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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음란물을 봐야 하는 사람들'…단독 공개된 디성센터 내부 현장을 가다

1일 전

"모니터 창, 어서 내리세요!"

박성혜 삭제지원 팀장의 단호한 외침이 사무실 허공을 갈랐다.

취재진이 '출입 금지' 푯말이 붙은 출입문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자마자 보게 된 광경이다.

순식간에 컴퓨터 화면이 일제히 까맣게 바뀌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평범한 사무실이지만, 이곳은 '조용한 전투'가 매 순간 벌어지는 장소다.

딥페이크 음란물을 비롯한 각종 성 착취물을 삭제하는 공공기관, 바로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 이야기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물 삭제를 지원하고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여성가족부가 2018년 4월 설치했다.

BBC 코리아가 언론 최초로 디성센터 내부에서 실제 성 착취물 삭제 업무가 이뤄지는 현장을 찾았다.

'DNA 검색'

"피해자가 느끼는 불안감을 생각하면 철통같은 보안을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박 팀장은 그동안 많은 언론의 요청에도 디성센터를 공개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확산과 유포가 재빠르게 이뤄지기 쉽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그는 "삭제를 위한 과정이라 할지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본다는 것에 대해서 내부적으로 굉장히 주의하면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상부 기관인 여성가족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직원들조차 이곳 출입이 쉽지 않을 정도다.

디성센터가 BBC 코리아에 최초로 언론 공개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점점 확대 재생산되는 디지털 범죄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각종 기술을 이용해 누구나 쉽게 성 착취물을 만들고 공유하는 세상이 됐다. 그만큼 의뢰와 삭제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디성센터에 요청된 삭제지원 건수는 2021년 16만9820건, 2022년 21만3602건, 2023년 24만5416건 등 매년 약 3~4만건씩 불어났다.

2018년 4월 개소 이후 이곳이 삭제한 불법 게시물은 100만 건이 훌쩍 넘는다.

박 팀장은 이런 상황이 "너무 참담하다"고 했다.

"개소 때부터 이 업무를 하면서 관리하고 여러 가지 운영을 해왔습니다. 과거 N번방 때와 같은 범죄가 반복되는 상황에 참 속상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어떤 심경일지….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경각심의 목소리를 내고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성센터는 23명의 인력(2024년 12월 기준)이 매일 각종 불법 사이트와 텔레그램 등의 플랫폼을 모니터링하며 디지털 성착취물을 삭제하고 있다.

이들의 아침은 밤사이 몇 건의 피해자 의뢰가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센터가 삭제에 이용하는 핵심기술은 'DNA 검색'이다.

DNA 검색은 이곳이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는 300여 개의 성인사이트에 게시된 사진·영상 중 피해 성 착취물과 유사한 것이 있는지 찾아내는 기술이다.

원본의 일부만 있어도, 흑백, 반전, 자막이나 워터마크 삽입, 배속 등으로 가공해도 99% 이상의 정확도로 해당 영상이나 사진을 검출할 수 있다.

2020년 입사해 4년 넘게 삭제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조지연(가명) 씨는 센터가 개발한 삭제지원시스템 화면을 보며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주말 동안에도 DNA 검색 기능은 자동으로 진행이 되거든요. 월요일에 출근을 하면 지난 주말 동안 자동 검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 지금 영상 유포 8건, 사진 유포 1건이 쌓여 있는 걸 보실 수 있으시죠."

하지만 사람의 손길은 매 순간 필요하다.

게시물을 다시 한번 확인한 뒤 각 사이트 운영자나 호스팅 사업자에게 삭제를 요청하는 일은 일일이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각종 범죄 기술이 계속 진화하는 상황. 텔레그램과 같은 익명 채팅방이나 1:1 자료 교환방 등의 경우는 직접 잠입해서 유포 여부를 확인하고 수사 의뢰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아요'

직원들은 범죄 행태가 좀 더 악질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로 조악하던 성 착취물은 실제 같아졌고, 신상 공개도 많아졌다. 가해자들은 각종 소셜미디어 등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성적 발언을 일삼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해자들이 단순 유포나 공유가 아니라 어떤 놀이 문화처럼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같이 유포하는 거예요. 한 사람을 파괴하는 이상한 놀이 문화처럼 변질된 부분이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부분입니다." 입사 6년 차인 권문희(가명) 씨의 설명이다.

피해자의 연령대가 점점 어려지는 것도 우려스럽다.

아동·청소년 같은 경우 성인에 비해 피해 인지나 대처 방법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미 지원을 요청했을 때는 성 착취물이 꽤 퍼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권 씨는 실무자 입장에서 디지털 성착취물을 '완전 삭제'하기 어려운 점이 제일 힘든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무한 복제가 용이한 디지털 범죄 특성상, 현재 보이는 것을 삭제해도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내담자(삭제 의뢰인)는 계속 늘어나는데, 이게 종결되는 상황이 아니에요. 10년 전 영상도 지금 유포되는 상황이거든요. 이럴 땐 '밑 빠진 독에 물 붓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성 착취물을 발견한 뒤, 삭제지원 담당자들은 서버 관리자와 운영자 등에 삭제 요청을 한다.

해당 콘텐츠가 위법행위인 불법 촬영물 혹은 성 착취물임을 알리고 메일 등으로 삭제 공문을 발송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모두가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디성센터가 수집 관리하는 사이트의 95.4%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만큼 한국 국내법 적용이 애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은 삭제하는 태도를 보이더라도 URL이나 공간을 바꿔가면서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권 씨는 "국내에서 법을 굉장히 잘 만들어 놨어도, 한국에 서버를 두고 있지 않으니, 법을 지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공식적 응답도 없다"라며 "애초에 삭제를 잘 해줄 요량이었으면 그런 불법 사이트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부터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자 설민정(가명) 씨는 나라별로 디지털 성범죄 관련한 통일된 기준이 없다는 점이 한계점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각 나라마다 아동·청소년이라고 생각하는 나이도 굉장히 다르고 처벌 기준도 다릅니다. 성인이면 처벌하지 않는 나라도 있어요. 공통적인 최소한의 법적 기준이 없다 보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직원들은 디지털 성범죄 근원지로 꼽히는 텔레그램 외에도 대형 포털 검색 엔진의 유포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와 관련한 조금의 검색값으로도 수십 페이지 성 착취 결과물이 나오는 실정이다. 모니터링을 진행할 때마다 점점 불어가는 그 수에 매번 놀란다고 했다.

설 씨는 불법 사이트 외에도 포털에 책임을 묻고 규제하는 법안이 빨리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색 엔진은 전기통신사업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촬영물을 직접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터링이라든가 적극적인 기술적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요. 사실 일반 사람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건 불법 사이트보다는 포털에서 검색해서 바로 나오는 결과들이거든요."

딥페이크 이슈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면서 정부도 급히 플랫폼 사업자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는 정책을 내놓긴 했다. 디지털서비스법인 '온라인서비스 이용자보호법'(가칭)을 제정해 사업자로 하여금 플랫폼 내 불법·유해 정보 유통 방지, 콘텐츠 노출 기준 공개 등과 같은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2024년 연말 흔들리는 정국 속에서 방송통신위원회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법 제정이 늦어지고 있다.

웃지 못할 직업병...조롱과 폭언 듣기도

포르노라든가 아동의 성 착취물을 매일 수 시간씩 봐야 하다 보니 삭제 담당 직원들은 웃지 못할 직업병도 생겼다.

설 씨는 집을 포함해 어딜 가든지 불법 카메라가 없는지 찾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저는 임대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혹시 집에 불법 촬영을 할 수 있는 카메라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스프링클러가 반짝여도 의심스러울 때가 있어요. 친구들이랑 호텔 같은 숙박업소 갔을 때는 굉장히 경계하죠. 뭐 없는지 다 살펴보고 무조건 커튼을 치고 생활합니다."

그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깊이 느껴질 때면 종종 꿈에서도 성 착취물을 삭제한다고 했다.

"그 피해자가 지고 있는 많은 고통 중에 하나라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의지가 막 생기는데요. 동시에 그런 고통스러운 감정 등은 무의식중에도 좀 영향을 끼치는지 삭제하는 꿈을 꾸기도 해요."

이들을 향해 조롱과 폭언이 날아오기도 한다.

삭제요청 공문 메일을 보내면 '너희가 이런다고 내가 지워줄 줄 알아?'라며 욕으로 점철된 회신을 보내는 사이트 운영자가 있다. 지워줄 테니 신원을 인증해 보라며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포르노 보는 게 일이라서 너무 부럽다'라는 조소 섞인 말도 날아온다.

박 팀장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조직도에 제 이름이 캡처되어 불법 사이트에서 조롱받았던 적도 있다"며 "그러다 보니 (공공기관임에도) 홈페이지에서 삭제지원 인력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보니 디성센터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소진 방지프로그램 등 각종 상담을 받고 있다.

고질적인 인력난

'인력 부족' 역시 쏟아지는 디지털 성범죄 속에서 디성센터가 마주한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현재 디성센터 삭제 인력 중 정규직 인력은 15명이다. 이곳 인력 시스템을 들여다 보면 N번방 사건 이후 많아진 삭제 의뢰 수를 단기 계약직으로 충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 훈련을 3~6개월하고 업무에 제대로 투입되면 떠나는 경우도 빈번하다.

디성센터는 단순히 삭제지원 인력을 늘리기보단 정규직 비중을 높이는 등 조직의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모니터링부터 삭제 요청, 국제 공조 등의 과정은 경험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박 팀장은 이와 관련해 "한 달 전에 없었던 피해 유형이 갑자기 이번 달이 생기기도 한다"며 "여기에 빨리 대처하려면 삭제 노하우가 있는 사람이 여러 방식을 토대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성센터는 올해 시스템 고도화와 국제협력으로 정규직 2명을 추가 채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늘어나고 쌓여가는 삭제 의뢰 건수를 고려해 보면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현실이다.

반면 새로운 삭제 기술과 피해자 지원체계 개발 등 이들이 담당해야 할 업무는 점차 늘고 있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범정부 딥페이크 대응 방안이 모색되면서 여가부는 삭제 인력을 33명까지 늘릴 예정이었다. 여가부와 여가위 여야 위원 모두 내년도 예산을 47억6000만원 늘리는 안에 동의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여파 속에서 증액안 대신 기존 정부안이 본회의를 통과했고, 대규모 인력 증원은 어렵게 됐다.

이와 관련해 디성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측은 "오는 4월 17일 시행을 앞둔 성폭력방지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중앙디성센터의 역할 및 기능이 확대·강화된 것에 맞추어 예산 및 인력 확보가 필요하므로, 앞으로도 정부 부처, 국회 등과 함께 중앙디성센터 예산 증액 및 인력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나 자신을 살리는 일'

가족이나 지인 중에는 '다른 일을 하면 안 되냐'고 묻는 경우도 있지만, 이곳 디성센터 삭제지원 실무자들은 이 일이 그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고 말했다.

설 씨는 "상식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며 "이 일을 그만둘 때는 성 착취물 삭제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피해자가 고맙다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할 때, 힘을 합쳐 불법 포르노 사이트를 완전히 없애 버릴 때와 같은 순간들은 계속해서 이 길을 건너게 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 준다.

조 씨는 이 일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살리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전 디지털 성범죄는 전적으로 타인의 일일 수만 없다고 생각해요. 업무를 하다 보면 '언젠가 내 촬영물을 발견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도 이 일은 계속해 나갈 겁니다."

취재·촬영·프로듀싱: 최유진

추가 촬영: 김현정

총괄 프로듀서: 김현정, 오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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