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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일가 우상화' 김기남 북한 전 선전선동비서 94세로 사망

2024.05.08
김기남
Getty Images
북한 전 선전선동비서 김기남이 94세 나이로 사망했다

김씨 일가 우상화의 배후 인물이 사망했다

8일 북한 관영언론은 북한의 전 선전선동비서 김기남이 9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통신(KCNA)은 노환을 비롯해 2022년부터 치료를 받아오던 다장기기능부전을 사망 원인으로 밝혔다.

김기남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일가를 우상화하는 등 북한 전체주의 정권에서 수십 년 동안 체제 선전에 앞장섰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새벽 고인의 영구를 찾아 “한없이 충실했던 원로 혁명가”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는 “거짓말을 반복하다보면 진실이 된다”는 말로 널리 알려진 나치 독일의 선전부장 요제프 괴벨스에 김기남을 비유했다.

김기남은 남북한에서 가장 흔한 성씨를 갖고 있지만, 같은 성씨를 지닌 북한의 세습 집권 일가와는 혈연관계가 없다.

김기남은 1966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으로 임명된 이래 김정은의 부친이자 전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긴밀히 협력했다. 이후 선전선동부장으로서 선전 활동을 책임지기도 했다.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기남은 김정일과 “술친구”로 묘사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70년대에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책임주필을 맡았다.

평양의 정치·문화 웹사이트 북한리더십워치에 따르면, 이후 김기남은 북한 역사에서 김일성의 위치를 건국의 아버지로서 확고히 정립하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주도적으로 지원했다.

김씨 일가 동상
Getty Images
김기남은 김씨 일가 우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기남은 한국을 방문한 몇 안 되는 북한 관리 중 한 명으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대표단을 이끌고 남측을 찾았다.

또한 수십 년 동안 북한의 정치 슬로건 작성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언론과 출판, 심지어 순수 예술 분야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2011년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김기남의 선전 활동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있다. 당시 김기남은 20대에 불과했던 김정은이 북한의 지도자로 부상하는 시기를 앞당겼다고 알려졌다.

김정일 사망 후 처음으로 나온 조선중앙통신 보도에는 "김정은 동지의 현명한 령도 아래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의 혁명적 전진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김정은 동지의 령도 아래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고 현재의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2015년 관영언론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당시 80대였던 김기남은 키가 크고 안경을 쓴 모습으로 김정은의 연설 동안 군 간부 사이에 서서 메모를 남기고 있었다.

김기남은 2010년대 후반 은퇴하면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에게 직책을 넘겼지만, 공식 석상에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김정은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 싱크탱크 38노스프로그램의 레이첼 리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은 김기남을 오랜 기간 선전선동 요직에 앉혔는데, 그의 부친(김정일)처럼 김기남을 신뢰하고 의지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리 연구원은 노동신문이 8일 신문 1면 전체를 김기남의 사망과 장례식 내용으로 채운 것이 “그에게 보내졌던 경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레이프 에릭 이슬리 교수는 김기남의 죽음이 북한 선전선동 관점에서 “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며, “김기남은 북한 정권을 미화해 한반도 전역은 물론 그 너머에도 어필하려 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슬리 교수는 북한의 선전선동이 과거 세대의 범한민족주의에서 벗어났다며, “이제 김정은은 한국을 악마화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핵무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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