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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축함 전복과 재진수가 보여주는 북한 정권의 민낯

7시간 전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실패한 구축함 진수를 정권과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CNA via Reuters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실패한 구축함 진수를 정권과 그 이데올로기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북한의 신형 구축함이 진수 도중 전복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선박이 재인양되고 지난 금요일 재진수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언론에 의해 상세히 보도됐다.

하지만 인명 피해도 없고 선체 손상도 비교적 경미했던 상황에서 왜 이렇게 큰 관심이 집중됐을까?

그 핵심은 단순한 실패 자체보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반응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 실패를 즉각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규정하고 국가의 "존엄"이 훼손됐다고 격노했다. 그는 즉시 전함을 복구하라고 지시했고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을 명령했다. 그 결과 4명의 당 간부가 체포됐다.

이처럼 격렬한 반응과 빠른 복구 조치는 외부에서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북한 정권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

첫째, 이는 북한이 핵무장 해군력 건설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규모와 정교함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지상군 역시 매우 방대하지만 해군 전력은 한국이나 일본, 미국과 같은 적국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다. 이들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해군 대령 출신의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김정은은 핵무기만이 자신의 국가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바다에선 낡은 잠수함과 몇 척의 지원함만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핵무장을 갖춘 현대적인 해군력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왔다.

이번 구축함은 그 목표를 향한 중요한 첫걸음이다. 북한은 지난해 두 척의 구축함을 건조했으며 이 중 첫 번째는 지난 4월 성공적으로 진수됐다. 두 전함은 각각 5000톤 규모로, 북한이 지금까지 만든 것 중 가장 크며 이론상 단거리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위성 사진에는 구축함이 해상으로 전복된 이후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로 보이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Maxar Technologies via Getty Images
위성 사진에는 구축함이 해상으로 전복된 이후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로 보이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최 소장은 구축함급 전함이 건조 및 진수 과정에서 전복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이 정도급의 전함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는 기술적 미숙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이 김정은에게 매우 굴욕적이었을 것"이라며 "북한의 구축함 제조 능력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 프로젝트의 실패가 김정은 본인의 눈앞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딸과 다수의 관중과 함께 구축함 진수식에 참석해 있었다.

최 소장은 "북한은 보여주기에 집착한다. 아마도 당시 대대적인 퍼포먼스를 계획했을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선전 전략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격한 반응이 단순한 분노나 당혹감에 그치지 않는다고 본다.

그가 구축함 전복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개한 것은 의도적인 정치 전략으로, 김정은이 기존의 부정적 사실 은폐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수십 년간 북한 선전을 분석해온 이민영 미국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이 같은 접근이 김정은 선전 전략의 핵심 축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이전 혹은 집권 초기까지도 북한 정권은 부정적인 사건을 은폐함으로써 통제를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정보 유통이 점차 활발해진 현재의 북한 사회에서는 이런 사건을 숨기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 연구원은 "지도부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감추려는 게 오히려 우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오히려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 사실을 공개하고 책임자를 지목하고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지도부가 책임감 있게 일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전함 사건에서도 이러한 전략은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수리는 해군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빠른 3주 만에 완료됐고 구축함은 다시 진수됐다.

서울에 있는 북한대학원대학교 김동엽 교수는 "이번 신속한 재진수는 실패조차 정치적 성공으로 전환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신형 구축함이 전복된 지 불과 3주 만에 김정은은 딸과 함께 재진수식에 참석했다
KCNA via Reuters
북한의 신형 구축함이 전복된 지 불과 3주 만에 김정은은 딸과 함께 재진수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성공 연출로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체제와 이념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는 그의 통치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다.

이 구축함은 부두에서 바다로 측면으로 진수되는 복잡한 해상 기동 중 전복됐고 선수 일부가 진수 경사로에 걸려 버렸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를 기술적 실패로 보기보다는 "절대적인 부주의와 무책임함"이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전함 건조 중 사망한 한 노동자를 "피와 땀을 바친 헌신의 상징"이라고 칭송했다.

김동엽 교수는 "노동자의 죽음을 충성심을 강화하는 상징으로 전환시켰다"고 분석했다.

특히 "김정은이 자신을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완전무결한 신적 존재로 내세우기보다는 충직한 노동자를 영웅화하는 방식으로 체제 충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이는 북한의 통치 기법에서 매우 큰 변화이자 김정은의 놀라운 서사 통제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민영 연구원은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것은 어떻게든 달성한다는 점이 이번 일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핵무장 해군을 갖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이제 그것을 이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아무도 1년 만에 구축함을 만들거나 한 달도 안 돼 이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해냈고 이는 과거 핵·미사일 개발 때처럼 국제 사회의 회의적인 시선을 뚫고 달성한 성과라는 것이다.

최일 소장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사람들은 이번 일을 보고 웃거나 '북한은 한참 뒤처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북한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했다.

그와 다른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김정은 위원장이 기존처럼 자국 해역만 순찰하던 수준의 해군이 아닌,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며 선제 핵타격까지 가능한 해군으로의 탈바꿈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도 경계를 늦추지 말고 이에 맞는 대비가 필요하다"고 최 소장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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