 인터넷에서 이재명 후보의 아들이 작성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된 성폭력적인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큰 논란이 일었다.
문제 제기 차원이기 때문에 이준석 후보의 잘못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TV 토론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 원색적인 발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이준석 후보의 발언만으로 심각한 모욕감을 느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유권자들의 한 표는?
그렇다면 이번 TV 토론은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투표 결정을 돕는다는 목적을 잘 달성했을까.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BBC에 이번 토론회에서 지나치게 자극적인 발언들이 많이 나왔고, 상대의 부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네거티브 공방'이 심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특히 이재명 후보를 중심으로 공격이 심해졌다"라며 "(보수 진영에서도) 단일화가 되지 않다 보니까 보수 (후보로서) 더 어필하려다 보니 발언 강도가 세진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후보들) 본인의 지지층에는 어필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출연 후보들을) 지지하지 않거나 지지하는 후보가 없는 중도층 유권자에게는 불편함을 많이 주는 토론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김문수 후보는 준비가 많이 안 된 모습이었고, 이재명 후보는 너무 방어만 하다 보니 토론의 활기를 띠기 어려웠다"라며 "이준석 후보는 도전하는 위치이다보니 일관되게 공격지향적, 적극적으로 했다"라고 후보들을 평가했다.
TV 토론회에서의 네거티브 공방은 과거부터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다. 일각에서는 '무용론'도 제기될 정도였다.
하지만 이 평론가는 "이번 (토론회는) 좀 달랐던 것 같다"라며 "워낙 후보들이 공약 발표도 잘 안 하다 보니까 (유권자들이) TV 토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그 영향력이 조금 높아진 것 같다"라고 봤다.
앞서 서울에서 만난 중년 여성 조지수 씨는 BBC에 TV 토론을 모두 시청한 후 어떤 후보에게 투표할 지 결정하겠다면서도 "후보들끼리 서로 헐뜯고 그러니까 한 국민으로서, 또 나이 먹은 엄마로서 정말 이해가 안 된다"라며 "TV를 보면 화가 난다"고 했다.
20대 중반 남성 박강찬 씨는 "후보들이 '우리는 어떠한 한국의 미래를 보겠다'라는 게 있어야 나는 어떤 좀 투표를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텐데…서로 '너희가 더 잘못했으니까 우리가 심판을 해야 돼'라는 게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상파와 종편을 합친 대선 후보 토론 시청률은 1차 19.6%, 2차 18.4%, 3차 20.5%를 기록했다.
추가 보도: 이래현, 최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