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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바그너 그룹에 맞서기 위해 수단 내전에 개입하고 있나?

2024.04.22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과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
Getty Images
지난해 4월부터 수단은 정부군 지도자인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오른쪽)과 ‘헤메드티’로 더 잘 알려진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왼쪽) 간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다

지난해 9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이 이뤄졌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총회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귀국 중 잠시 들린 아일랜드 섀넌 공항에서 수단 정규군의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과 만난 것이다.

두 정상은 국제 안보 이슈 및 “러시아가 자금을 대는 불법 단체들이 끼치는 위협”에 대해 논의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따르면 공항에서의 이 눈에 띄는 만남은 “예정된 게 아니”라고 한다. 섀넌 공항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들이 급유를 위해 자주 경유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 두 정상 간 만남엔 우크라이나의 특수 부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부르한 장군과 젤렌스키 대통령
Ukrainian Presidency
젤렌스키 대통령과 알-부르한 장군의 이 뜻밖의 만남은 우크라이나의 수단 내전 개입을 예고한다

당시 수단은 정규군과 준군사조직인 ‘신속지원군(RSF)’간 충돌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는 정규군의 수장이자 사실상 수단의 대통령인 알-부르한 장군이 그의 보좌관 출신으로 ‘헤메드티’라고도 불리는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과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인 결과다.

내전으로 인해 수천 명이 사망했으며, 수백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리고 수단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은 상태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내전에서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그리고 왜 수단 정부군을 지원했는지에 대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RSF가 정규군 본부를 포위했을 지난해 8월, 우크라이나 부대가 알-부르한 장군의 수도 하르툼 탈출을 도왔다고 한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알-부르한 장군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후 일명 ‘티무르’로 알려진 정보장교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요원 약 100명이 수단에 도착했다고 한다.

티무르
Ukrainian Defence Ministry
미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유명한 정보장교인 ‘티무르’가 우크라이나 대원들의 수단 내 작전을 지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월스트리트 저널은 해당 우크라이나 부대가 알-부르한 장군의 탈출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FPV 드론(1인칭 시점에서 정보 처리가 가능한 드론)도 지원해주고, RSF를 야간에 기습하는 등의 도움을 주면서 수단 내전의 성격을 바꿔놨다고 보도했다.

한편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수단 내전 개입설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보 당국은 BBC에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익을 지키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만 답했다.

바그너 그룹은 수단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지난 2월, 수단에서 우크라이나 요원들이 숨진 러시아 군인의 시신이 실린, 포격 당한 군용 차량을 조사하는 모습이라는 주장과 함께 한 영상이 공개됐다. 해당 군용 차량은 러시아 용병 단체 ‘바그너 그룹’의 상징을 달고 있었다.

아울러 해당 영상의 다른 장면에선 우크라이나 요원들이 생포한 러시아 군인들을 심문하는 듯한 장면이 포착됐다. 한 우크라이나 요원이 “이곳에서 너희들의 목표는 무엇이냐”고 물으니 한 병사가 “현지 정부의 붕괴”라고 답한다.

이 영상이 실제로 수단에서 언제 어디서 촬영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BBC는 이를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없었다.

사실 바그너 그룹은 수단 정규군과 RSF가 충돌하기 훨씬 이전부터 수단에 머물고 있었다.

바그너 그룹이 수단에서 목격된 첫 영상은 적어도 2017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바그너 용병들이 수단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현지 보안군의 시위 진압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바그너 그룹을 창설한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사망한 지난해 8월 이후, 바그너 그룹 중에서도 수단 등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부대는 러시아 특수부대가 통제하고 있다.

RSF 대원들
Getty Images
러시아의 용병 단체 바그너는 RSF를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BBC 모니터링’의 분석가 베벌리 오칭은 현재 수단에서 RSF를 지원하는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우크라이나 요원들의 주요 표적인 것으로 봤다.

오칭은 “우크라이나 부대가 [수단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와 관련해 나온 보도를 살펴보면 RSF에 맞서 싸우는 정규군을 지원하기보단 러시아 쪽을 노리는 데 더 집중된 듯 하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바그너 그룹이 여러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다.

한편 키릴로 부다노프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은 수단에 주둔 중인 바그너 용병 일부가 우크라이나 전쟁과도 관련 있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부다노프 국장은 “모든 러시아 전범들, 우크라이나에 맞서 싸웠거나 싸울 예정인 모든 전범들은 전 세계 어디 있든 반드시 처벌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영국의 싱크탱크 ‘정치 폭력에 대한 발언’ 소속 무라드 바탈 쉬샤니는 우크라이나가 수단 내 러시아 용병들의 자금줄을 끊고자 노력하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헤메드티 장군은 아프리카 내 러시아, 주로 바그너 그룹의 가장 큰 동맹 세력이었다”는 쉬샤니는 “헤메드티 장군은 바그너 그룹의 주요 자금줄인 금을 통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헤메드티 장군
Getty Images
헤메드티 장군은 수단에서 가장 재산을 많이 축적한 인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미 CNN은 수단 내 금 채굴 및 교역에 러시아가 개입했으며, 러시아가 수단에서 시리아로 금을 가득 채운 비행기 16편을 보냈다고 지난 2022년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월스트리스트저널은 우크라이나 군사 정보국 소식통을 통해 수단 내 러시아의 금 사업을 방해하려는 계획이 있다고 확인했다.

헤메드티 장군이 패배하고 우크라이나와 수단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홍해에 면한 항구 도시 포트 수단에 군사 기지를 짓겠다는 러시아 당국의 계획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

몇몇 전문가들은 현재 수단에서 ‘전형적인 대리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묘사했다. ‘대리전’이란 3국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며 개입하는 분쟁을 뜻한다.

미국 소재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재단’의 글렌 하워드 전 의장은 “헤메드티 장군은 아랍에미리트와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알-부르한 장군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재정적 지원과 우크라이나로부터의 군적 지원을 바탕으로 꾸준히 내전에서 이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빈 살만 왕세자와 젤렌스키 대통령
Getty Images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해 수단에서의 활동을 조정하고 있다고 본다

한편 미국의 또 다른 싱크탱크 ‘뉴 라인스 연구소’의 니콜라스 A. 헤라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가 어디서든 러시아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노력 중이라고 봤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알-부르한 장군 간 합의는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개념의 거래”라는 헤라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엔 국제 사회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비단 유럽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도 푸틴과 대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수단 내 우크라이나의 활동 능력은 제한된 상태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수단에 지원할 수 있는 건 소규모의 특수부대 정도다.

반대로 수단 내 러시아의 존재는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선명하다.

헤라스 연구원은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을 통해 수단에서 훨씬 더 큰 능력을 보유하고 펼칠 수 있다. 포탄과 지대지 미사일 시스템 등의 지원을 받는 바그너 용병들도 있고, RSF에 신속하게 군수품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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