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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전문가, BBC 인터뷰서 미 해병 2명 이라크전 '하디타 사건'에 연루

4시간 전
검은 베일로 눈을 제외한 얼굴 대부분을 가린 젊은 여성
BBC
사파 유네스(33)는 이라크 하디타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에서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사파 유네스는 "이 방에서 우리 가족이 몰살당했다"며 말을 꺼냈다.

사파가 자란 이라크 하디타의 집 현관문 곳곳에는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집 안쪽 침실에는 가족들이 총에 맞은 자리를 덮은 화려한 침대보가 눈에 띈다.

미국 해병대원들이 집을 습격하여 총격을 가했던 2005년 11월 19일, 어린 사파는 5명의 형제자매와 어머니, 여성 친척과 함께 이 방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사파를 제외한 모두가 목숨을 잃었고, 아버지는 현관문을 열던 중 총에 맞아 숨졌다.

20년이 지난 현재, BBC Eye는 아직 재판에 회부된 적 없는 미 해병 2명이 사파 가족 살해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발견했다.

주로 사건 직후 작성된 진술서와 증언으로 구성된 증거들로, 그날의 사건에 대한 미국 측 조사 및 미군의 책임을 규명하는 방식에 대한 중대한 의문을 던진다.

사파 가족에게 벌어진 이 일은 미 해병이 여성 4명과 어린이 6명을 포함해 이라크 민간인 24명을 살해한 '하디타 학살'로 알려진 사건의 일부로, 미 해병은 집 총 세 채에 진입하여 내부에 있던 사람 대부분을 살해하였다. 이 중에는 차를 타고 대학교로 향하던 학생 4명과 운전사도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이라크전 관련 최장기 미군 전쟁범죄 조사가 시작되었으나,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현재까지도 아무도 없다.

평평한 지붕과 아치형 창문이 있는 베이지색의 건물
BBC
지난 2005년 사파의 가족이 살해당한 하디타 소재 집

사건 당시 해병들은 자신들은 도로변의 폭탄이 터져 분대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한 뒤 총격에 대응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13세였던 사파는 BBC 월드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집 안에는 무기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3살이었던 막내를 포함한 형제자매의 시신 사이에서 간신히 죽은 척을 하여 살아남았던 그는 "나는 우리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라고 토로했다.

한편 사건 초기에는 해병 2명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사건에 대한 진술이 엇갈렸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미 군사 검찰은 그중 3명에 대한 기소를 취소하는 한편 추가 법적 조치에 대한 면책권도 부여했다.

이로 인해 당시 분대장이었던 프랭크 우테리치 하사만이 지난 2012년 재판받게 되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총을 들고 있는 위장복 차림의 남자와 왼쪽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위장복 차림의 남성 . 뒤에는 5명이 지켜보고 있다
Michael Epstein
이전에 방송되지 않은 영상 속 한 장면. 움베르토 멘도자(무릎 꿇은 남성)가 당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이전에 방송된 바 없는 당시 재판 전 심리 영상 기록 영상에서, 당시 분대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움베르토 멘도자 일병은 사파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재연해 보였다.

멘도자 일병은 대원들이 현관문을 연 사파의 부친을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현재까지 한 번도 기소된 바 없다.

"그의 손을 보았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멘도자는 "그렇다"고 답하며 사파의 부친은 무장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증언했고, 이어 "그런데도 그 남성을 쏘았던 거냐"는 질문에는 "그렇다"고 답했다.

공식 진술 당시만 해도 멘도자는 집 안으로 들어간 뒤 사파와 가족들이 있던 침실 문을 열었으나, 안에 여성과 아이들만 있는 모습에 더 이상 진입하지 않고 방문을 닫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우테리치 하사에 대한 재판과 관련하여 이번에 새로 발견된 음성 녹음 속 멘도자의 진술 내용은 달랐다. 문을 바로 닫은 게 아니라 침실 안으로 약 2.4m 정도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이다.

법의학 전문가 마이클 말로니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06년 해군범죄수사대(NCIS)는 수사의 일환으로 사파 가족이 총에 맞은 침실을 직접 방문해 조사한 바 있다.

손으로 방 한편을 가리키는 사파
BBC
사파가 가족이 살해당한 침실에서 자신이 죽은 척하며 누워 있던 위치를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사건 당시 해병대가 촬영한 당시 현장 사진을 바탕으로 말로니는 해병 2명이 이 방에 들어가 여성과 아이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취재진이 말로니에게 방에 들어갔다는 멘도자의 녹음을 들려주자 그는 "놀라운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이어 이 녹음을 통해 자신이 첫번째 사격자의 위치로 추정한 곳, 바로 침대 발치에 있던 인물이 멘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이 (녹음이) '일종의 자백이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멘도자는 방아쇠를 당긴 것 외에는 모든 것을 자백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편 사파는 지난 2006년 군검찰에 영상 증언을 제출했으나, 이는 단 한 번도 재판에서 공개되지 않았다. 해당 영상 속 어린 사파는 침실 문을 연 해병이 수류탄을 던졌으나 폭발하지 않았으며, 동일한 남성이 방 안으로 들어와 가족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고 진술한다.

멘도자는 현재까지 그 침실 문을 열었다고 말한 유일한 해병이다.

위장복을 입은 남성들 사이에 있는 십 대 소녀 사파
US Marine Corps
14살 당시 증언하는 사파

또 다른 해병대원인 스티븐 테이텀 일병은 총격 사건에 가담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자신은 분대장인 우테리치를 따라 해당 침실로 들어갔을 뿐이며,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여성과 아이들이 있는지 몰랐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BBC가 입수한 이후 3차례의 진술에서 테이텀 일병의 진술 내용은 계속 달라졌다.

그는 2006년 4월 NCIS에 "아이들이 방 안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여러 명이었다"면서 "나는 가슴에 2발, 머리에 2발을 쏘도록 훈련받았고, 이를 따랐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총을 쏘기 전 그 방에 있는 인원이 여성과 아이들임을 확실히 식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내가 쏜 아이를 바로 그곳에서 보았다. 아이인 줄 알았으나 총을 쏘았다"면서, 짧은 머리의 그 아이는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침대 위에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테이텀의 변호인들은 강압에 의한 진술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 3월, 테이텀에 대한 모든 혐의가 취하되었고, 그의 진술은 우테리치 재판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말로니는 멘도자와 테이텀의 진술을 통해 이들이 사파의 가족을 사살한 두 해병대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멘도자가 먼저 침실에 진입하였고, 뒤따라 들어온 테이텀이 "침대 머리 쪽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취재진은 멘도자와 테이텀에게 이러한 의혹에 대해 물었으나, 멘도자는 답하지 않았다. 과거 멘도자는 사파의 부친을 쏜 사실은 인정하였으나, 그저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현재까지도 그는 형사 범죄로 기소된 바 없다.

테이텀의 경우 변호사를 통해 하디타 사건은 이제 뒤로 하고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입장을 전했다. 테이텀은 사파의 집에서 총격을 가한 이들 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진술을 번복하거나 철회한 바 없다.

위장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남성
Michael Epstein
분대장인 프랭크 우테리치는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유일한 해병이었으나, 결국 유죄 협상으로 모든 혐의가 취하되었다

말로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우테리치를 주범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말로니가 증언대에서 서기도 전에 우티레치의 재판은 유죄 인정 협상으로 마무리 되었다.

당시 우테리치는 자신은 사파의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였으며, 이 살인 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직무유기 혐의 1건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해병 출신으로 우테리치의 군 변호사를 맡았던 하이탐 파라즈는 "솜방망이 처벌이었다 … 속도위반 딱지 정도의 수준"이라고 회상했다.

우테리치의 수석 변호인이었던 닐 퍼켓은 의뢰인에 대한 수사 및 기소 전체가 "엉망이었다"고 기억했다. "검찰이 모든 증인에게 면책 특권을 부여하고, 모든 혐의를 기각해주면서 … 사실상 이 사건에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을 스스로 잃었다"는 것이다.

파라즈도 이 과정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는 데 동의했다.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사람들에게 거짓 증언을 시킨 것이다. 그 대가는 면책 특권을 주었다"면서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법적 절차를 이용했다"고 했다.

이어 "하디타 사건 재판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열린 게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결과는 없고,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 보여주기식 재판이라는' 생존자들의 인상"이 정확하다고 했다.

아이와 놀고 있는 사파의 모습
BBC
사파는 여전히 하디타에 살고 있으며, 지금은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미 해병대는 BBC에 자신들은 군사재판법에 따른 공정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수호하며, 적법 절차를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증거가 대거 발견되지 않는 이상 수사가 재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을 맡은 수석 검사는 BBC의 의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한편 현재 33세가 된 사파는 여전히 하디타에 거주하며 세 자녀를 키우고 있다. 사파는 가족이 다 죽었음에도 단 한 명의 해병도 처벌받지 않은 것에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취재진이 멘도자의 영상을 보여주자 "이 자는 사건이 발생한 순간부터 투옥되어 다시는 햇빛을 볼 수 없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이 모두 살해당한 그날을 회상하며 "작년 일인 듯 생생하다. 나는 아직도 그날을 떠올린다"고 했다.

"이 일을 저지른 자들이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고 처벌받길 바랍니다. 그들이 재판조차 받지 않은 채 거의 20년이 지났죠. 그게 진짜 범죄입니다."

추가 보도: 나막 코슈나우, 마이클 엡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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