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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남북미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1일 전

2018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6년여 만에 미국의 북미대화 재개 움직임이 언론에 포착됐다. 트럼프 집권 2기에서 드러난 첫 행보인데, 미국 측은 관련 내용을 부인하지 않았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서신 교환에 여전히 열려 있다"며 "그가 첫 임기 때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진전을 보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정 서신교환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답하도록 남겨 두겠다"고 했다.

앞서 이재명 정부는 지난 11일 대북전단 규제에 이어 대북 확성기 방송까지 중단하는 등 선제적 조치에 나섰다. 이는 한반도 긴장완화 및 남북관계 복원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대북전단 규제 및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은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었다.

이는 모두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게다가 친서 관련 언급이 나온 날은 공교롭게도 7년전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회담이 이뤄진 바로 그 날이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까?

한국과 미국 양국이 모두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는 상황이 펼쳐진 가운데 관건은 역시나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가장 큰 관심은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의 가능 여부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유세 당시부터 김정은 위원장과 '막역한 사이'임을 강조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어떤 방향으로든 진전을 보기 위해서는 북한이 움직여야 한다.

한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북러 밀착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의 뜻에 따라 당장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의 국제 정세가 과거 싱가포르-하노이 북미 회담이 개최된 2018~2019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때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

한국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을 지낸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BBC에 "아직까지 북한이 트럼프와 모종의 어떤 협상 또는 새로운 관계 개척에 집중하기보다는 러시아와의 밀착, 더불어 시진핑과의 소통 복원 등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북미 관계가진전될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우 전쟁의 휴전이 임박할 경우 물밑 접촉이 이뤄질 수는 있겠지만, 당장 가시적으로 북미 간 새로운 진척이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북한이 미국의 '친서'를 거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거절을 했든, 받고서 반응을 보이지 않았든, 그것 자체가 어떤 협상에서 레버리지를 갖고 우위를 점령하는 것"이라며 "북한 입장에서 지금은 푸틴과 춤을 춰야 할 때이지, 트럼프와 춤출 때가 아니다. 다시 트럼프와 춤을 추려면 좀 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의 한 북한 전문 매체는 트럼프 정부가 북미 대화채널 복구를 위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려 했지만 뉴욕에서 활동하는 북한 외교관들이 친서 수령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의원(조국혁신당) 역시 "지금의 북한은 과거의 그 북한이 아니라서 쉽게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미국이 노크를 하고는 있지만, 북한이 6년 전 하노이에서 트럼프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으면서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

그는 "그때와 달리 북한은 지금 굉장히 몸집도 커지고 몸값도 올라갔기 때문에 웬만해선 북한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8년 전엔 북한이 굉장히 급했지만 지금 북한은 북러 관계도 그렇고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 급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한미 모두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러우 전쟁에 개입하며 북러 관계를 '혈맹' 수준으로 복원했다. 그리고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의 군사·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면서 사실상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 감시망을 피할 수 있게 됐다.

2025년 6월 4일 북한 평양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안보회의 서기와 만나 웃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Reuters
2025년 6월 4일 북한 평양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안보회의 서기와 만나 웃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남북 관계, 나아질 수 있을까?

남북 관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23년 12월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고 이후 '통일 지우기'에 나서며 남북관계에 더는 미련이 없다는 식의 강경 태도를 취해왔다.

한국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한 이튿날인 12일 북한이 대남 소음방송을 멈추기는 했지만 아직은 남측과의 관계 개선 신호로 해석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확실한 것은 이재명 정부가 '남북관계=평화 외교' 기조로 방향을 잡았다는 점이다. 이미 대북 전단 및 확성기 방송 중단으로 그 첫 단추가 끼워진 셈.

한국의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강인덕 경남대 석좌교수는 "이종석 박사(참여정부 통일부 장관)를 국정원장으로 지명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어떤 제의를 한다고 해서 북쪽이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한국이 9.19합의나 판문점 선언 등 과거 정책을 되살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애쓰겠지만 '두 국가'를 천명한 만큼 북한이 남북을 외교 관계로 인식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핵 문제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면서 "관계가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보다는 이젠 남북이 잘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주변국과의 복잡한 상황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김검 의원(국민의힘)은 "비핵화 진전은 안보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안보 불안 및 주식 저평가 등을 해소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아울러 "북한 비핵화 진전을 위해 남북-미북 대화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며 "미북 간 협상은 반드시 한국의 지지와 동의 아래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이재명 대통령은 매우 영리한 사람"이라며 "본인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어떤 것을 시도했을 때 그것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아는 인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현재의 어떤 구조적 상황 때문에 관계 개선이 어렵다는 것도 다 인지하는 듯한 발언도 많이 했다"며 "그가 자신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만한 행보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점에 대해서는 "남북 문제에 있어서도 그때처럼 저자세로 나가거나 굴욕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첫 총리로 김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을, 국가정보원장에는 이종석 전 장관을 지명했는데 야당인 국민의힘과 일각에서는 "반미 인사를 총리에, 친북 학자를 국정원에 지명한 것을 미국이 문제 삼을 수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5월 2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골든 돔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Reuter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5월 2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골든 돔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미 관계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직후 미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민주주의 국가 개입을 반대한다"는 이례적인 발표를 했다.

또한 미국은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이후 그 어떤 공식 성명이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너무나 조용한데, 아무리 '로우키'를 유지한다고 해도 한미동맹을 고려할 때 낯선 상황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대선 직전에 개최된 폴란드 대선에서 '친트럼프' 성향'의 카롤 나브로츠키의 당선을 축하하며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폴란드에서 트럼프 동맹 승리, 유럽에 충격을 줬다"고 게재했다. 한국 대선에 '침묵'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김현욱 세종연구소장은 "새 정부 출범 이전에 미국 내 일각에서 '이재명 =친중'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이후 이재명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상당히 실용적으로, 또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도 이 정부의 대외정책의 방향성 등을 지켜보는 상황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이어 "미국에게도 한국은 G7에서 G9에 포함시킬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존재이고, 또주한미군도 있고 중요한 동맹 파트너이기 때문에 미국 역시 이재명 정부를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김 소장은 아울러 "정통 한미동맹을 중시해온 외교관 출신의 위성락 의원(더불어민주당/전 러시아 대사)을 안보실장에 임명한 것은 이 대통령이 그만큼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있으며 과거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과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면서 "위성락 안보실장이 한미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역시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위성락 안보실장이 한미관계를 세심하게 조율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때보다는 나을 것으로 본다"며 "외교부 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조현 전 유엔대사 역시 대단한 한미통으로, 이들에게 실질적인 정책 권한이 부여된다면 한미관계에서 크게 우려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한미 양국 모두 서로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만큼 어떤 현실주의적인 틀 안에서 나름 접점을 잘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이제 새 정부가 막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김건 의원은 현 정부를 향해 "이전 정부가 회복시킨 한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미가 긴밀히 소통해 나가야 한다"며 "이재명 정부의 남북미 관계는 문재인 정부 시절과 같이 북한의 선의에만 기댄 성급한 이벤트성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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