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러시아 총선, 큰 이변 없어도 크렘린궁에는 중요한 이유
러시아의 권력 체제는 흔히 '관리되는 민주주의'로 불린다(크렘린궁이 민주주의를 관리한다는 뜻이다).
이는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며, 정치적 변수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번 주말로 예정된 총선에서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이 주도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가 또다시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비판론자들은 이번 선거가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며 일축한다.
하지만 크렘림궁으로서는 이들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최근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정치 체제와 정치 과정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크렘린궁이 예상하지 못할 변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놀랍지 않다. 그렇다면 살펴볼 내용도 없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크렘린궁으로서는 두마(하원) 의원 450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는 중요하다. 우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러시아에서 치러지는 첫 의회 선거다.
크렘린궁은 이번 선거를 통해 자국민 대다수가 푸틴 대통령과 이 전쟁을 지지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들의 정치적 경력을 쌓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당국에 따르면 거의 200여 명에 달하는 참전 군인이 이번에 출마한다.
선거 운동을 지켜보면서도, 전쟁이 발발한 지 4년 반이 지난 현재의 러시아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앞서 놀라운 일은 없다고 했지만, 몇 가지 뜻밖의 장면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밤 두마 제158선거구 후보자들의 선거 유세 연설을 들어보겠습니다"라는 국영 TV 앵커의 환영 인사와 함께 카메라는 스튜디오를 넓게 비췄고, 텅 빈 연단 6개가 드러났다.
진행자는 "후보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인정하며 "그럼, 저도 그만 인사드리겠다"며 물러났다.
또 다른 TV 토론회에서는(해당 토론회에서는 정치인들이 참석했다) 한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노래하기도 했다.
"공산당, 앞으로 나아가자!
"우리는 국민과 함께합니다, 모르시겠어요?"
선거 방송보다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더 가까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래로 읊는 공약은 아주 엉뚱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두마에서는 모든 의원이 마치 같은 찬송가 악보를 펼쳐놓고 노래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두마 마지막 회의에서는 의장이 "러시아, 푸틴, 승리! 러시아, 푸틴, 승리!"라고 거듭 외치자, 의원들은 나란히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이는 의회 내 모든 의원이 푸틴 대통령과 이 전쟁을 지지해야 한다는 신호와도 같았다.
- '푸틴은 더 이상 우크라전 승리 주장할 수 없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BBC 인터뷰
- 푸틴이 가장 아끼는 기자: 파벨 자루빈은 어떻게 크렘린 선전의 얼굴이 되었나
- 푸틴, '러시아가 돈바스 무력 점령하거나, 우크라 군 철수해야'
이러한 지난 의회의 모습에 대해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공산당 대표는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두마의 모든 정당,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이번 '특별 군사 작전'을 지지하는 170개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두마 내에서는 100% 합의가 이루어져 있죠."
모스크바 외곽의 한 빵 공장에서 선거 유세 중이던 주가노프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똑같이 생긴 빵들을 바라보며 러시아 의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마의 모든 정당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정당은 민족주의 성향이 더 강하고, 주가노프의 정당처럼 좌파로 기운 정당도 있다.
하지만 크렘린궁의 입법안과 이 '특별 군사 작전'을 지지하는 사안에서는 모두 똑같이 투표한다. 이러한 "체계적인" 정당들은 크렘린궁 중심 정치 기계를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 정당은 어떻게 될까.
그중 하나가 바로 '야블로코'당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휴전을 촉구하는 이 정당은 지난 7월 당시 총선에 등록된 러시아 내 유일한 반전 정당이었다.
그러나 12일 후, 대법원은 이 당을 투표용지에서 제외시켰다. 이는 반전 메시지가 러시아 유권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크렘린궁이 우려하고 있다는 신호로 널리 해석된다.
야블로코당 자체는 정당 명단에서 삭제됐으나, 소속 후보 일부는 여전히 개별 선거구에서 출마하고 있다. 다만 최근 몇 주 동안 점점 더 많은 야블로코당 소속 후보들이 경찰에 연행되거나 다양한 혐의로 기소되며 출마가 저지되고 있다.
야블로코당 소속 후보인 그리고리 그리신은 "경찰이 정치적 명령을 받들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당국은 선거가 어떤 범위 안에서 치러져야 하는지 그 선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유혈 사태를 끝내야 한다는 요구가 대중의 큰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 현재 러시아 국민 대다수는 평화를 원하며, 우리 당은 국민들이 이러한 뜻을 표명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당 후보 명단에서 제외됐고, 개별 후보들의 출마가 저지당하고 있습니다."
그리신은 여전히 후보로 남아 선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이 그의 자택을 찾아왔다고 한다.
"사복 차림의 경찰관 3명이 찾아와 경찰서로 동행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죠. 경찰은 제게 극단주의의 상징인 '나발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게시물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제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극단주의를 선전했다고도 했습니다."
알렉세이 나발니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야권 지도자이자 반크렘린궁 인사였으나, 2024년 수감 생활 중 사망했다. 그는 러시아에서 극단주의 등 여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러시아 당국은 자국의 총선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치러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망명을 강요당하거나 결국 투옥된 반대파 정치인들을 가리키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의 유명한 선거 감시 단체인 '골로스'의 지도자 중 한 명인 그리고리 멜코냔츠가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바람직하지 않은 단체"와 협력한 혐의였다. '골로스' 역시 문을 닫아야만 했다.
한편 모스크바에서 50마일(약 80km) 떨어진 드미트로프 지역에서는 총선의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마을 중심가에는 '특별 군사 작전의 영웅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투 중 전사한 지역 주민들이다.
이곳 주민들의 마음속에서는 전쟁이 가장 큰 관심사다.
올가는 "우리는 피부로 체감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의 사위는 '특별 작전'에 참전 중인 군인이다.
"전쟁에 나간 사람들이 있고, 그곳에 아들이나 남편, 자녀, 손주들을 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선거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폴리나라는 여성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드론이 눈앞에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러시아인들에게는 다른 걱정거리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소 드론 공격으로 인해 연료가 부족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
이발사인 이반은 "아무리 돈을 벌어도 모자란다는 점이 걱정된다"며 "물가가 임금보다 더 빨리 오르고 있다. 나는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다들 쪼들린다고 한다"고 했다.
이번 선거가 큰 변화로 이어지리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
그리신 후보는 "서방 세계의 선거와 러시아의 선거는 완전히 다르다"고 표현했다.
"서방 세계의 선거는 정부를 구성하는 수단이며, 유권자들이 만족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부가 교체되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선거는 결코 정부 교체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정부에 영향을 미치거나 신호를 보내는 수단일 뿐이죠. 러시아의 권력은 선거 때문에 바뀐 적이 없습니다. 러시아는 원래 이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