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가 외친 '표현의 자유', 트럼프에게 어떤 길 열어주었나?
지난해 10월 선거 유세 중에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검은색 모자를 쓰고 근처에 서 있던 테크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를 위한 특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트럼프는 날이 저물자 "머스크는 위대한 신사"라며 "그가 표현의 자유를 수호했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약 3개월 전에 총격범이 트럼프 암살을 시도했던 펜실베이니아의 그 농장 박람회장에서 다시 열린 유세였다.
2024년 7월 트럼프를 겨냥한 총격 시도 몇 분 후, 머스크는 자신이 소유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인 X(구 트위터)를 통해 공식적으로 트럼프 후보를 대통령으로 지지하고 그를 위해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 발표는 일론 머스크의 정치적 진화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점이었다.
표현의 자유 수호와 관련해 그가 해왔던 주장은 그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전기차에서 X까지
전기 자동차와 우주여행, 대중을 위한 인공위성 인터넷 사업 덕분에 머스크는 유명해졌고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지만, 정치에 관한 그의 견해는 점점 더 정의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2011년에는 자신에 대해 "중도"이자, "사회적으로 진보적이고 재정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표현했다.
일론 머스크의 활동을 면밀히 뒤따라온 언론인들은 코로나19 시기와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그의 견해가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머스크는 팬데믹 초기에 코로나19의 심각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2020년 4월 테슬라 실적 발표에서는 "파시스트"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봉쇄 조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당시 그의 자녀 중 한 명이 성전환을 시도 중이었는데, 그는 나중에 여기에 반대했었다고 밝혔다.
그는 정체성 정치를 비롯한 진보적 가치 및 그가 종종 "깨어 있는 정신 바이러스(정치적 올바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태도)"라고 불렀던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좌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2022년 3월 머스크와 그의 전 아내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보면 두 사람은 트위터가 우파 성향의 풍자 사이트 계정을 정지시킨 것에 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의 전 아내가 이 플랫폼을 사들여 "급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법정 문서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그해 머스크는 트위터를 440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러고는 나중에 이 플랫폼의 이름을 X로 바꾸었다.
표현의 자유
트위터를 인수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묻는 말에 머스크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표현 자유의 중요성과 "디지털 마을 광장"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머스크가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하에 트위터에서는 대규모 직원 감축을 포함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한때 정지되었던 도널드 트럼프의 계정, 음모론자 알렉스 존스의 계정을 되살렸고, 일부 공화당원들은 이를 기뻐했다.
기본적인 수준에서 표현의 자유는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이 말하려고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도덕적 권리를 뜻한다. 표현의 자유에는 종종 혐오 발언이나 폭력 선동을 범죄화하는 것 같은 보호 장치가 수반되기도 한다.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수정 헌법 제1조를 통해 보장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정치적 차원으로 확대되었는데, 인터넷이 특히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교수 제프리 하워드는 "공화당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을 일종의 정치적 축구 게임처럼 사용하는 데 매우 능숙해서 '우리는 이 권리를 옹호하고 민주당은 이 권리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말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 기업이 콘텐츠를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고, 정치적 권리 측면에서 소셜 미디어 기업이 혐오 발언과 차별적 괴롭힘,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괴롭힘 등을 판단하는 것과 관련해 잘못이 있다는 정서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이 정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의 논쟁은 아닙니다." 하워드 교수의 말이다.
표현의 자유 맹신론자?
머스크는 해외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었고, 이는 국제적인 논란으로 이어졌다.
브라질에서는 그가 선거 관련 허위 정보 및 폭력과 관련된 몇 개의 계정을 금지하는 것을 거부하자,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머스크를 영웅으로 추켜세웠다.
그러나 X가 인도 정부와 튀르키예 정부 등 일부 국가 정부의 콘텐츠 삭제 요청을 수락한 후, 일각에서는 머스크를 위선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종종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그 플랫폼이 운영되는 국가의 법률을 넘어설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X에 올린 게시물에서 머스크는 자신을 "표현의 자유 절대주의자"라고 칭했지만, 그가 항상 이러한 접근 방식을 취해온 것은 아닌 듯 보인다.
X는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발언이라고 해서 모든 발언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플랫폼에는 일부 유형의 유해한 발언을 금지하는 규칙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머스크의 주장은 2022년 12월 유명 언론인들의 X 계정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면서 그 기반이 약화하였다. 당시 일시 정지된 언론인들의 계정은 머스크의 전용기를 추적하는 계정에 대해 언론 보도를 한 것과 연관된 계정들이었다.
소셜 미디어 연구 재단의 소셜 미디어 모니터링 도구인 '노드엑셀'(NodeXL)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머스크는 X에서 가장 팔로워가 많은 계정(2억 명 이상)을 갖고 있고, 2022년 이후 그는 이전에 올렸던 게시물의 총합보다 2배 이상 많은 게시물을 올렸다.
"그의 정보 섭취는 정말 하루 종일 언제나 X입니다. X는 그가 뉴스를 얻는 곳입니다." 머스크와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에 관해 책을 쓴 뉴욕타임스의 케이트 컨거의 말이다.
트럼프 지지 행보
머스크는 미국인들이 투표장에 가기 한 달 전에 열린 트럼프 선거 유세에서 "이것은 평범한 선거가 아니다. 상대 진영은 여러분의 표현의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계산은 적중했다. 머스크는 백악관의 규제 및 지출과 관련해 자문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보인다.
머스크가 사업을 해오는 과정에서 그의 회사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부 계약을 수주해왔고, 현재는 잠재적인 이해 상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됐을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다는 명분의 프로젝트는 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큰 변화를 초래했다.
머스크의 지지자들은 그가 표현의 자유를 "수호했다"고 말한다. 하워드 교수와 같은 다른 이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는 열린 담론의 장으로 봤을 때 현재의 X는 머스크 이전 시대만큼 건강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BBC의 의견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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