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적법했나… 미 연방대법원에 전 세계 이목 집중
도널드 트럼프의 무역 전쟁이 지금껏 가장 큰 고비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오는 5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 대법원에 출석하여 자국 중소기업 및 여러 주 정부와 맞붙을 예정이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관세 대부분이 불법이며, 철회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연방 대법원이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4월 처음 발표한 대대적인 글로벌 관세 등 그의 무역 전략은 근본적으로 뒤집히게 된다. 아울러 미국 정부는 그동안 거둔 관세 수입 수십억달러 중 일부를 환불해야 할 수도 있다.
연방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논쟁과 검토 끝에 수개월 뒤 내려질 예정이며, 표결로 결론이 확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추진해 온 관세 정책의 적법성을 둘러싼 이번 싸움을 마치 한 편의 서사시처럼 묘사하고 있다. 패소할 경우 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자신의 손이 묶일 것이며, 국가 안보는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가고 싶지만 … 이 결정의 중요성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다"면서 5일로 예정된 첫 심리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건 나에 관한 게 아니라 우리 나라에 관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소송에서 승리하지 못할 경우 미국은 "나약해질" 것이며, 앞으로 몇 년간 "재정적 혼란"에 빠질 것이라 말한 바 있다.
한편 빠르게 바뀌는 정책에 휘둘리며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미국 안팎의 많은 기업들에도 많은 것이 걸려 있다.
해외 생산 완구를 주로 판매하는 미국 기업 '러닝 리소시스'는 정부를 상대로 이번 소송을 제기한 기업 중 하나로, 트럼프의 관세로 인해 올해 1400만 달러(약 200억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릭 월덴버그 CEO에 따르면 이는 2024년 납부한 관세의 7배에 달하는 규모다.
월덴버그 CEO는 "관세로 인해 우리 업체는 믿기 힘들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며 1월 이후 품목 수백 가지의 생산지를 옮겨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기업 대부분이 대법원에서 승소를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조지아주 소재 '협동조합 커피스'의 공동창립자 빌 해리스는 "관세 조치가 불법으로 판결되길 바라지만, 동시에 굳어질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여 개국에서 커피를 수입하는 해당 협동조합은 올해 4월 이후 이미 관세로 약 130만달러를 납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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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시험
이번 사건의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연방대법원은 더 광범위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과연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법률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대법관의 답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향후 미국 대통령들에게는 더 큰 권한이 주어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번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한 관세를 다루고 있다. 백악관은 신속성과 유연성을 이유로 이 법을 적극 활용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을 근거로 내세우며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그 덕에 즉각적인 명령을 내리는 한편 장기적인 기존 절차를 건너뛸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을 처음으로 발동한 건 올해 2월 중국, 멕시코, 캐나다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함이었다. 이들 국가에서 유입되는 마약 밀매 실태가 비상사태 요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올해 4월 같은 법을 적용하여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 대한 10~5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번에는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미국의 무역 적자가 "비정상적이고 이례적인 위협"을 야기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미국이 각국과 "합의" 체결을 밀어붙이는 동안 이러한 관세는 올여름 유예와 재부과를 반복하며 시행되었다.
반대 측에서는 해당 법이 대통령에게 무역을 규제할 권한만을 부여할 뿐 '관세'라는 단어는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미국 헌법에 따라 관세, 조세를 부과할 권한은 오직 의회에만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무역적자 등 백악관이 문제라며 언급한 사안들이 과연 비상사태 요건에 해당하는지도 의문을 제기한다.
여야 의원들 역시 헌법에 따라 관세와 조세를 정하고 부과할 권한은 의회에 있다고 주장한다.
연방 상·하원 민주당 의원 200여 명과 공화당 의원 1명(알래스카주의 리사 머카우스키)이 연방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는 IEEPA 법은 대통령에게 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압박 수단으로 관세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지난주 상원은 상징적인 초당적 조치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를 거부하기 위한 결의안 3가지를 통과시켰는데, 여기에는 그가 선포한 국가 비상사태를 종결하자는 결의안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러한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이러한 반대 목소리가 대법관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런 식의 에너지 소모도 처음입니다'
지금껏 미국 전역의 하급법원 3곳이 관세 문제와 관련하여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한 판결을 내렸다.
오는 5일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시작될 예정인 가운데 최종 판결은 내년 6월까지 미루어질 수 있으나, 대부분 내년 1월까지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이미 미국 정부가 거둔 수입관세 약 900억달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 금융 기업 '웰스 파고'에 따르면 이는 올해 9월까지 미국이 징수한 전체 관세 수입의 약 절반에 해당한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법원이 6월까지 판결을 미룰 경우 해당 금액이 1조달러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협동조합 커피스'의 창립자인 해리스는 만약 연방 대법원이 정부가 환불해주어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자신의 기업은 지불한 금액을 회수하고자 "무조건" 노력할 것이라면서도, 이 모든 혼란은 절대 보상해주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 커피스'는 추가 신용 한도를 확보하고, 가격을 인상하고, 낮아진 수익률로도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만했다.
'협동조합 커피스'를 공동 소유한 2개 로스터리 중 하나인 '카페 캄페시노'의 CFO이기도 한 해리스는 "이런 식의 에너지 소모도 처음"이라면서 "어디 가든 관세 이야기뿐이다. 골치가 아파 내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예상되는 상황은?
백악관은 패소할 경우 대통령에게 150일간 최대 1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 등 다른 수단을 총동원하여 관세 부과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다국적 로펌 '시들리 오스틴'의 무역 전문 변호사인 테드 머피는 백악관이 다른 수단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공식 통지 등 절차를 밟아야 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기에 기업들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이번 사안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면서 "현 대통령은 아무런 사전 통보나 실질적 절차 없이 일요일에 관세를 통보하여 수요일부터 시행하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머피 변호사는 "기업들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의 핵심은 앞으로도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가 계속될지 여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재 대법원의 판결 방향에 대해서는 뚜렷한 신호가 없다.
최근 몇 년간 연방 대법원은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대출 탕감 같은 주요 정책들을 백악관의 권한 남용이라며 저지해 온 바 있다.
하지만 현재 대법관 총 9명 중 6명이 공화당에 의해 임명된 이들로, 그중 3명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판사들이다. 이들은 최근 다른 쟁점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여왔다. 아울러 대법원은 역사적으로 국가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백악관의 재량을 인정해왔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무역 변호사로 활동한 바 있는 '와일리 법률사무소'의 그레타 파이쉬는 "대법원이 어떤 방향의 판결을 내리든, 이를 뒷받침할 논거는 충분히 존재한다고 본다"고 했다.
'미국기업연구소'의 애덤 화이트 선임연구원은 대법원이 관세 폐지를 지시하되, 비상사태의 구성 요건과 같은 문제는 다루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한편 이미 이번 소송으로 올해 7월 유럽연합(EU)과 체결한 협정 등 백악관의 무역 협정은 복잡해지고 있다.
EU와의 협상은 유럽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15%로 정하는 대신 EU가 더 많은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현재 EU 의회에서 이 협정의 비준을 검토 중이다.
EU 집행위원회의 국제무역 담당자 출신인 존 클라크는 "EU 의회는 (미국)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이 사안에 대해 행동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39%에 달하는 미국의 관세로 인해 경제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스위스에서 초콜릿 제조사를 운영하는 다니엘 블로슈는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회사 '쇼콜라 카밀 블로슈'는 수십 년간 미국으로 수출해온 코셔(유대인 율법에 따른 음식) 초콜릿에 부과된 관세 비용의 약 3분의 1을 직접 떠안으면서까지 해당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판매량을 유지하고자 애쓰고 있다.
블로슈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로 해당 품목의 수익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며, 사업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전면 재고하길 바란다면서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대법원이 관세 폐지를 말한다면 당연히 이는 우리에게 긍정적인 신호일 것"이라며 그러나 그렇다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