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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충돌하지 않는 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하는 방법

2024.05.08
풍력 발전 터빈 주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떼
Getty Images
영국 스크로비 샌즈에 있는 풍력 발전 터빈 주위를 날고 있는 갈매기떼

풍력 발전용 터빈은 비행 중인 새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새가 터빈 날개에 충돌하는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방법도 있다.

유럽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한 가지 희망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독수리가 돌아온 것이다. 동물의 사체를 먹는 이 거대한 청소부는 과거 밀렵과 유독성 물질 중독, 서식지 손실로 거의 멸종 직전까지 갔었다. 하지만 어린 독수리를 정성스럽게 기른 뒤 자연으로 방사하는 보호 노력 덕에, 야생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알프스와 스페인 안달루시아 산맥에 여러 종의 독수리를 되돌려 놓았고, 유럽 내 다른 지역에서도 독수리 개체수를 회복시키고 있다. 호세 타바레스 독수리보호재단(VCF) 이사는 “독수리는 전 세계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유럽이 그나마 희망적인 곳이죠. 우리는 유럽에선 흐름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개체 수가 늘고 분포 지역이 넓어지면서, 과거의 독수리 서식지가 되살아나고 있어요.”

유럽에선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남쪽 아프리카 말리로 가서 겨울을 나는 철새 이동 경로도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의 산물이 이런 철새의 여행을 위협하고 있다. 거대한 풍력 터빈에서 돌아가는 날개가 조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재생 에너지 혁명 속에서 오늘날 유럽과 전 세계에 풍력 발전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 풍력 발전 단지가 바람을 놓고 새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은 특히 철새에게 위협이 된다. 철마다 이동하는 철새는 전체 조류 종에서 약 20%에 해당한다. 수십억 마리가 하늘을 나는 철새의 이동 기간 동안, 그리고 좁은 해협이나 산악 골짜기처럼 풍속이 빠른 ‘병목 지역’에선 충돌 위험이 더욱 커진다.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에 풍력 발전을 짓는 것은 에너지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철새 이동에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한 연구원이 수염수리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Vulture Conservation Foundation
한 연구원이 하루 전 부화한 수염수리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풍력 발전은 인류가 기후 변화에 맞서기 위한 중요한 무기다. 하지만 타바레스의 지적처럼 멸종 위기에 처한 새를 보호하고 되살리려는 노력과는 충돌할 수 있다.

타바레스는 “독수리는 10년 정도를 살아야 번식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육 번식(동물원 등에서 기르며 번식시키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죠. 풍력 발전 단지나 전기 철탑을 엉뚱한 곳에 세워서 수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생물 종 하나를 살리기 위해 수백만 유로를 쓰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각국에서 새들의 이동 형태와 사물 인지를 새롭게 규명하는 연구 등을 통해 다양한 해법을 시험 중이다. 목표는 어려움에 처한 생물종이 변화하는 에너지 환경에 잘 대처하도록 돕는 것이다.

독수리가 더 잘 볼 수 있는 케이블

연구에 따르면, 풍력 발전 단지에서 발생하는 충돌 문제는 이미 개체수가 줄고 있는 생물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조류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그 파급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독수리가 이를 잘 보여준다. 타바레스는 독수리를 ‘자연계의 청소부’라고 했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 자연에서 잠재적으로 해로운 박테리아를 제거하고 탄저병이나 결핵 같은 질병의 확산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타바레스는 “만약 사체를 처리하는 독수리가 없다면 그 결과는 바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독수리는 생태계에 있는 사체를 먹어치우죠. 사체를 없애주는 겁니다. 이런 역할이 없으면 사체가 쌓이고, 위생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자연 생태계에서 독수리는 매우 효율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독수리 4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다행히 환경 보호 운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금은 수염수리와 독수리, 그리폰 독수리의 개체수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타바레스는 풍력 터빈,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공중 케이블이 이 회복세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
Bruno Berthemy/Vulture Conservation Foundation
다양한 독수리가 유럽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풍력 발전은 전기를 만들고, 만들어진 전기는 우리 가정으로 운반됩니다. 풍력 발전소에선 날개가 돌아가죠. 그 날개를 향해 새가 날아오면, 새는 날개에 잘려나갈 겁니다. (케이블과) 충돌하면 날개나 목이 부러질 수도 있죠. 풍력 발전 단지만이 아니라, 전력 생산 및 송전 시설 전체에 잠재적 충돌 위험이 있는 겁니다.”

VCF는 현재 송전선이 더 잘 보이게 만들기 위해 에너지 회사들과 협력 중이다. 눈에 잘 띄는 나선형 무늬와 반사경을 송전 케이블에 붙여 독수리의 충돌 위험을 낮추려는 것이다. 타바레스는 “전기를 끊지 않고 드론으로도 이러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서 비교적 저렴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2022년에 나온 한 연구는 독수리 추적 데이터를 사용해 스위스 알프스에서 독수리 비행 경로를 파악하자고 주장했다. 독수리의 비행 경로를 알게 된다면, 처음부터 그 경로를 피해 풍력 발전소를 지어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새들이 세상을 보는 방법

과학자들은 풍력 발전 단지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일은 조류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특히 새가 날아가는 방향을 보지 않는 이유를 이해해야 한다.

영국 버밍엄 대학 명예교수이자 조류 감각 전문가인 그레이엄 마틴은 “새는 사물을 스쳐 지나간다”고 말했다. “인간은 세계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겐 앞을 보는 눈이 있죠. 세계는 앞에 있고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반면 대부분의 새는 머리 옆쪽에 눈이 있어요. 물체가 앞쪽에서 뒤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뒤로 물러나는 세계를 보는 겁니다."

조류에겐 사방이 모두 세계인 셈이다. 마틴은 어떤 경우엔 청둥오리처럼 머리 위에 세계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새에게는 사방이 다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인간과는 관점이 매우 다르죠. 그중에서도 새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영역, 즉 최고의 공간 해상도나 세밀한 디테일을 볼 수 있는 영역은 측면이고요.”

바닷가에 있는 부비새
Allan Drewitt/Natural England
풍력 발전 단지는 부비새같은 바닷새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마틴은 조류가 이러한 측면 시각을 이용해 포식자나 먹이를 감지한다고 말했다. 반면 새의 정면 시각은 공간 해상도가 훨씬 떨어진다. 그래서 풀숲의 벌레처럼 부리로 쪼는 상황처럼 “가까운 거리에서만 작동”한다.

새는 보통 시력이 좋은데, 특히 맹금류가 가장 좋은 시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잔점배무늬독수리는 무려 6km 떨어진 곳에 있는 먹이도 포착할 수 있다. 하지만 옆쪽에 있는 세상을 보기 때문에, 바로 앞에 있는 풍력 발전 단지는 보지 못한다.

조류는 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할 때 분주하게 경로를 탐색해야 한다. 사실 새는 복잡한 경로를 학습하고 바다를 가로질러 냄새를 맡거나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포착해 길을 찾는 놀라운 항해사다. 새 중에는 자기 조상들이 사용했던 대륙과 대양을 가로지르는 “조류 전용 슈퍼고속도로”를 통해, 몇 개월간 수천 마일을 이동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마틴은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이동 중에 하늘에 있는 커다란 장애물을 포착하는 기술은 필수로 발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틴은 “철새가 이동할 때는 전방 상황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보통은 탁 트인 하늘을 날기 때문에 전방은 가끔씩 몸을 돌려 확인하는 정도일 겁니다.”

조류의 이러한 습성을 이해하면, 이 날카로운 시력을 가진 장거리 여행자가 풍력 발전 터빈을 일찍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보고에 따르면, 매년 미국에서만 14만~57만3000여 마리의 새가 이 같은 충돌로 목숨을 잃는다. 풍력 터빈, 통신탑, 송전선, 건물 등 인공 구조물과 충돌해 조류가 사망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건에 달한다. 그 때문에 이런 충돌을 인간에 의한 조류 사망의 주원인으로 지적하는 연구도 있다.

조류 충돌은 재생 에너지 산업 부문에도 막대한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의 풍력 에너지 업계에선 매년 조류 충돌로 인해 매년 수억 달러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그리폰 독수리
Hansruedi Weyrich/Vulture Conservation Foundation
철새 이동철에는 그리폰 독수리 같은 이동성 조류가 인간이 만든 구조물과 충돌할 위험이 커진다

검은 날개의 힘

과학자들이 제안하는 한 가지 해결책은 풍력 터빈 날개를 훨씬 더 눈에 잘 띄게 만드는 것이다.

노르웨이 서쪽 해안에 있는 ‘스몰라 풍력 발전 단지’에는 68개의 터빈이 18㎢에 걸쳐 세워져 있다. 지난 2020년 ‘노르웨이 자연연구소’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터빈의 날개 하나를 검은색으로 칠하는 실험을 했더니, 조류 사망률이 70% 줄어들었다고 한다.

영국에선 마틴과 ‘내추럴 잉글랜드’의 조류 전문가 알렉스 뱅크스가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세가락갈매기 등 최근 급격히 개체 수가 줄고 있는 바닷새에게 흑백 줄무늬로 색칠한 터빈 날개가 보호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뱅크스는 “내가 관찰하고 있는 지역에 약 200쌍의 세가락갈매기 서식지가 있다”고 말했다. “(관찰을) 갈 때마다 저는 그들이 번식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들은 제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입니다.”

뱅크스는 새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해상 풍력 터빈과 충돌할 위험을 겪지만, 번식을 위해 정착한 후에도 충돌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세가락갈매기와 부비새, 검은등갈매기 같은 다른 종들도 해안에 둥지를 틀고 삽니다. 매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먼바다로 날아가죠. 그런데 그곳에 해상 풍력 터빈이 세워집니다. 그곳에서 먹이를 찾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에, 새는 장애물이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하는 거죠.”

뱅크스는 풍력 터빈 날개를 세 등분해 검은색과 백색을 교대로 칠하면 회전할 때 “깜박임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틴은 풍력 발전 단지가 더 눈에 띄게 되면 풍력 터빈이 설치된 지역을 조류가 지나기 위해 더 긴 경로를 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물론 배고픈 새끼에게 돌아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줄무늬나 반사판 또는 회전체를 설치하더라도 조류가 그것을 보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수 있다. 그 때문에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의 연구원들은 ‘소리’를 사용한 해법을 연구 중이다.

터빈을 흑색과 검은색으로 칠했을 때를 보여주는 예시 그림
Graham Martin
새들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목적으로 터빈을 흑색과 검은색으로 칠했을 때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 그림

쉿쉿 소리가 나는 등대

미국 동부 해안 델마바 반도의 광활한 갯벌은 도요새, 물떼새 등 수만 마리 조류가 남쪽으로 이동 중에 잠시 들르는 곳이다. 새들은 이곳에서 힘을 보충한 뒤, 대서양의 이동 경로를 따라 남미로 떠난다.

티모시 보이콧은 최근 철새 이동철을 이용해 “쉿쉿” 백색 소음을 내는 “음향 등대”를 현장 검증했다고 말했다. 이 등대는 소리로 철새들에게 전방에 위험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등대다.

보이콧은 등대 주위에 있는 두 개의 통신 타워 밑에 45도 각도로 위를 향한 스피커를 설치했다. 스피커에선 새들의 가청 범위로 알려진 4~6kHz의 소리가 나오도록 했다. 보이콧은 “소음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향성이 높은 스피커를 사용했고, 최대한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소리를 발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6일간 하루 3시간씩 자료를 수집했다. 이를 위해 타워로 접근하는 새, 지나치는 새, 멀리 날아가는 새 등 3가지 비행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동원해 새의 이동 경로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 결과, 새들이 타워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비행 경로를 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콧은 “일반적으로 작은 새들이 중대형 새보다 음향 등대에 더 크게 반응해 뚜렷한 충돌 회피 행동을 보였다”고 말했다. “아마도 큰 새보다는 작은 새가 비행 경로를 더 빨리 바꿀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보이콧은 현재 이 해법을 신규 개발하는 해상 풍력 단지에 활용하기 위해 에너지 회사들과 논의 중이다.

재생 에너지 인프라는 향후 몇 년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조류를 비롯한 야생동물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독수리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생물종이 사라지면 전체 생태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환경을 정화하는 생물이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고, 포식자-먹이의 역학이 달라지거나, 종자의 수분이 줄어드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보이콧은 에너지 생산과 야생동물의 충돌 문제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해결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보이콧은 “현재 에너지 전환을 하고 있는 우리에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 상황이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낼 기회라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손실 모두 인류에겐 중대한 위협입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는 없어요.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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