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정국에 최악의 참사까지...'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연말'
"이번 연말에는 그냥 쉬어가는 느낌으로, 집에서 혼자 보낼 계획입니다. 참 슬픈 연말인 것 같아요."
그야말로 '우울한 연말'을 맞이한 시민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미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충격에 빠져 있던 한국은 지난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상심이 더욱 깊어졌다.
비극적인 사고로 목숨을 잃은 179명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전국 17개 시도에서는 합동분향소를 마련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무안국제공항에서 약 290km 떨어진 서울에서도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가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
30일 대한불교조계종이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한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희생자들을 기렸다.
조계사 분향소 설치 소식을 듣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김세은 씨는 "어린 신생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피해자들이 동시에 나온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여행이라는게 좋으려고 가는건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고통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올라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속 기도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생각났어요'
이번 사고로 정부는 29일부터 1월 4일까지 7일간의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연말에 기획되어 있던 각종 해맞이 행사와 공연 등도 줄줄이 취소 및 축소됐다.
가요계와 영화계, 기업체에서도 연말을 겨냥해 준비한 행사와 프로모션 등을 모두 연기한다고 밝혔다.
2030에게 이번 참사는 '세월호'와 '이태원'을 연상시켰다.
대학생 이승민 씨(24)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세월호 참사 때가 생각났다고 말했다.
"암울해지는 순간이었어요. 뉴스가 보도되면서 계속해서 많은 사망자들이 나오고, 그럴 때마다 더 암울해졌던 것 같아요."
이 씨는 계엄령과 탄핵 등으로 이미 혼란스러운 정국에 이번 참사 소식을 듣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고도 전했다.
"가뜩이나 연말에 이런 상황이 닥치니까 국민들도 더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대 김나연 씨도 이번 참사 소식으로 세월호 때가 연상됐다고 말했다.
"세월호 생각이 많이 났어요. 재밌게 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참사를 겪게 되어서 유가족분들이 많이 애통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이 추운 겨울날, 이렇게 가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김 씨 역시 어수선한 정국에 비극적인 사건까지 더해지며 "현재 나라의 상황이 정말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연말 분위기가 전혀 나질 않네요. 이 상황이 어떻게든 빨리 국민들이 바라는대로 속히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대 대학생 오정태 씨는 "이태원 참사가 겹쳐 보였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참사 소식을 들어야 됐다는 사실이 굉장히 비참하고 참담했습니다. 이태원 참사도 생각나면서 더 슬펐어요."
그동안 많은 국내 사건사고를 봐온 기성세대에게도 이번 사태는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60대 김재석 씨는 "국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에 대해서는 한국이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기기 불량이나 안전에 문제도 있었던 것 같고, 또 계속해서 보도되는 걸 보니 불가항력적인 것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시간이 갈수록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덧붙였다.
컨트롤 타워의 부재
'최악의 여객기 참사'로 불리고 있는 이번 사고는 피해가 큰 만큼 관계부처의 민첩한 대응이 요구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지난 27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안까지 가결되면서 컨트롤 타워의 부재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현재 행정안전부정관과 경찰청장까지 모두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주무부처 중 한 곳인 국토교통부 장관만 직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 상황 자체가 불안정한만큼 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는 상황이다. 주무부처가 직무대행으로 운영되는 만큼 정부 운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 김나연 씨는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 위주로만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처리할지 의문"이라며 "그래서 아마 유가족들이 더 분통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조계사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 분향소를 찾은 40대 강이주 씨도 비슷한 입장이다.
강 씨는 "나라가 어수선한 시기에 이렇게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대통령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현재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이니, 뭐라도 해결이 되기 위해선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분이 빨리 자리를 잡아야 국민들도 안정감을 갖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과 맞물리면서 연말이 "매우 우울하다"는 60대 김재석 씨는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정치권을 바라보면서 세대가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세대 교체가 되지 않는 한 구시대적인 생각을 갖고 정치하는 사람들이 계속 남아있는다면 이런 문제는 반복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김 씨는 제주항공 참사에 대한 수사에 대해서는 "충격이 워낙 큰 사건이기 때문에 정부 수사에 있어 현직 대통령이 하든, 권한 대행이 하든 속도나 규모는 똑같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큰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강이주 씨는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좀 우울한 2024년이었다"고 전했다.
"12월 초 계엄이 선포되고, 또 그날 해제되고, 대통령 탄핵까지 가면서 정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한 연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주항공 참사까지 일어나니, 우울한 한 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세은 씨는 "연말이 될수록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생기면서 다 같이 우울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다같이 추모하고 슬퍼하다보면 결국에는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정태 씨는 "이번 같은 연말은 또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계엄령부터 시작해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까지... 여러 안 좋은 일들이 겹치니까 올해는 정말 송구영신이라는 말 그대로, 빨리 떠나보내고 새로운 한 해가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