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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들이 코미디쇼로 달려간 이유는?

8시간 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돼 거울치료를 받는 김문수, '싸가지 없냐'는 질문에 당황하는 이준석. 요즘 대선 주자들이 새롭게 주목받는 무대는 여의도 국회도, 유세 현장도 아닌 예능 풍자 코미디다.

두 달도 채 주어지지 않은 21대 조기 대선. 그 촉박한 일정 속에서 대선 후보들은 예능 코미디 무대에 섰다. 때로는 자신의 흑역사를 풍자당하고, 불편한 질문에 웃으며 답해야 한다.

대체 왜, 그들은 웃음을 무기로 선택했을까?

'불편한' 선택하는 이유

대선 후보자들이 출연해 화제가 된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SNL' 코리아가 있다. 앞서 '주기자가 간다'를 통해 20대 유력 대선 주자들을 만났던 SNL은 이번에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지점장이 간다' 코너를 통해 정치인 풍자에 나섰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출연했을 때는 크루 지예은이 "나 지점장인데"를 반복하면서 김 후보가 2011년 경기도지사 시절 소방서 119상황실에 전화해 "나 도지사인데"라며 관등성명을 요구했던 상황을 비틀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시끄러 인마'를 연발하는 크루에 맞닥뜨렸다. 계엄령 당시 이준석에게 담을 넘으라고 했던 보좌관의 일화를 풍자한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번 시즌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20대선 당시 SNL에 출연해 밸런스 게임에 응한 적이 있다. 당시 보기 중 하나로 부패한 시장을 소재로 한 영화 '아수라'가 등장해 아슬아슬한 선을 이어갔다.

지난 주말에는 국민의힘 김문수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여사가 출연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 여사를 패러디한 정이랑에게 "앞으로 법카 사용하지 마세요"라고 충고해 웃음을 자아냈다.

각 후보들은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하고, 젊은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으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택하고 있다. 때로는 정치적 공격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불편한 질문에도 직접 답하면서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훈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후보자 입장에서는 젊은 층의 표심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예능 출연이 굉장히 매력적인 전략일 수밖에 없다"며 "1~2%의 변수가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대선에서는 특히 그렇다"고 설명했다.

SNL이 큰 화제가 되자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먼저 출연하고 싶다는 대선 후보 및 정치인들이 많았지만, 여러번 거절을 표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출연 요청을 했지만 절대 움직이지 않는 후보도 있다.

이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최수진 담당작가는 "섭외 기준은 당연히 그 주에 가장 이슈가 되는 인물, 사람들이 그 시점에 가장 궁금해 할만한 정치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특정 정당의 인물이 연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피하려고 한다. 균형을 맞추는 것이 풍자 콘텐츠의 신뢰 유지에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섭외 기준은 화제의 인물'

작가진은 8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격주로 돌아가며 제작을 한다. 정치풍자를 담당하는 2명의 작가도 있다. 제작진은 20~50대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어 깊이 있는 시사 이슈부터 MZ들의 트렌드를 녹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최 작가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사람들이 실제로 정치인에게 궁금해 하는 질문을 대신 던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질문은 기존 언론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단순한 질문만으로는 관심을 끌기 어려우니까 코미디를 양념처럼 솔솔 치는 거죠. 그게 매운맛이라 가끔은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코미디가 더해져야 관심도 생기고 호기심도 자극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전 대본은 일절 제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일부 정치인이 보좌진을 통해 질문지를 요청한 적이 있지만, 단 한 번도 주어진 적은 없다.

코미디 프로의 실제 촬영 현장은 웃음보다는 긴장감이 압도한다고 SNL 코리아 제작사 씨피엔터테인먼트 대표인 안상휘 책임프로듀서는 말한다.

그는 BBC 코리아에 "현장은 리얼 그 자체"라며, 출연 정치인과 크루 모두 긴장 속에서 녹화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호의적인 질문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크루들도, 정치인들도 긴장하죠. 오히려 시청자들은 그 긴장감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요."

안 대표는 가장 '웃겼던' 정치인은 국힘 경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라고 했다. 홍 전 시장은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와 MZ 크루와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이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분은 약간 흥행 보증 수표 같은 분이죠. 하지만 현장은 되게 긴장된 분위기였어요. 실제로 소리를 지르시니까요."

촬영 도중 크루들이 끝까지 긴장한 채 촬영을 마친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준비되지 않았지만 팽팽한 공기가 오히려 시청자에겐 더 큰 몰입과 화제를 안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출연하는 정치인들이 어느 정도 연습 문제를 짜보고 준비를 하다보니 초창기보다는 당황하는 모습이 줄어들고 있어 제작진들도 질문 방식에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 대표는 "질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도 최소 네 번은 수정한다"며 "한 번에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정말 많이 회의를 거친다"고 했다.

출연자 섭외는 종종 줄다리기다. "상대 후보는 나왔는데 안 나오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같은 멘트가 설득의 기술로 쓰인다. 상대 당 출연 여부를 먼저 확인하려는 캠프의 움직임도 있다.

'현장은 리얼 그 자체'

양당 중심의 정치 지형에서 예민한 이슈를 다루는 데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정치인을 홍보해주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제기된다.

"일단 나오는 것 자체를 저 사람 편들기 위해 나온 거 아니냐고 보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특정 정당만 홍보한다는 의견도 있어요.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는 거죠."

제작진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균형성'이다.

안상휘 PD는 "요즘은 예능을 다큐처럼 본다는 얘기가 많다"며 "얼마나 중립적인지를 시청자들이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출연자 본인이 듣기 싫어할 만한 이야기, 불편한 질문을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치풍자는 포장지'

양극화된 한국 사회에서 정치 코미디를 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MBC 공채 개그맨 출신으로 정치풍자 유튜브 <숏터뷰> 등을 제작하고 SNL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인 안용진 작가는 "한국은 풍자의 선을 잘 타야 하는 나라"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를 패러디하면, 그 대상의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양날의 검인데, 그런 두려움을 안고 연기하는 크루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정치 풍자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관심이 높다보니 그 방식과 깊이에 대한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정치인의 외모나 말투를 따라 하는 데만 집중하거나, 핵심 이슈에 대한 통찰 없이 가볍게 소비되는 1차원적 풍자라는 지적도 있다.

안 작가는 "정치 풍자는 100% 좋은 반응만 얻기 어려운 장르"라며 "하지만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더 나은 아이디어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훈 교수는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 풍자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 풍자는 기존의 딱딱한 정치 담론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하겠지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되는 측면이 있어요."

그는 정치 풍자를 '포장지'에 비유했다.

"처음엔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SNL에서 김문수를 보거나 예전에 동상이몽에 나온 이재명을 보고 궁금해질 수 있어요. 포장지가 예쁘면 안에 든 게 뭔지 알고 싶어지죠. 그 안에 든 내용도 괜찮다면, 그게 시민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억압과 검열 뚫고 진화

한국의 정치 풍자 문화는 오랜 억압과 검열을 뚫고 천천히 진화해왔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풍자적 발언이나 콘텐츠가 검열되거나 처벌을 받았고, 방송인들 사이에서도 "정치는 건드리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다. 1988년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 풍자 허용" 발언은 전환점이 됐고, <유머 1번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 풍자가 가능해졌다.

2000년대엔 <개그콘서트> 등 공개 코미디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 자율 검열과 편향성 논란 속에 점차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최근 들어 예능과 코미디를 통한 정치 풍자가 다시 활발해지고, 특히 최근에는 정치인들이 직접 예능 무대에 올라 스스로를 희화화하거나 비판에 마주하는 장면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재인 미국 아칸소 주립대 사회학과 조교수는 "권위주의 정부일수록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이제 이런 풍자가 가능하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성장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또한 "시민 풍자가 단순히 사람들을 웃기거나 놀리는 것을 넘어, 정치인들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시민이 얼마든지 접근 가능한 우리의 대표자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며 "예전에는 이성적으로 멀게 느껴지던 정치가 이제는 더 감성적이고 대중과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나라들은) 한국처럼 이렇게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탈권위화가 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며 "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된 환경, 청년들의 유쾌한 문화, 그리고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한민족의 해학 정신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여러 정치 예능이나 코미디를 자주 본다는 신혜민(25) 씨는 "어려운 정치·사회 용어를 예능이나 코미디로 접하니 이해하기 쉬웠다"며 "방송을 보면서 정치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7살 김영원 씨 역시 "풍자코미디 특성상 상대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한 발언을 자주하는 것 같은 아쉬움은 있으나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여러 정치적 이슈와 입장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SNL코리아를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정치에 대해 더 솔직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더 많이, 더 자유롭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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