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씨 3대' 외교 원로...김영남 전 국가수반 97세로 사망
                      김일성부터 김정은까지. '북한 3대'를 모두 거치며 가장 오랜 기간 권력 핵심에 있었던 인물로 평가받는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사망했다.
4일 북한 매체인 노동신문·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김영남이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날 새벽 1시 주요 간부들과 함께 김영남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을 찾아 조문했으며,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실권자는 김 씨 일가이지만, 김영남 전 위원장은 헌법상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대외적으로 북한의 '얼굴' 역할을 하는 셈이다.
북한 매체에 따르면 '항일애국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영남은 1952년 모스크바 유학에서 돌아와 중앙당학교(김일성고급당학교) 교수직을 거쳐 정계 진출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노동당 국제부와 외무성 등에서 일했으며 1983년부터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을, 1998년부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김일성부터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김 씨 3대'에 걸쳐 고위직에 있었던 보기 드문 인물이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있었던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은 김영남의 아들과 중학교 동창으로, 김 전 위원장과 일적으로도 만난 적 있다.
태 전 의원은 BBC에 김영남이 "특이한 사람"이자 "북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롤모델"이라면서 그를 청렴결백하면서도 절대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영남이) 해외에 외교부장으로 많이 나갔어요. 추운 나라 가면 현지 관계자들이 스웨터나 코트 같은 걸 사주는데, 반드시 호텔방에 벗어놓고 떠납니다. 대사관 사람들이 어차피 버릴 것이니 제발 가져가라고 사정해도요."
또 그가 술도 마시지 않고 파티도 가지 않았다며 "사람들은 그를 '냉혈동물'이나 '원칙주의자'라고 불렀다. 친한 사람도, 적도 없었다"라고 했다.
                다만 태 전 의원은 김영남이 '김 씨 일가'에 이어 최고 서열에 있긴 했지만, 인사권이나 금전권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실제 권력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영남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했는데, 당시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훨씬 낮은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에게 상석을 양보하는 모습이 주목받기도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영남이 "무색무취의 인물로 알려졌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서 한 번도 밀려나지 않고 지금까지 버틴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희미한 권력이 그의 정치 생명을 무한히 연장했다는 평가다.
"김일성부터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김씨 일가의) 눈에 안 들어서 숙청당하거나 복권 당하는 권력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김영남은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습니다. '백두혈통'을 제외하고는 권력의 핵심부에 가장 오래 남아있었던 인물이죠."
한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북측 관계자 여러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라며 조의문을 공개했다.
장관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하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바 있다"라며 "2005년 6월과 2018년 9월 평양에서 김영남 전 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를 위해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