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중동 3국 순방 예정 …걸프 지역 중시하는 4가지 이유
미국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지는 무척 중요한 결정으로, 외교 정책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2017년 5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취임 후 일반적으로 캐나다, 멕시코 또는 유럽을 먼저 방문하던 전례를 깼다. 대신 그가 대통령 임기 첫 해외 순방지로 선택한 나라는 석유 부국인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또 한 번 극적으로 백악관의 주인이 된 그는 오는 13일부터 걸프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 지역 3국을 방문하는 이번 일정은 원래 2번째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이 될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 참석을 위해 바티칸을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걸프 지역에서 일찌감치 존재감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듯하며, 이를 통해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오만 출신으로 걸프 지역에 대해 연구하는 압둘라 바부드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걸프 지역 지도자들과 강력한 관계를 구축하면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이점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지역적 및 세계적인 영향력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능력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짭짤한 거래
올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 순방 계획을 발표하며 부유한 아랍 국가들과의 경제적 거래 체결이 최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른 중동 국가들에 장비를" 공급하는 "수천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이루어지리라는 약속을 받은 후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바부드 교수는 "걸프 지역 국가들은 막대한 준비금, 국부 펀드, 엄청난 투자 잠재력을 바탕으로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 내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부유한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 다지기가 가져다줄 이익을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7년에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은 1100억 달러 상당의 군사 장비 판매를 포함해 자신이 약 450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우디로부터 최대 1조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고자 한다면서 과거보다도 더 커진 규모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백악관은 아랍에미리트(UAE)가 향후 10년간 미국에 1조4000억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중동 및 미국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하산 음네임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순방을 통해 "즉각적인 이익"을 보여줄 수 있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투자, 특히 방산 장비 수출 계약 관련 약속을 가능한 한 빨리 받아내어 자신의 해외 무역 정책이 성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불안정한 중동 정세
전후 가자 지구 계획, 미완성으로 남은 이란과의 협상은 미 외교 당국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다. 그리고 걸프 지역 동맹국들은 이러한 과제 해결 시 유용할 것이다.
재집권 첫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가자 지구를 점령하여 "중동의 리비에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말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바 있다. 아울러 "매우 부유한 이웃 국가들"이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210만 명에 달하는 가자 지구 주민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키자고 제안했다.
이 계획에 대해 국제 사회는 널리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랍 세계가 내놓은 가자 지구 전후 재건안의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이 거부했다.
바부드 교수는 이번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자 지구의 재건을 위한 자금을 걸프 국가들로부터 확보하려고 할 수도 있으나, 아마 더 시급한 사안에 집중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로서는 트럼프가 걸프 동맹국들에 가자 지구에 남아있는 인질들의 석방을 마무리하는 데 우선 협조해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이미 이들 국가는 인질 석방을 위한 노력에 참여하고 있다. 일례로 중동 내 최대 미군 공군 기지가 자리한 카타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인질 및 휴전 협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홍해상의 선박 공격을 막고자 예멘의 후티 반군을 폭격하는 등 최근 중동 내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 일주일 전, 오만이 나서 미국과 후티 간 휴전을 중재하기도 했는데, 음네임네는 사우디가 트럼프 방문을 앞두고 미국의 공습 중단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는 별도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만약 핵 합의에 응하지 않을 경우 폭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자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란을 다루는 방법에는 2가지가 있다. 군사적 대응 혹은 협상 체결"이라면서 자신은 "협상"을 선호한다고 발언했다.
미 국무부는 4월 30일 성명을 통해 "이란 정권은 지속적으로 중동 내 갈등을 부추기고 있으며,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테러 단체와 대리 세력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전쟁은 피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이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오만이 이란과 미국 간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걸프 지역의 글로벌 영향력
사우디는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 핵심 중재자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일례로 올해 2월, 미국과 러시아 간 고위급 종전 회담은 우크라이나 측 대표단 없이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렸다. 2022년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 이후 처음 열린 양국 간 회담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서방의 공동 노력이 사실상 좌절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이어 3월에는 사우디가 세 국가의 대표단을 각각 따로 초청하여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회담을 진행했다.
3월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 간 회담은 2월 말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공개적으로 말싸움을 벌인 이후 처음 성사된 자리였다. 우크라이나 측이 "건설적"이라고 평가한 리야드에서의 후속 회담 또한 양국 관계 회복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
아울러 사우디와 UAE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포로 교환 협상도 중재했다.
바부드 교수는 걸프 국가들이 "지역 및 글로벌 위기에서 (협상 관련) 역할과 재정적 능력, 막대한 석유 및 천연가스 매장량으로 인해 상당한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등 미국의 라이벌 국가들 또한 걸프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미국이 더욱더 이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한다는 설명이다.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가능성
1기 행정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아랍 4개국(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 간 관계 정상화 협상을 중재하며 역사적인 돌파구 마련에 성공했다.
수단에서 내전이 발발하며 차질이 생기기도 했으나, 나머지 세 나라는 이집트, 요르단처럼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은 아랍 국가들이 되었다.
한편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주요 지도자인 사우디는 아직 공식적으로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우디의 한 고위 관리는 지난해 BBC와의 인터뷰에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치명적인 공격을 벌이기 전 "협상 타결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측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적인 건국을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자,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국 없이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관측통들은 이스라엘과의 외교 정상화가 사우디 내에서 점점 더 논쟁적인 사안이 되고 있다고 본다.
바부드 교수는 여전히 가자 지구에서 전쟁이 이어지는 상황이기에 이번 트럼프의 순방 기간 사우디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으리라 봤다.
바부드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다른 걸프 국가 간 관계 정상화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도 이스라엘과 사우디 간 향후 합의는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