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각국 전문가들이 보는 이재명표 외교는?

이재명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캐나다에서 취임 후 첫 정상외교 일정을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호주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과 양자 회담을 갖고 교역·투자·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하자는 뜻을 밝혔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는 "한반도 평화·북핵 문제 진전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자는 의견을 나눴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앞서 이 대통령의 G7 참석을 계기로 한미, 한일,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급히 귀국하면서 불발됐다. 다만 한일 정상회담은 한국 시간으로 18일 오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외교와 관련해서는 공약이나 발언을 아껴온 만큼, 이번 G7 일정을 통해 새 정부의 외교 기조가 좀 더 뚜렷하게 드러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외교보다는 내정
현재 내각 인선도 완전히 꾸려지지 않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정책 방향을 속단하기 어렵지만, 새 정부가 외교보다는 국내 정치에 집중할 것이라는 게 여러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이 대통령도 실제로 이러한 입장을 여러 번 밝힌 적 있다. 취임선서 이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도 외교와 안보, 민주주의 등 여러 영역에 걸친 위기를 언급하면서도 "민생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래틱 카운슬'의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는 히나타-야마구치 료 도쿄국제대 국제전략연구소 부교수는 BBC에 "무엇보다 알아야 할 점은 이재명 정부의 가장 중요한 아젠다가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라는 것"이라며 "적어도 당분간은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이재명 정부는 한국 내 정치적 위기로 탄생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볼 수 있죠. 이 대통령이 국내 정치 및 경제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정부의 운명이 달린 겁니다."
'실용 외교'
이재명 대통령이 일관되게 강조해 온 '실용 외교'도 외교 자체를 목적으로 두기 보다는 국익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실용 외교를 어떤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과 큰 틀에서는 비슷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적인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북한하고는 다시 교류할 거고…중국의 경우 어떻게 보면 윤석열 정부가 너무 한쪽(미국쪽) 극단으로 갔기 때문에 그걸 다시 움직이는 것들이 꽤 나오겠죠. 미국하고는 한미 동맹 여전히 중요하다고 할 거고, 한일 관계도 일본이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도 (태도를) 다시 할 수 있지만 (이 정부가) 일본과도 친선 관계, 협력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미국 외교 전문가인 메이슨 리치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몇 년간 대내외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리치 교수는 "상당수 한국인이 중국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라며 "중국도 서해(황해) 구조물 설치 등의 행위로 한중 관계 개선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 "트럼프의 관세 정책도 명시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미군 주둔 문제와 얽혀 있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편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과 교수는 "이재명 표 외교 노선은 균형의 개념이 아니고, 사안별로 접근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내다봤다. 소위 말하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에서 벗어나 협력국의 범위를 넓히고 영역별로 더 유연하게 대처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외교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굉장히 어렵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외교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저는 노무현 정부 때 동북아 균형자론이라든가, 문재인 정부 때 전략적 모호성과 같은 애매한 균형 정책을 가지고는 미국과 중국을 둘 다 설득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한미일 관계
히나타-야마구치 교수는 오히려 이재명 정부의 외교 방향을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는 대신 "윤석열 정부보다 덜 공격적인 버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한미, 한일, 한미일 관계를 강조했던 윤 정부의 연속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과 미국, 일본 간의 외교 관계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해왔다. 취임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두 번째로 통화하면서 한일 관계를 중시한다는 신호를 간접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주한일본대사관이 서울에서 개최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기념 행사에도 "격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 양국은 함께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파트너"라며 "그간의 성과와 발전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한일관계에 안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발전이 이뤄지길 소망한다"는 내용이 담긴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전문가들은 한미일 관계에서 미국이 사실상 중재자 역할에서 빠진 상태인 데다가,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이재명 정부에서도 한일 협력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히나타-야마구치 교수는 한국과 일본이 "지난 2~3년 동안 안보와 외교 등 다른 여러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해왔다"라며 "(양쪽 다) 이런 상황을 굳이 뒤엎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남북 관계의 향방은
한국이 현실적으로 미국이나 중국 등을 상대로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북한을 협상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원장은 "(한국의) 대미·대중 관계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일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가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는 건 결국 남북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정부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같은 (북한과의) 일이 다시 일어날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며 "만약 '시즌 2'가 시작된다면 과연 종전협정과 평화협정 쪽으로 (외교 흐름이) 갈지가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하면서 남북 관계를 당장 외교적으로 풀어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
리치 교수는 "이 대통령이 (남북 문제에 있어서) 과거 문 대통령과 비슷한 여력이나 기회를 얻긴 힘들다고 생각한다"라며 "김정은은 그들이 설정한 대남 적대 정책에 익숙해져 있고, 딱히 입장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북한은 여전히 (한국 대외 정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 대통령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외부에서 볼 때 북한과 양자 관계를 형성하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을 가지진 않을 겁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북한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