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영향력이 있을까?

바티칸의 가장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14억 명 이상이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7%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지난 202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시아 순방 당시 엄청난 인파가 몰린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동티모르에서는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이 교황이 집전하는 야외 미사에 참석했다.
그 전 해에는 교황이 아프리카 2개국 순방의 일환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을 찾았을 당시 뜨거운 태양 아래 킨샤사 공항에서 열린 미사를 보고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토록 엄청난 규모의 인파와 열정을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은 교황과 가톨릭 교회가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교황은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바티칸 시국과 그 통치 기관인 교황청을 이끄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교황청은 국제법상 주권을 지닌 완전한 주체로 인정된다. 다시 말해, 유럽연합(EU)은 물론 184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제 사회의 공식적인 참여 주체인 것이다.
교황은 국가와 정부의 수반이자, 10억 명이 넘는 신자들의 지도자로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 중 하나다.

교황청은 UN에서 상주 옵서버 지위를 갖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협상 테이블에 참여할 수 있다.
비록 전면적인 투표권은 없으나, 회의에 참석하고 논의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15년 파리 기후 협정 합의를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구를 구하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의 "오만한 무관심"을 비판한 바 있다. 교황의 이 같은 표현과 개입 시기는 특히 글로벌 사우스(제3세계) 국가들에 특히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24년에는 UN 기후 정상회의에서 동성애자 및 트렌스젠더 관련 논란이 일자 교황청이 여성 권리에 관한 논의를 막기도 했다.
논란이 된 합의안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여성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바티칸,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란, 이집트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본문에서 동성애자 여성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기를 바랐다.
이 같은 행보로 인해 가톨릭 교회는 강한 비판을 받았으나, 이는 전 세계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합의에 교황청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2014년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효과적인 교황청 외교의 또 다른 사례이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화해를 중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공개적으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양측에 서한을 보내고 바티칸에서 비공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합의를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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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미국 '버클리 종교, 평화 및 세계 문제 센터'의 데이비드 홀렌바흐 교수는 지난 25년간 가톨릭 교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여야말로 가장 큰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가톨릭 교회가 주요 교리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자리였던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회는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대한 돌파구"가 되었다는 게 홀렌바흐 교수의 설명이다.
홀렌바흐 교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부터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초기에 이르기까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전환한 국가 중 4분의 3이 가톨릭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국가들"이라는 정치학자 새무엘 헌팅턴의 연구를 예로 들었다.
홀렌바흐 교수는 헌팅턴 교수의 말을 인용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프란시스코) 프랑코와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에서 벗어난 게 시작이었고, 이러한 흐름은 이후 라틴 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그 이후에는 필리핀과 한국 등 가톨릭 영향력이 강한 국가로도 퍼져나갔다"고 했다.
아울러 홀렌바흐 교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고국인 폴란드의 민주주의 도입에 기여했으며, "결과적으로 소련이 붕괴하고, 구소련의 여러 지역에서 민주주의가 확산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덧붙였다.

물론 바티칸 측이 항상 세계 지도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 신자임을 자칭하는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신학을 이용해 정부의 이민 단속을 정당화하자 교황은 예수 또한 난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강경한 어조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미국의 '국경 차르'라고 불리는 톰 호만(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자이다)은 "교황은 가톨릭 교회부터 고쳐야 한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2020년,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브라질 대통령은 아마존 보호를 간청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교황은 아르헨티나인일지 몰라도, 신은 브라질인"이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유럽의 경우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하면서 성소수자 권리, 피임, 낙태 등의 사회적 이슈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보수적인 입장이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에게 사제나 부제와 같은 특정 지도자 직위를 허용하지 않았던 사례도 이를 잘 보여준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과거에 비하면 그 힘은 약해졌다.
한때 가톨릭 교회의 영향으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는 엄격한 낙태법이 실시되었으나, 지난 20년간 우루과이,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에서는 가톨릭 교리에 반하며 낙태 접근성을 확대해왔다.
한편 이와 동시에 이 지역에서는 복음주의 기독교도 신자 수와 정치적 영향력 측면에서 점차 세력을 넓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가톨릭 신자를 보유한 브라질이나, 불과 5년 후에는 가톨릭이 더 이상 다수 종교가 아닐 것으로 전망하는 분석가들도 있다.
또한 성직자들의 성적 학대 사건과 교회의 은폐 역할이 계속해서 폭로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위상은 약화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차기 지도자로 누가 선출되든, 새 교황은 분명 전 세계 다른 지도자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러한 영향력은 가톨릭이라는 기독교 최대 종파의 지도자라는 점과 그 자체로 한 국가의 수반이라는 지위에서 비롯된다.
남수단의 전쟁 당사자들의 발에 입을 맞추거나, 그리스의 난민촌에서 이민자들을 위로하는 등 이같은 교황의 행보와 가톨릭 교회의 위치는 앞으로도 국제 사회의 담론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