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입장 변화 … 공화당 의원들에 '엡스타인 문서 전면 공개' 표결 찬성해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에게 미성년자 성 착취로 유죄판결을 받은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 문건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지난 16일 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숨길 것이 없기에" 공화당에서도 이에 찬성해야 한다고 적었다.
과거 해당 사건 문서 공개를 반대한 바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최근 민주당 하원의원들의 잇따른 관련 문건 공개와 맞물린다. 일부 문건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엡스타인의 성범죄 및 인신매매 범죄와 자신은 관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유명인들과 엡스타인 간 과거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면서 각종 추측이 이어졌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였던 하원의원과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 당의 입장과는 달리 미 정부가 보유한 모든 엡스타인 관련 문서 및 수사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을 시사한 공화당 의원들은 잠재적으로 수십 명에 달한다.
해당 법안은 필요한 찬성표를 확보하여 이번 주 하원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나, 상원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엡스타인은 지난 2019년 뉴욕 교도소 독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금융인 출신인 그는 성매매 알선 혐의로 구금 중이었으며, 2008년에는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 문건에 대한 관심을 민주당이 공화당의 업적에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이는 "사기극"이라는 백악관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 소셜'에 "이미 법무부는 '엡스타인'과 관련하여 수만 장에 달하는 문서를 대중에 공개했으며, 여러 민주당 인사들(빌 클린턴, 리드 호프만, 래리 서머스 등)과 엡스타인 간 관계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하원 감독위원회는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적었다.
이어 여당 의원들이 "해야 할 일에 다시 집중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서 공개 찬성에 표를 던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및 인신매매와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로 관련 문서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며 일축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사교 모임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 있긴 하나, 2008년 그가 유죄 판결을 받기 전 연락을 끊었으며, 그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 같은 태도 변화는 며칠 전 미 하원 감독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엡스타인과 그의 오랜 조력자인 길레인 맥스웰이 주고받은 이메일 교환 기록 3건을 공개한 것과 맞물린다. 맥스웰은 현재 성매매 알선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해당 이메일 중 일부는 트럼프를 언급한다. 2011년 발송된 한 이메일에서 엡스타인은 맥스웰에게 "알아두어야 하는 게, 아직 짖지 않은 그 개가 트럼프다.. [피해자]가 내 집에서 그와 함께 몇 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백악관 측은 지난 12일 이 이메일 속 피해자가 엡스타인에 대한 주요 고발자였던 버지니아 주프레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공개된 이메일에는 트럼프가 어떤 불법행위를 했다고 시사하는 부분은 없다.
이러한 이메일이 공개된 지 몇 시간 뒤, 하원 공화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을 중상모략하기 위한 허위 내러티브를 꾸며내고자" 이 문서를 "유리하게 선별적으로 공개"하려 한다며 2만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문서를 공개했다.
모든 문서를 전면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이번 법안에 대해 민주당과 일부 공화당 의원 모두 지지하는 가운데 해당 법안 공동 발의자인 공화당 소속 토머스 매시 의원은 지난 16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 측에서도 의원 최대 100명이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안'이라는 이름의 해당 법안은 법무부가 엡스타인 관련 모든 비기밀 기록, 문서, 통신 내용, 수사 자료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이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문건이 공개되게 된다.
한편 엡스타인 관련 범죄 생존자들과 주프레의 유가족은 의회에 서한을 보내 의원들에게 해당 법안에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촉구했다.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는 유권자임을 잊지 말아달라. 여러분의 자녀, 자매, 어머니, 이모의 눈을 바라보라"는 내용이다.
"여러분의 가족이 피해자라고 생각해보세요. 또 여러분 자신이 생존자라고 상상해보세요. 그들은 무엇을 바랄까요? 여러분이라면 무엇을 원할까요? (이 법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될 때 우리는 여러분의 판단을 기억할 것입니다."
한편 엡스타인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로 인해 그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 중 하나였던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그린 의원은 "괴짜"이자 "배신자"라면서 내년 선거에서 그가 낙선하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에 맞서 그린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것인 것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그가 다른 공화당 의원들이 해당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못하도록 자신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법무부는 엡스타인과 클린턴 전 대통령과 같은 여러 민주당 유명인사들, 주요 은행 등과의 연관성 의혹을 수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엡스타인의 범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며 강력히 부인해왔다.
최근 공개된 문서에는 '링크드인'의 창립자이자 민주당의 주요 지지자인 리드 호프먼과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래드 서머스의 이름이 등장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엡스타인의 유죄 판결 이후에도 그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 바 있으며, 호프먼는 엡스타인과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위한 모금 활동으로만 잠시 알고 지낸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