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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새롭게 등장한 '전세'?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집을 구할까

1시간 전
분홍색 한복을 입은 여성이 '살림집이용허가증'을 들고 눈을 만지고 있다. 양 옆에는 성인 세명과 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AFP via Getty Images

북한 황해북도 사리원의 한 아파트. 집값은 2만달러(약 2750만원)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은 집주인에게 1만달러(약 1375만원)를 지급하고 거주한다. 매달 내는 집세는 없다. 집주인이 돈을 돌려주면 집을 비워주는 조건이다.

탈북자동지회 서재평 회장이 BBC에 전한 최근 황해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거 방식이다. 목돈을 맡기고 월세 없이 거주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세 제도와 닮았다.

2023년 북한을 떠난 탈북민 김일혁 씨도 황해도에서 전세와 유사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대부동거'라고 부른다고 BBC에 전했다.

"요새 대부동거가 많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탈북을 2023년에 했을 당시에 대부동거라는 게 시작하는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퍼졌다고 합니다."

김 씨와 서 회장은 이런 형태의 거래가 2020년대 들어 나타났다고 전했다. 김 씨는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을 통해 자신이 떠날 무렵보다 전세 형태의 거래가 더 활발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증언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의 독특한 주거 문화인 '전세'와 비슷한 부동산 거래 형태가 북한에도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국가가 주민에게 집을 배정하고, 국가 소유 주택의 개인 간 거래를 금지하는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집을 거래하고 있고, 이러한 거래는 북한 사회의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암암리에 이뤄지는 주택 거래

다층집의 주거 건물 아래로 상점이 들어서 있고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Getty Images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내 집 거래에는 입사증 발급 권한을 가진 간부와 전문 부동산 중개인 등이 관여한다

북한에서는 국가나 직장 등에서 주민에게 살림집을 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주민들은 '입사증'이라는 이용 허가증을 받고, 정해진 사용료를 내며 거주한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은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로 "의식주 등 생필품은 일정한 원칙에 따라 분배"되며 "북한 주택의 소유권은 당국"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난 이후 국가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서 주민들이 직접 살 곳을 구하는 비공식 주택시장이 발달했다.

국가 소유 주택의 개인 간 매매는 금지돼 있지만, 실제로는 집을 이용할 권리를 돈을 주고 사고판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런 거래에는 입사증 발급 권한을 가진 간부와 전문 부동산 중개인 등이 관여한다.

통일부의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따르면 주택 매매 경험을 묻는 문항에 탈북민 응답자의 19.8%가 집을 팔거나 사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공식적인 금지에도 주택 거래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을 살 돈이 부족한 사람은 부모와 함께 살거나 남의 집에 세를 들기도 한다. BBC가 취재한 탈북민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남의 집을 빌려 사는 여러 형태를 '동거'라고 부른다.

집주인과 한집에 살면서 방 하나를 빌리기도 하고, 같은 집 안에서도 출입구를 따로 두거나 위아래 층으로 나눠 살기도 한다. 집주인은 다른 곳에 살고 세입자가 집 전체를 쓰면서 매달 집세를 내는 '월세' 방식도 북한의 '동거'에 포함된다.

탈북민들은 이러한 비공식 거래는 단속 대상이지만, 암암리에 이어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대부동거, 세입자가 '갑'인 북한판 전세?

매매와 전세, 월세 안내문이 붙은 부동산 앞을 한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한국의 독특한 전세 문화와 닮은 방식이 북한에서 나타난 배경에 한국의 영향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 씨의 증언에 따르면 대부동거는 급하게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과 살 곳을 찾는 사람 사이에서 이뤄진다.

집주인은 집값의 절반에서 70%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받고 집 전체를 빌려준다. 받은 돈은 장사 밑천으로 쓰거나 빚을 갚는데 사용한다고 전했다. 이후 전액을 돌려주면 집을 되찾는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도 있다. 한국은 전세 매물보다 이를 찾는 사람이 더 많은 반면, 북한에서는 전세를 원하는 '세입자'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김 씨는 한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집주인이 급전을 구하기 위해 거래에 나서며 세입자가 협상에서 우위를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팔리지 않자,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집값보다 적은 돈을 받고 집을 빌려주는 대부동거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100% 다 똑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북한에서는 전세를 들어가는 사람이 '갑'인 조건 같아요. 집을 팔겠다는 사람은 너무 많은데 잘 팔리지 않으니, 시중에 나온 가격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설정을 해서 그 가격만 받고 집을 빌려주는 형태더라고요."

또 다른 점은 거주 기간을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해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가는 구조가 아닌, 집주인이 돈을 모두 돌려주면 집을 비워주는 방식이다. 돈을 돌려받기 전까지 계속 거주하기 때문에 기간은 1년이 될 수도, 2~3년 이상으로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서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의 전세 형태는 보증금을 '담보'로 잡고 집에서 사는 방식이다.

"담보로 집값의 절반 정도 계산하고 집에 들어가 사는 거예요. 월세는 다달이 못 낼 수도 있지만, (전세는) 안정적이잖아요. (돈을 빌려준 사람도) 이 집을 현재 쓰고 있고, 그 집이 2만달러의 가치를 가지니까 주인이 사고를 낸다 해도 현재 이 집의 50% 지분을 담보로 해서 집을 쓰고 있으니 여차하면 이 집을 가질 수 있는 거죠."

BBC가 확보한 대부동거 관련 증언은 황해도 지역에 국한된다. 이런 거래 방식이 북한 전역에서 확산했는지는 독자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

이주영 한국은행 경제안보연구실 연구위원은 북한의 '대부동거'의 경제적 원리는 한국의 전세와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거래와 똑같죠. 집을 빌리면서 돈을 빌려주는 거죠. 돈을 빌려주는 것에서 나오는 이자 상당액만큼을 월세로 낸다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목돈을 빌려주는 대신 이자를 받지 않고, 집주인은 그 돈을 사용하는 대신 월세를 받지 않는다. 세입자가 받을 이자와 낼 월세를 서로 상쇄하는 구조다.

북한에서는 개인이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렵고, 개인 간 금전 거래에서도 담보를 확보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에 집을 활용하면 자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 사이에 거래가 성립할 수 있다.

북한 당국도 허락하는 '살림집 교환'

흰색 단층 건물 앞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여 있고, 주변에는 밭과 꽃이 보인다
Getty Images
탈북민 김일혁 씨는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으로 결혼을 꺼리는 청년들이 북한에서 늘고 있다고 전했다

대부동거와 달리 집을 맞바꾸는 거래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탈북민 이해연(가명) 씨는 집을 바꾸는 것은 북한에서 흔한 거래 방식이었다고 BBC에 전했다. 큰집이 필요한 사람이 돈을 더 얹어주고 집을 맞바꾸는 방식이다.

이 씨는 "북한에서 개인이 집을 사고파는 것은 금지됐지만, 큰집 혹은 작은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니 집을 바꾸는 건 허용했다"고 말했다.

집 교환은 북한 법에도 규정돼 있다. 북한 살림집법 제35조는 "필요에 따라 살림집을 교환하려 할 경우 인민위원회 또는 해당 기관에 신청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해당 기관은 교환 조건을 검토해 승인하고, 이용허가증을 다시 발급하도록 돼 있다.

다만 교환이 허용된다고 해서 모든 거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살림집법 제43조에는 '이기적목적 혹은 기타 부당한 목적으로 살림집을 교환하는 행위'와 '국가소유살림집을 팔고사거나 비법적으로 다른 공민에게 빌려주거나 거간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서 회장도 교환이 1990년대부터 이뤄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작은집에 여러 식구가 사는 가구와 큰집에 혼자 사는 사람이 집을 바꾸면서 큰집으로 옮기는 쪽이 돈을 더 내면, 상대방은 작은집과 현금을 얻는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사람과 현금이 필요한 사람의 수요가 맞아떨어지는 방식이다.

북한 부동산 거래 확산이 의미하는 것

기와지붕을 얹은 주거 건물과 가로수 사이로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Getty Images
정은이 실장은 직주근접도 집 교환의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집을 배정하는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북한 주민들은 집을 맞바꾸고, 이용권을 거래하고, 집을 활용해 목돈을 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오랫동안 이어진 북한의 시장화가 주거와 금융으로 확산하는 현상이라 해석한다.

이 연구위원은 대부동거가 사업 자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주택을 활용해 목돈을 빌릴 기회를,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에게는 돈을 빌려줄 새로운 대상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의 시장경제가 금융의 도움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했으며, 그만큼 시장경제가 심화발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주택 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집을 사고팔고, 새로 짓는 거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며 대부동거 역시 이런 주택시장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 과거 북한은 "소유의 개념이 희박했지만, 집이 거래되며 재산에 대한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집이 재산으로 인식되며 "집을 담보로 장사도 하고, 금융 자산도 불리고, 전세 대출과 같은 하나의 금융 역할"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월세, 전세, 이용권 거래, 더 좋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차액을 지급하는 모습 등은 시장경제에서 이뤄지는 주택 거래와 닮아 있다. 이 연구위원은 그 배경으로 국가가 충족하지 못하는 주민들의 수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사회주의가 잘 돌아갈 때는 다 해결을 해줬겠지만, 잘 돌아가지 못하다 보니 개인들이 (거주 등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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