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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남편은 제게 약을 먹인 뒤 성폭행을 저질렀습니다'

1일 전
문 손잡이를 잡고 들어오는 남성의 실루엣
Getty Images

*주의: 이 기사에는 성폭력 등 보기 다소 불편한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잠시 이야기를 하자던 남편과 자리를 잡고 앉은 케이트(가명)는 남편의 입에서 곧 흘러나올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당신을 강간했어. 수년간 당신에게 진정제를 먹이고 사진을 찍었어."

케이트는 할 말을 잃었고, 앉은 채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남편이 꺼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마치 '내일 저녁으로 볼로네제 스파게티 먹을 건데 빵 좀 사 올 수 있냐'는 식의 말을 하듯 이야기했습니다."

수년간 남편은 남몰래 케이트를 통제하고 학대해왔다. 그는 폭력적이었으며 처방받은 약을 오남용했다.

사실 케이트가 잠결에 자신이 남편과 성관계를 하고 있는 상황을 몇 차례 인지한 적이 있었다. 자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동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이는 명백한 성폭행이었다.

그는 이후 후회한다고 밝히며 자신도 자고 있었기에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아내를 설득하고자 했다. 자신이 아픈 것 같으며,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이에 케이트는 남편이 의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지지해주기도 했다.

남편이 잠든 자신을 성폭행하고자 잠자리에 들기 전 마시던 차에 수면제를 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한편 이러한 사실을 털어놓은 남편은 만약 경찰에 신고할 경우 자신의 인생은 끝이 날 것이라고 했고, 케이트는 결국 신고하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의 아버지였다. 게다가 인생의 동반자라 믿었던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까지 해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고백한 사건의 충격은 몇 달에 걸쳐 점점 케이트의 몸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매우 악화했으며, 체중이 급감하고, 공황 발작을 겪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의 고백을 들은 지 거의 1년이 지났을 무렵 공황 발작이 특히 심해졌고, 케이트는 결국 자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케이트의 자매는 어머니에게 전화로 이를 알렸고,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케이트의 남편은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다.

하지만 4일 뒤, 케이트는 영국 데번 및 콘월 지역 관할 경찰에 연락해 더 이상 사건을 진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케이트는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서 "슬픔을 느꼈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생각하니 슬펐다. 아이들의 아빠는 이제 예전 같을 수 없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이와는 별개로 더 이상 남편과 같은 집에서 살 수 없었고, 결국 남편은 떠났다.

이후 케이트는 사건에 대해 더 명확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고, 직접 다시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다.

그렇게 마이크 스미스 형사의 주도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케이트에 따르면, 스미스 형사는 자신이 심각한 범죄의 생존자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형사님은 제가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힘을 빼앗겼다는 사실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형사님은 (제가 겪은 일이) 강간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지젤 펠리코
Getty Images
지젤 펠리코의 사진. 케이트는 자신이 겪은 일이 국제적으로 보도된 지젤 펠리코 사건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남편(이혼하여 이제 전남편이 되었다)의 의료 기록이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케이트에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고백한 뒤 그는 조용히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 중 "잠든 아내와 성관계를 갖고자 약을 먹였다"고 했다.

이 내용이 정신과 의사의 진료 기록에 남았던 것이다.

케이트에 따르면 전 남편은 익명으로 운영되는 마약 중독자 단체의 몇몇 지인 및 부부가 함께 다녔던 교회의 지인들에게도 이 일을 고백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결국 검찰로 넘어갔으나, 검찰은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케이트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만약 가해자의 자백이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증거로 사용되지 못한다면 다른 (유사 사건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냐"는 것이다.

망연자실한 그녀는 검찰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6개월 뒤 검찰로부터 기소를 진행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울러 검찰 측은 "최초의 결정에 결함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영국 검찰청 대변인은 BBC '파일 온 4 인베스티게이츠'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경우 처음부터 정확한 기소 판단을 내리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에 사과한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이 법정에 넘겨진 시점은 전남편이 고백한 지 5년 후인 2022년이었다.

재판 중 그는 아내가 잠든 상태에서 묶인 채로 깨어나 합의된 성관계를 갖는 성적 환상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약물 투여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아내를 깨우지 않고 결박하기 위해서였을 뿐, 강간이 목적은 아니었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스미스 형사는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다"면서 "케이트의 삶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는데, 가해자는 피해자가 마치 일종의 성적 취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처럼 묘사했다"고 비난했다.

일주일간 이어진 재판 끝에 결국 전 남편은 강간, 고의 약물 투약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관은 판결문에서 가해자는 "자기 집착이 심하고 자신의 욕구를 끝없이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서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징역 11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평생 접근 금지 명령도 내려졌다.

재판이 마무리되고 3년이 지난 지금, 케이트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삶을 꾸려가고자 노력 중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및 신경 질환도 진단받았다.

한편 케이트는 자신이 겪은 일이 프랑스 여성 지젤 펠리코 사건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펠리코의 전남편 또한 아내에게 약물을 먹여 강간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성 수십 명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케이트는 "펠리코 사건을 접하고 피해자가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길, 주장을 입증받을 수 있길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한편 '화학적 통제(Chemical control)'는 약물을 무기로 사용하는 가정 폭력 가해자들의 행위를 지칭하는 용어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 '젠더 및 폭력 연구 센터'의 마리안 헤스터 교수는 "아마도 화학적 통제 사례가 상당히 만연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늘 화학적 통제를 가해자가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헤스터 교수는 "만약 집에 처방 약이 있다면, 가해자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학대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살핀다"고 덧붙였다.

제스 필립스
PA Media
제스 필립스 부장관은 스파이킹(당사자 몰래 음료에 약물을 타는 행위)은 "피해자의 신뢰와 안전을 침해하는 사악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가정폭력 전담 위원회' 소속 니콜 제이콥스는 경찰의 범죄 기록 방식 변화 등으로 인해 스파이킹 같은 범죄가 실제보다 과소 기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10년 안에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 사건을 절반으로 줄이고자 마련된 기존 조치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경찰에 신고된 모든 가정 폭력 관련 범죄를 정확하게 집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가해자 처벌은 물론 피해자의 삶 재건에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한편 영국 내무부는 BBC에 다른 범죄의 일환으로 발생하는 스파이킹 사건을 식별할 수 있는 경찰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의회에서 심사 중인 '범죄 및 치안 법안'에 따르면 정부는 피해자들의 경찰 신고를 장려하고자 '스파이킹을 포함한 유해 물질 투여 행위'를 새로운 '현대적 범죄'로 규정하게 된다.

스파이킹은 이미 1861년 제정된 '사람에 대한 범죄법' 등 영국 전역에서 다양한 법률에 의해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 적용될 예정인 이번 새 법이 통과되면, 가해자는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스파이킹을 별도의 범죄로 명시해 규정하면 경찰이 더욱 효과적으로 추적할 수 있고, "더 많은 피해자가 …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고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내무부에서 여성 및 아동 안전을 담당하는 제스 필립스 부장관은 BBC '파일 온 4 인베스티게이츠'에 보낸 성명에서 스파이킹을 "피해자의 신뢰와 안전을 침해하는 사악한 범죄"라고 지칭했다.

북아일랜드 지역에서도 해당 법 적용 확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며, 스코틀랜드 정부는 아직 별도의 범죄로 명시할 계획은 없지만 황을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케이트는 마침내 정의를 얻었으나, 검찰이 기소를 머뭇거렸을 때 이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면 가해자인 전 남편은 지금도 감옥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케이트는 "학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조용히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도 알았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아직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가는 중"이라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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